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민규 기자] 'BBIG(배터리·바이오·인터넷·게임)의 시대'로 불린 지난해는 유독 'K-배터리'의 약진이 두드러진 한 해였다. LG에너지솔루션·SK이노베이션(096770)·삼성SDI(006400) 등 국내 배터리 3사가 잇따라 눈에 띄는 사업 성과를 증명하면서, 새해에도 K-배터리에 대한 기대가 치솟는 분위기다.  

다만 전기 자동차 산업이 세계적으로 개화하면서 배터리 패권을 쥐기 위한 경쟁은 지난 2020년보다 더 복잡다단하고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K-배터리의 어제가 놀라운 성장세로 영광스러웠다면, 오늘은 여전히 치열하고 내일은 더욱 진화한 글로벌 플레이어들과 경쟁해야 한다. K-배터리의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그 경쟁력과 청사진을 짚어 본다.

"장하다, K-배터리"…日·中 주춤할 때 압도적 성장세 시현

세계적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국내 배터리 3사의 대대적인 선전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에너지 시장 조사 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글로벌 전기차(EV)·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PHEV)·하이브리드카(HEV) 배터리 사용량이 전년 대비 21.0% 늘어난 142.8기가와트시(GWh)를 기록한 가운데 LG에너지솔루션이 2위, 삼성SDI가 5위, SK이노베이션이 6위를 각각 차지했다.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사용량은 33.5GWh로 2019년보다 171.5% 증가하면서 순위가 한 단계 뛰었고,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은 각각 8.2GWh와 7.7GWh로 85.3%와 274.2%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SDI의 경우 전년 순위를 유지하는 데 그쳤으나, SK이노베이션의 순위는 무려 세 계단이나 급등한 모습이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은 작년 2월에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인 미국 테슬라의 중국향 '모델 3'에 배터리를 공급하기로 하면서 일본 파나소닉의 파이에 침투, 이후 중국 CATL과 세계 전기차용 배터리 1위의 타이틀을 두고 접전을 벌일 만큼 위협적인 플레이어로 부상한 바 있다. 최종적으로 LG에너지솔루션은 작년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23.5%의 점유율을 기록, 1위인 CATL과 0.5%포인트의 근소한 격차로 2위에 머물게 됐다.

중국 CALB를 제외하고 두 자릿수 이상의 급성장세를 기록한 배터리 업체는 국내 배터리 3사 밖에 없다. 파나소닉과 BYD 등을 포함해 나머지 일본·중국 배터리 업체들은 대부분 역성장을 기록한 모양새다. 글로벌 배터리 업계가 주춤한 사이 국내 배터리 3사의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대폭 확대, 총 34.7%를 기록하며 전년의 2배를 웃돌았다. 

2020년 세계 전기 자동차용 배터리 사용량 및 시장 점유율. 출처=SNE리서치
2020년 세계 전기 자동차용 배터리 사용량 및 시장 점유율. 출처=SNE리서치

코로나 시대에 '리즈 시절' 맞은 K-배터리…'역대 최대' 기록 잇따라

지난해 투자 심리를 달궜던 K-배터리의 활약은 연간 경영 실적으로 증명됐다.

전지 부문 자회사인 LG에너지솔루션의 실적을 연결 기준으로 반영하는 LG화학(051910)은 지난 2020년 코로나19 사태를 뚫고 역대 최대 규모의 실적을 달성했다. LG화학의 2020년 매출액은 30조575억원은 전년 대비 9.9% 늘어나면서 창사 이래 처음으로 30조원을 돌파했고, 영업 이익은 185.1% 증가한 2조3532억원을 기록했다.

LG화학의 지난 분기 매출과 영업익은 각각 8조8858억원과 6736억원으로 집계됐다. 매출은 2019년 4분기보다 19.9% 늘어 분기 기준 사상 최대치를 시현했고, 영업 실적은 흑자 전환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에 매출액 34조1645억원과 영업 손실 2조5688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30.7% 급감했고, 영업 이익은 적자로 전환했다. SK이노베이션의 경우 석유 사업에서 낸 영업 손실이 전체 적자의 86.5%에 달한다. 다만 배터리 사업만 따져 보면 해당 사업 역시 적자 국면을 피할 수는 없었으나, 매출액이 전년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하는 등 큰 폭의 외형 성장을 시현한 모습이다.

