[이코노믹리뷰=전지현 기자] #. 올해 국내 백화점 '빅3'는 대규모 신규 출점을 통해 5년만에 새 점포를 내놓는다. 이들 빅3가 한해에 일제히 출점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먼저 현대백화점은 서울 최대 규모 백화점인 '더 현대 서울'을 26일 정식 오픈했다. 2015년 8월 판교점 오픈 이후 6년만이자 11년만에 서울권에 문을 여는 백화점이다. 현대백화점 외에도 롯데백화점은 오는 6월 동탄점을, 신세계백화점은 올 하반기 충청권 첫 대형점포로 대전에 신규점을 낸다. 롯데와 신세계의 백화점 출점은 각각 2014년 7월(수원점)과 2016년 12월(대구점)이 마지막이었다.

최근 몇년간 국내 오프라인 유통업계는 온라인 공습에 밀려 설 땅을 잃어 갔다. 늘 위기였지만 2년 전부터 위기가 수면위로 드러났고, 지난해는 코로나19가 덮치면서 고조됐다. 혹자들은 국내에 '리테일 아포칼립스(Retail Apocalypse, 오프라인 소매업의 몰락)'가 시작됐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오프라인 멸종론'에 회의적이다. 국내 정통 오프라인 출신 기업들이 생존을 위한 변화로 끊임없이 생존전략을 짜고 있어서다. 오프라인 유통업계는 지난해부터 ▲구조조정과 매장 리포지션 ▲제품 및 서비스 외 콘텐츠·엔터테인먼트 등을 결합해 선보이는 '믹스 번들' 전략으로 체질변화를 본격화했다. 이를 위한 업종간 합종연횡도 마다하지 않았다. 변화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일각에선 오프라인 유통강자들이 올해를 기점으로 소비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깜짝 카드'를 내놓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온라인 거센 물결에도 오프라인 유통 '종말 없다'

전문가들은 온라인쇼핑 확산으로 위기감이 커졌지만, 오프라인 유통시장이 여전히 성장중이란 점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오프라인 유통시장은 2006년 137조원 규모에서 지난해 371조원으로 커졌다. 최근 5년간만 놓고봐도 성장세는 둔화됐으나 지난해를 제외하면 시장규모가 2015년 316조원에서 2019년 372조원까지 매년 확대됐다.

유통 빅3 수장 중 한명이자 최근 10년새 'M&A 큰손'으로 떠오른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본업인 오프라인 유통만을 바라본다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정 회장은 한섬과 현대리바트 등 제조업을 중심으로 영역을 확대해 왔다. 경쟁사들이 코로나19로 위기를 선포하는 와중에도 과감한 투자행보를 이어온 주인공이지만, 올해 초 선포한 향후 10년 계획에서도 고기능성 화장품과 헬스케어, 바이오 등 신수종 사업으로 발판을 넓히겠단 내용만을 담았다. 이를 통해 2030년 매출 40조원을 돌파하겠단 각오다. 하지만 경쟁사들이 온라인으로 눈을 돌린 것과 달리 그 어디에도 이커머스 대항마에 대한 전략을 담지 않았다.

반면, 코로나19로 수직상승했던 온라인쇼핑 성장세가 올해 한 풀 꺾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언택트 현상이 완화되면서 수요가 정체되지만 진입장벽이 낮은 데 비해 경쟁이 과열됐기 때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1월 2021년 한국 경제 전망을 통해 소비관련 분야에서 낮은 진입 장벽으로 인한 과당 경쟁과 팬데믹의 추세적 완화에 따른 수요 정체로 온텍트 시장 성장이 한계에 직면할 것으로 내다봤다. 삼정KPMG경제연구원 역시 온라인은 식품이 주요 카테고리로 자리잡는 반면 이로 인해 코로나19로 인한 지난해 온라인 쇼핑 성장세는 올해 언택트 현상이 완화되면서 둔화될 것으로 분석했다.

아마존의 국내시장 진출과 포털·메신저기반 IT기업 시장진입 등 업태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지각 변동을 예상하는 의견도 있다. 인수와 매각, M&A, IPO 등을 통한 재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신용평가는 "온라인 시장에서의 각축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영업 및 현금흐름 적자, 물류투자 등을 감내하기 위한 자금경쟁 심화로 투자유치, 인수합병, 업무 제휴 가능성이 확대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시간을 팔아라"...믹스번들·리포지셔닝로 반격

코로나19로 소비패턴 변화를 실감한 오프라인 유통채널들은 뒷짐졌던 과거에서 벗어나 지난해부터 발바쁜 변화를 시도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배송서비스다. '고객이 찾아오는 곳에서 고객을 찾아가는 곳'으로 오프라인 매장을 리포지션닝해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열풍에 합류했다.

