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이코노믹리뷰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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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리뷰=박민규 기자] 지난 19일에 세계적인 석학들이 연사로 참여한 '배터리 기술의 미래' 웹 세미나(웨비나)에서 전고체 배터리에 대한 논의가 나오면서, '꿈의 전지'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가 재조명되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의 상용화는 아직 먼 이야기다. 그러나 이미 유수의 배터리·완성차 업체들은 관련 시장 선점 경쟁에 돌입한 모습이다. 자동차 판매량 기준으로 세계 최대 완성차 업체인 일본 도요타만 해도 당장 오는 12월에 전고체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 자동차의 시제품을 공개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이다. 이는 현대자동차가 예고한 바보다 약 4년 빠른 시점이다.

아직 실체조차 없는 시장이 도요타의 선전 포고로 후끈 달아오른 분위기다.

게다가 인류의 꿈이 단순한 전기차가 아니라 그 너머의 자율 주행 차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전고체 배터리 시장을 둘러싼 각축전은 자율 주행 시대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전고체 배터리가 미래 자동차 산업의 게임 체인저로 주목 받는 이유를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전 고체예요"

23일 배터리 업계 등에 따르면 전고체 배터리는 리튬 이온 배터리의 핵심 구성 요소 가운데 하나인 전해질을 액체에서 고체로 바꾸는 개념이다.

리튬 이온 배터리의 전해질을 고체화하려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전고체 배터리는 안정성과 에너지 밀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리튬 이온 배터리의 경우 현 배터리 시장의 주류를 이루고는 있으나, 안전성 문제가 리스크로 지적된다. 해당 배터리에는 액체 전해질이 적용되다 보니 온도 변화로 인한 팽창이나 외부 충격에 의한 누액 등이 발생하면 때때로 폭발 및 화재로 이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반면 전해질이 고체인 전고체 배터리는 구조적으로 단단해 안정적이며, 전해질이 손상되더라도 형태는 유지할 수 있으므로 안정성이 높다.

또 전고체 배터리는 전기차 주행 거리, 즉 전기차용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를 향상시키는 데 용이하다.

리튬 이온 배터리에는 양극과 음극의 접촉을 막는 분리막이 따로 있는데, 전고체 배터리 경우 고체 전해질이 분리막의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다. 고체 전해질 자체로 배터리의 폭발·화재 위험성이 사라지기 때문에 분리막을 비롯한 안정성 관련 부품들을 줄이는 대신, 배터리 용량을 늘릴 수 있는 활물질을 채워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를 높일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전고체 배터리는 곧 자율 주행 시대의 도래와 직결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율 주행 차는 실시간으로 정보를 송수신하고 명령을 내리면서 전력 사용량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래 차 시대에도 배터리 용량 확대가 계속해서 요구될 것으로 추측되는 이유다.

핀란드 소프트웨어(SW) 업체 투세라에 따르면 자율 주행 차가 하루 동안 사용하는 데이터의 양이 11테라바이트(TB)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축구장 4개 크기의 반도체 공장에서 일 평균 45TB 규모의 데이터가 발생하는 것을 고려하면 이는 엄청난 규모다.  

리튬 이온 배터리(왼쪽)와 전고체 배터리의 구조. 출처=삼성SDI
리튬 이온 배터리(왼쪽)와 전고체 배터리의 구조. 출처=삼성SDI

'절대 배터리'를 찾는 여정

전고체 배터리는 아직 연구 개발(R&D) 단계에 있지만, 이미 다수의 글로벌 배터리·완성차 업체가 선제적인 연합 전선 구축에 나선 모습이다. 

독일의 완성차 업체인 BMW와 폭스바겐은 각각 미국 배터리 스타트업 솔리드파워 및 퀀텀스케이프와 협력해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하고, 이를 탑재하는 전기차를 오는 2025년이나 2026년에 출시할 계획이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창업자인 빌 게이츠의 투자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던 퀀텀스케이프는 전고체 배터리 R&D에만 약 10년을 쏟아부었으며,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200개 이상의 관련 특허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퀀텀스케이프는 지난 2020년 12월에 15분 내 80% 충전이 가능한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솔리드파워의 경우 BMW 외에도 미국 자동차 업체 포드와 우리나라의 삼성전자·현대차 등의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한 바 있으며 2023년까지 전고체 배터리를, 2028년에는 이를 적용하는 전기차를 각각 양산하겠다는 목표다. 