특히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사업은 같은 해 4분기에 4972억원의 매출로 분기 기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에 기록한 2250억원의 2배가 넘는 수준이다. 배터리 사업의 수익성은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으나, 해외 신공장 등에 들어가는 초기 비용의 영향으로 적자를 기록했다는 것이 SK이노베이션 측의 설명이다. 

삼성SDI도 지난해에 창사 이래 최대 매출액을 기록했다. 2020년 연간 매출은 최초로 11조원을 돌파했고, 4분기 매출액 역시 3분기에 이어 두 분기 연속으로 최고 실적을 경신했다는 설명이다. 삼성SDI가 2020년에 기록한 매출과 영업 이익은 각각 11조2948억원과 6713억원으로, 전년 대비 11.9%와 45.2% 늘어났다. 

같은 해 4분기 실적만 놓고 보면 매출액과 영업익은 각각 3조2514억원과 2462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5.3%과 1124.9% 증가했다. 영업 이익의 경우 무려 1000%가 넘는 증가율이 눈길을 끌지만, 전분기에 비해서는 7.9% 줄어든 수준이다. 매출은 작년 3분기보다 5.3% 늘어나면서 또 한 번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LG에너지솔루션, '세계 1위'를 향한 여정에서

LG에너지솔루션은 새해 들어 줄 잇는 호재에 표정이 밝다. 특히 테슬라와의 두 번째 배터리 공급 계약이 LG에너지솔루션에 대한 기대를 견인하는 모양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11월 테슬라와 계약한 바에 따라 올해 초부터 중국 상하이 기가 팩토리에서 생산되는 '모델 Y'에 들어갈 NCM 811(니켈 80%·코발트 10%·망간 10%) 배터리를 납품할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LG에너지솔루션이 파나소닉과 CATL 등 테슬라의 다른 배터리 공급사들을 제치고 '전량' 수주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LG에너지솔루션의 공급 확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테슬라와의 관계 강화를 시사하는 대목으로 읽히고 있다. 양 사가 차세대 배터리와 관련해 기술적 협력을 타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앞서 테슬라는 지난 2020년 9월에 개최한 '배터리 데이'에서 배터리 내재화 전략을 발표하며 새로운 '4680' 배터리를 개발, 양산하는 데 착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배터리 기술 및 생산 경험이 부족한 테슬라는 배터리를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과정에서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한 배터리 업체들에게 협력을 구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배터리 기술력을 보유한 LG에너지솔루션이 테슬라에 있어 가장 중요한 파트너로 부상하리라는 분석이 대두되는 상황이다.

실제로 LG에너지솔루션 측은 LG화학의 작년 3분기 실적 콘퍼런스 콜에서 "(LG에너지솔루션은) 기존에 비해 에너지 밀도는 5배, 출력은 6배 이상 높은 원통형 배터리를 개발하는 중"이라 밝히기도 했다. 이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 경영자(CEO)가 2020년 배터리 데이에서 공개한 4680 배터리의 규격과 일치하는 것으로, 즉 LG에너지솔루션이 테슬라의 차세대 배터리와 관련해 협업할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볼 수 있다.

테슬라 '모델 Y'. 출처=테슬라
테슬라 '모델 Y'. 출처=테슬라

또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국제 무역 위원회(ITC)에서 햇수로 3년째 끌어 오던 SK이노베이션과의 배터리 영업 비밀 침해 소송에서 끝내 승기를 거머쥐면서, 기업 공개(IPO)를 앞두고 일부 불확실성을 해소하게 됐다.

지난 11일 미국 ITC가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관련 기술을 탈취한 정황을 인정, SK이노베이션의 일부 리튬 이온 배터리 셀·모듈·팩 및 관련 부품과 소재 등에 대해 10년 동안 미국 내 생산 및 수입을 금지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미 ITC의 최종 결정은 발표 이후 60일 동안의 유예 기간을 거쳐 발효된다. 이 기간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ITC의 최종 결정에 비토권(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변수로 지적되기는 하나, 어쨌든 LG에너지솔루션은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단 LG에너지솔루션은 SK이노베이션과의 합의에 힘을 실을 것으로 보인다. LG에너지솔루션 측은 ITC의 최종 결정이 나온 날에 컨퍼런스 콜을 열어 "SK이노베이션이 (미국에서) 아예 배터리 사업을 못하는 상황은 바라지 않는다"라며 "앞으로의 (합의금) 협상은 SK이노베이션의 태도에 달려 있다"라고 언급, 협상에서의 주도권을 강조했다.