'코로나 시대' 속 경쟁력이 된 '빠른 배송'은 익일에서 당일을 넘어 1시간 배송까지 진화했다. GS슈퍼마켓은 최근 기존 점포에서 영업하는 동시에 배달 서비스 물류 거점으로도 활용하는 '세미다크스토어' 개념을 도입해 1시간 배송이 가능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롯데슈퍼도 '퇴근길 1시간 배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롯데마트는 지난해 10월부터 오프라인 점포를 '배송 거점'으로 삼는 스마트스토어와 세미다크스토어를 추가해 운영하고 있다. 이마트가 지난해 선보인 매장형 물류센터 'EOS(Emart Online Store)' 청계천점은 매장을 물류센터와 통합한 형태로 최대 20㎞ 거리 소비자들에게 2시간 내 상품을 배송한다.

배송서비스는 전문가들도 지적하는 오프라인 유통기업들의 생존 전략 중 하나였다. 온라인 경쟁심화에 따른 소비자 확보를 위해선 우선 배송이 빨라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점 리뉴얼 및 포맷 다변화로 오프라인 매장의 집객효과 제고 방안 모색으로 고객의 '락인(Lock-in) 전략'을 재정비 해야한다고 꾸준히 제안해 왔다.

국내 유통산업을 담당했던 전통적인 오프라인 강자들이 20년 잔치를 끝내면서 대변화에 직면한 것이 배경이었다. 수십년간 국내 유통산업을 주도했던 오프라인 채널은 유통 패러다임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감에 따라 이커머스에 점령당했다.

때문에 이들은 최근 몇년간 '다이어트'를 감행했다. 과도한 매장 확대가 리테일 아포칼립스 현상 원인 중 하나로 꼽힌 만큼 무차별적으로 늘렸던 점포의 구조조정은 불가피했다. 코로나19가 리테일 아포칼립스 현상을 심화시켰지만, 사실상 이는 일시적 현상이 아닌 이전부터 누적됐던 구조적 문제가 드러난 결과였다.

이에 롯데쇼핑과 신세계는 불필요한 투자를 줄이고 자산 일부를 매각했으며, 이마트는 대규모 자산매각, 투자 유치 등을 통해 1조원 이상 자금 및 재무여력을 확보했다. 롯데미래전략연구소는 2018년 기준 100개인 백화점이 2028년 66개로 줄고, 같은 기간 대형마트도 494개에서 166개가 준 328개로 축소될 것으로 예측했다.

야구단 인수, 플랫폼기업과 제휴.. 강자의 변신

올 들어 오프라인 유통업계를 주목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전통강자를 중심으로 '대반격'에 나섰다는 점이다.  지난해까지 오프라인 유통 대기업들은 구조조정과 업종간 합종연횡 등을 통해 재도약의 발판을 만들었다. 그리고 해가 바뀌면서 반등의 서막이 올랐다. 

최근 프로야구단 인수를 결정한 신세계그룹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23일 이마트는 SK와이번스 지분 100%를 1352억8000만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1호 선수'로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거 추신수를 20년만에 영입했다는 깜짝 소식도 더했다.

이마트 야구단 인수를 단순 스포츠 후원으로 해석할 수 없는 배경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때문이다. 정 부회장은 1997년부터 시작된 경영행보를 통해 국내 유통업 성장방향성을 제시하며 변화의 획을 그어 왔다.

5년 전부턴 콘텐츠와 오프라인 유통 결합의 복합 체험형 공간을 만드는 데 대한 의지도 꾸준히 표명해왔다. 정 부회장은 지난 2016년 하남 신세계 스타필드 개장식에서 "스타필드는 단순한 쇼핑공간이 아니라 에버랜드나 야구장과 같은 '복합문화공간'이자 '테마파크'로 발전하게 될 것”이라며 유통업 경쟁상대로 테마마크나 야구장을 꼽았다. 즉, '믹스 번들' 전략이다.

당시만해도 관련업계는 정 부회장이 '세상에 없는 스타필드', '세상에 없는 이마트타운', '세상에 없는 프리미엄아울렛' 등 '세상에 없는 시리즈' 신모델로 끊임없는 도전장을 내밀었던 주인공이었기에 또 하나의 실험일 뿐이란 해석도 내놨다. 하지만 2019년 수면 위로 드러난 '리테일 아포칼립스'와 온라인쇼핑으로의 소비패턴 변화를 앞당긴 코로나19가 정 부회장의 실험기를 선견지명으로 바꿔놨다. 그는 지난달 말에는 직접 나서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과 연대 방안도 모색함으로써 향후 내놓을 카드에 업계 관심이 집중돼 있다.