'제2의 테슬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 전기차 업체 니오는 대만 배터리 업체 프롤로지움 등과 함께 전고체 배터리를 장착하는 전기차를 개발하고 있으며, 미국 정보 기술(IT) 공룡 애플의 최대 스마트 기기 위탁 생산 업체인 대만 폭스콘도 2024년 출시를 목표로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 산업의 경우 특히 일본의 야심이 엿보인다. 현재 전고체 배터리 분야에서 가장 앞선 플레이어로 꼽히는 도요타는 일찍이 2008년에 배터리 연구소를 출범, 자국 정부 및 학계와 손잡고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하겠다고 발표했으며 2019년 1월에는 현지 배터리 업체인 파나소닉과 전고체 배터리 전기차 개발용 합작 법인을 설립했다. 도요타는 이제 세계 최초로 전고체 배터리를 양산하겠다는 야망을 품고 있다. 이외에도 교세라·도레이·무라타·스미토모화학·히타치 등 여러 일본 기업들이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뛰어든 상황이다.

일본 경우 전기차 뿐 아니라 전 산업에 걸쳐 전고체 전지 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으며, 이는 우리나라와 중국에 뺏긴 세계 배터리 시장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행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일본의 소니와 산요 등이 글로벌 배터리 시장을 주물렀으나 이후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 중국 CATL 등이 공격적으로 배터리 생산 설비를 신증설하면서 현재 일본 배터리 업체들의 시장 점유율은 3위권 이하로 밀려난 상태다.

삼성전자 종합 기술원의 전고체 배터리 개념도. 출처=삼성전자 종합 기술원
삼성전자 종합 기술원의 전고체 배터리 개념도. 출처=삼성전자 종합 기술원

국내에서는 기아와 현대차가 2017년부터 자체적인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착수한 가운데, 해당 업체들이 삼성SDI·LG에너지솔루션·SK이노베이션 등 배터리 3사와 협업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실제로 현대차 임원진이 충남 천안에 있는 삼성SDI 사업장을 작년 5월에 방문, 전기차용 전고체 배터리 개발 방향 및 현황 등을 두고 양 사 간의 논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배터리 업체들 역시 전고체 배터리를 차세대 배터리로 꼽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5년 전고체 배터리 샘플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앞서 2013년부터 배터리 관련 전시회 등에서 중장기 전고체 배터리 개발 계획을 소개해 왔던 삼성SDI는 자사의 전고체 배터리 양산 시점을 2027년 이후로 잡고 있다.

특히 삼성SDI의 경우 현재 전고체 배터리 요소 개발 단계에 진입했으며, 시제품도 회사 내부에 갖추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 삼성SDI는 자체적인 전고체 배터리 R&D 외에도 삼성전자 종합 기술원 등과 전고체 배터리 기술 공동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이다.

구체적으로 삼성전자 종합 기술원은 전고체 배터리의 수명과 안정성을 높이면서 크기는 반으로 줄일 수 있는 원천 기술을 통해 1회 충전 시 800킬로미터(km) 주행 및 1000회 이상 충방전이 가능한 전고체 배터리를 만들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삼성SDI 관계자는 "(삼성SDI는) 독자적으로 개발한 고체 전해질 등 신소재들과 관련 기술을 접목해 고안전성·고에너지 밀도 (전고체) 배터리 개발의 가능성을 확인했다"라며 "현재 (전고체 배터리) 양산화 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며, 이를 실제 제품에 적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핵심은 '상용화'