해당 소송에 대한 법리적 판단이 도출되면서, 합의금 산정 기준이 미비해 답보 상태에 머물렀던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간의 협상도 속개될 전망이다. 

미국 국제 무역 위원회(ITC)는 11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LG에너지솔루션-SK이노베이션 배터리 영업 비밀 침해 소송에 대한 최종 결정을 발표했다. 출처=미국 국제 무역 위원회(ITC)
미국 국제 무역 위원회(ITC)는 지난 11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LG에너지솔루션-SK이노베이션 배터리 영업 비밀 침해 소송에 대한 최종 결정을 발표했다. 출처=미국 국제 무역 위원회(ITC)

한편,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 사업에 투자할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IPO 절차에 돌입한 상태다. 당초 LG에너지솔루션의 상장은 2~3년 뒤 이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시장 안팎의 중론이었으나, 실제로 LG에너지솔루션은 늦어도 올해 하반기에 상장을 마무리할 목표로 속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LG에너지솔루션의 IPO는 국내 자본 시장 역사상 최대 규모로 기록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의 기업 가치가 최소 50조원 이상으로 인정 받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100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일각의 관측도 있다. IPO를 통한 공모도 족히 5조원 이상의 규모는 될 것이라는 평가다.

다만 LG에너지솔루션이 현대자동차 등 완성차 업체들과 전기차 화재의 책임을 두고 공방을 벌이고 있는 점은 리스크다. 앞서 현대차 코나 EV와 GM '볼트 EV' 등의 화재 사고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잇따르면서, 해당 차량들이 탑재한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의 안정성에 대한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현재 LG에너지솔루션은 현대차와 함께 코나 EV 화재 원인을 밝히기 위한 조사를 진행하는 중이다. 만약 코나 EV 등의 화재가 배터리 결함으로 인한 것으로 드러나면 LG에너지솔루션은 8000억원 이상의 배터리 교체 비용을 물어야 하는 것은 물론, 소비자의 부정적 인식과 투자 불확실성 등과도 맞서야 할 전망이다.

SK이노베이션, 신증설과 Baas에 베팅…재무 부담은?

SK이노베이션은 올해에도 공격적인 배터리 캐파(생산 설비 용량) 신증설 전략을 이어 나간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달 28일에 이사회를 열어 헝가리 이반차에 총 22억9000만달러(약 2조5400억원)를 순차적으로 투입해 연산 30GWh 규모의 유럽 제3 배터리 공장을 짓기로 의결했다. 해당 공장은 SK이노베이션이 구축한 해외 배터리 생산 기지 가운데 최대 규모로, 올해 3분기에 착공될 예정이다.

여기에서 SK이노베이션은 유럽 제3 배터리 공장에 11억4800만달러(약 1조2700억원)을 출자하기로 했다. 이는 SK이노베이션이 코로나19 사태로 전례 없이 어려운 경영 상황에서 감행한 대규모 투자라는 점에서 우려를 촉발하기도 한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에만 2조5000억원이 넘는 적자를 냈다. 즉,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020년 영업 손실의 절반이 넘는 비용을 해외 배터리 공장 건설에 베팅한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의 이 같은 과감한 결단은 수주 물량을 소화하는 동시에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유럽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배터리 수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행보로 해석되지만, 최근에는 불확실성이 더 크게 부각되는 분위기다.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과의 ITC 소송에서 최종적으로 패소했기 때문이다. 이는 SK이노베이션의 미국 배터리 사업은 물론, 전체적인 사업 계획에도 제동을 걸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조지아주에 25억달러(약 2조8000억원) 가량을 투자해 총 21.5GWh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고 있으며, ITC의 최종 결정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도 해당 공장 투자를 위한 1조원 규모의 그린 본드를 발행하고 지역 사회와 2600여개의 현지 일자리 창출을 약속하기도 했다.