오는 7월이면 플랫폼 결합·확장을 통해 재탄생하는 새로운 GS리테일(GS홈쇼핑+GS리테일, 합병후 존속 회사 GS리테일)도 사업을 본격화한다. GS25 1만5000개(편의점), GS더프레시 320여개(슈퍼),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6개(호텔) 등 전국 1만5000개 이상 점포망을 점한 GS리테일과 3000만 TV홈쇼핑 시청가구와 1800만명 이상이 사용하는 모바일 쇼핑앱을 운영하는 GS홈쇼핑의 결합으로 초대형 커머스 기업의 탄생이다.

한동안 '멈춤'상태였던 CJ는 올해 본격적인 풀필먼트 사업추진과 동시에 네이버가 웹툰과 웹소설에서 확보한 스토리 지식재산권(IP)을 영상화함으로써 넷플릭스 등 글로벌 플랫폼으로의 콘텐츠 유통이 기대되고 있다. CJ는 지난해 말 CJ대한통운, 스튜디오드래곤과 함께 네이버와 파터너십을 맺으면서 글로벌 콘텐츠 시장 공략채비를 마친 상태다. CJ는 지난 2018년 플랫폼사업 강자로 군림하는 '월트디즈니'를 목표로 CJE&M 콘텐츠 역량와 오쇼핑 커머스 역량과 결합한 CJENM을 탄생시킨 바 있다. 바로 이마트와 같은 유통과 콘텐츠의 융합 전략이다.   

코로나19 종식 후...봄날은 온다

오프라인 유통업계에는 치료제가 나오면서 코로나19가 종식된 후 다시 일어설 것이란 전망도 희망적이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은 코로나19 종식 후 백화점과 대형마트는 주 고객층 구매력 바탕으로 매출 회복세가 전망되고, 편의점은 유동인구수 회복으로 매출 등이 정상궤도로 회복할 것으로 내다봤다.

구체적으로는 백화점의 경우 코로나19에 따른 방문 고객 감소로 구매 건수 감소세가 지속됐지만, 구매 단가가 증가하며 주 고객층 구매력이 여전히 높게 유지되고 있다. 실제 보복소비 트렌드에 명품을 중심으로 해외 유명 브랜드 매출비중은 2018년 19.3%에서 지난해 3분기 31.7%까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마트는 온라인 식품 구매 증가 트렌드로 온라인 기반 성장이 기대된다. 오프라인 부진 점포 페점 등 업태내 점포 구조조정이 올해도 지속되는 가운데 코로나19에 따른 소비행태 변화로 농축수산물과 음식료품에 대한 온라인 거래 증가가 예상된다.

편의점 역시 학교와 학원가 인근 점포들의 매출액 정상화와 낮은 기저효과에 힘입어 성장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로 특수입지점포 중심 유통인구 감소에 따른 매출 타격, 점포당 매출액은 지속적으로 마이너스 증감률 기록했지만, 구매건수가 감소한 반면 구매 단가가 증가세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로 유동인구수 회복이 이뤄지면 편의점 매출도 정상궤도로 회복이 전망된다.

아쉬운 점은 온라인쇼핑시장 확대로 수많은 오프라인 유통기업들도 온라인에 뛰어들고 있으나 현재의 이커머스 사업자들을 따라잡기 어렵다는 게 지배적인 평가란 것이다. 또 온라인부분은 다수의 사업자가 경쟁하고 있어 차별화된 경쟁력 확보도 쉽지 않다.

이마트는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 냈지만, 통합 온라인몰 SSG닷컴이 시장 안착 중일 뿐 거래액 기준 아직 이커머스 5위권에도 들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5월 뒤늦게 합류한 롯데는 아직도 이렇다할 과감한 도전과 성과가 미진한 상태다.

따라서 오프라인 유통기업들은 달라진 역할로 오프라인 매장만이 가진 강점을 살려 소비자를 공략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신용평가는 '2021 유통산업 전망' 보고서를 통해 "비대면 소비트렌드 고착화로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소비에 대한 대응에 따라 식적 회복속도가 차별화될 전망"이라며 "기존점 리뉴얼과 창고형, 프리미엄형, 저가형, 복합쇼핑몰 등 포맷 다변화와 온오프라인을 연계한 옴니채널 구축 등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