전고체 배터리 산업의 성장이 기대되는 것과는 별개로 국내 전고체 배터리 개발 상황은 아직 논문만 내놓고 있는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아직까지 리튬 이온 배터리를 대체할 만한 전고체 배터리가 나오지 않은 데다, 전고체 배터리의 가격·수명·에너지 밀도 등도 상업화가 가능한 수준이 아니라는 데 국내 배터리 업계는 입을 모으고 있다. 국내 전고체 배터리 양산은 실질적으로 2025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국 산업 은행(KDB) 미래 전략 연구소의 이영진 연구 위원은 "(배터리) 전문가들은 전고체 배터리의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4~5년, 양산 기술을 개발하는 데 2~3년 걸릴 것을 고려해 전고체 배터리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되는 시점은 2030년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라고 언급하면서, 9년 뒤에 버스 등 대형 차량을 중심으로 전고체 배터리가 서서히 상용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전고체 배터리의 경우 극복해야 할 기술적 과제가 다수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고체 전해질은 액체 전해질에 비해 리튬 이온의 이동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배터리 출력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지적된다. 이처럼 낮은 이온 전도도를 개선하기 위해 산화물·폴리머·황화물 등 다양한 고체 전해질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나, 액체 전해질과의 성능 차이는 여전히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영진 연구 위원은 "기존 리튬 이온 배터리 시장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해당 배터리 개선 또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단기간 내에 전고체 배터리 중심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한국 전기 연구원(KERI) 차세대 전지 연구 센터의 하윤철 박사가 공침법을 통해 분리된 고체 전해질과 유기 용매를 들어 보이고 있다. 출처=한국 전기 연구원(KERI)
한국 전기 연구원(KERI) 차세대 전지 연구 센터의 하윤철 박사가 공침법을 통해 분리된 고체 전해질과 유기 용매를 들어 보이고 있다. 출처=한국 전기 연구원(KERI)

이러한 가운데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를 앞당길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다는 낭보가 전해지면서, 배터리 업계 안팎의 기대감이 다시 높아지는 분위기다.

한국 전기 연구원(KERI)은 차세대 전지 연구 센터의 하윤철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이 '공침법'을 이용해 전고체 배터리용 '황화물 계열 고체 전해질'을 저가로 대량 합성하는 신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22일 밝혔다. 

현재 가장 주목 받고 있는 고체 전해질 중 하나인 황화물 계열 고체 전해질은 연성이 크고 이온 전도도가 높아 극판 및 분리막 제조가 쉽다는 장점이 있으나, 주 원료인 황화 리튬의 가격이 높고 다른 원료와 혼합하는 공정에 에너지가 많이 드는 볼밀법을 사용하는 것이 단점으로 꼽혀 왔다. 이러한 이유로 황화물 계열 고체 전해질은 소량 생산되는 데 그치고 있으며, 그 가격도 100그램(g)당 수백만 원에 이른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연구팀은 값비싼 황화 리튬을 사용하지 않고 단 한 번의 용액 합성으로 황화물계 고체 전해질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획기적인 공정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하 박사는 "현재 황화물계 전고체 배터리 분야에서 일본이 원천 소재 기술을 선점하고 있다"라며 "우리나라는 고체 전해질 제조 공정 기술의 우위로 시장 경쟁력을 확보해 (일본 및 전고체 배터리 시장 등에) 대응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KERI는) 이번에 개발한 기술을 향후 기업에 이전해 황화물계 고체 전해질 공정 라인 확대 및 양산을 추진할 것"이라 덧붙였다.

현 한국 전고체 배터리 산업의 시계에서 핵심은 상용화를 앞당기는 것이라는 데 목소리가 모아진다. 또 이를 위해서는 핵심 소재에 대한 개선 뿐 아니라 현행 리튬 이온 배터리 생산 라인을 전고체 배터리 생산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조 공정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연구 위원은 "상용화에 가장 근접하다고 평가되는 황화물계 전고체 배터리 경우 현재의 습식 공정 기술로는 성능을 충분히 구현하기 힘들며, 건식 공정 적용 시 유독성 황 화합물을 처리할 수 있는 설비 등을 도입하는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라고 제언했다.

한편, 지난해 하반기에 잇따른 현대차 코나 EV 등의 화재 사고로 전기차용 배터리의 안전성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전고체 배터리로의 전환이 빨라질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