다만 SK이노베이션의 경우 ITC로부터 '조건부' 금지 판결을 받으면서 이 같은 노력이 전면 백지화될 고비는 넘겼다. ITC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현지 완성차 업체인 포드의 전기 트럭 F-150에 탑재될 배터리를 앞으로 4년 동안, 폭스바겐의 북미향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MEB'에 납품하기로 한 배터리는 2년간 공급할 수 있다. 또한 이미 미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기아 전기차의 배터리 교체·수리 등을 위한 SK이노베이션 제품 수입도 허용된다.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서는 고객사와의 계약 파기로 막대한 위약금을 물어야 할 위기를 모면한 셈이나, ITC의 최종 결정이 철저히 자국의 이익만 계산한 조치라는 점에서 SK이노베이션의 미국 배터리 사업 관련 불확실성은 해소되기 어려워 보인다. ITC의 판결은 사실상 SK이노베이션이 현지 완성차 업체들과 계약한 배터리 물량을 모두 공급하고 나면 미국 배터리 공장을 철수해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 경우 공들인 미국 배터리 사업을 지키기 위해서는 결국 LG에너지솔루션과의 합의에 사활을 걸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SK이노베이션은 최대한 출혈이 적은 쪽으로 합의금을 도출해야 하는데, LG에너지솔루션 측이 "미국 연방 보호법에 따라 손해 배상 금액의 최대 200%를 징벌적 손해 배상 금액으로 받을 수 있다"라고 언급한 대목을 미루어 봤을 때 막대한 재무적 부담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SK이노베이션이 구사일생의 활로를 찾을 가능성도 열려 있다. 13일 블룸버그 통신 등에 따르면 브라이언 켐프 미국 조지아주 지사는 ITC의 최종 결정으로 조지아주 뿐 아니라 미국 전체의 전기차 산업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바이든 미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구했다. 또 폭스바겐도 이날 성명을 내고,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를 수입할 수 있는 기간을 최소 4년 이상 연장해 줄 것을 미국 행정부에 요청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 조지아주에 있는 SK이노베이션의 전기 자동차용 배터리 제1 공장. 출처=SK이노베이션
미국 조지아주에 있는 SK이노베이션의 전기 자동차용 배터리 제1 공장. 출처=SK이노베이션

한편, SK이노베이션은 'BaaS(Battery as a Service)' 사업을 통해 중국 시장을 공략한다. BaaS는 배터리 대여·수리·재사용·재활용·충전 등 서비스들을 망라하는 개념이다.

SK이노베이션은 최근 중국 국영 자동차 회사인 베이징자동차 그룹의 배터리 재사용 사업 자회사 블루파크스마트에너지(이하 BPSE)의 지분 13.3%를 매입해 주요 전략적 투자자 지위를 확보했으며, BPSE와 업무 협약(MOU)을 맺고 현지 BaaS 사업에서 협력하기로 했다고 지난달 25일에 밝혔다. 이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전기차 시장인 중국을 교두보로 삼아 글로벌 배터리 서비스 사업을 추진, 확대하겠다는 전략이다.

블루파크스마트에너지(BPSE)가 중국 항저우에서 운영하고 있는 배터리 교체 스테이션. 출처=SK이노베이션
블루파크스마트에너지(BPSE)가 중국 항저우에서 운영하고 있는 배터리 교체 스테이션. 출처=SK이노베이션

또 SK이노베이션은 주요 성장 동력 가운데 하나인 소재 사업 자회사 SK아이이테크놀로지(이하 SKIET)의 유가 증권 시장(KOSPI 시장) 상장을 앞두고 있다. SKIET는 올해 상반기 IPO 시장의 최대어로 예측되고 있으며, 기업 가치가 5조원 안팎에 달할 것으로 증권가는 추산하고 있다.

지난 2019년 4월에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분할된 SKIET는 글로벌 톱티어 리튬 이온 배터리 분리막(LiBS) 업체로 꼽힌다. SKIET는 SK이노베이션의 전기 자동차용 배터리에 LiBS를 공급하고 있으며, 중국과 폴란드에서 건설하고 있는 공장들을 차례로 가동할 시 LiBS 캐파가 올해 말 약 13억7000㎡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삼성SDI, 담금질한 '소형 배터리'로 빛 보나

삼성SDI는 올해 특히 소형 배터리 사업에서 눈에 띄는 성장을 이룰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소형 배터리는 이차 전지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지만, 그동안 전기차용 배터리 등으로 주로 쓰여 온 중대형 배터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장성이 부각되지 못했다.

그러나 삼성SDI는 2021년부터 스웨덴 볼보와 영국 재규어랜드로버(JLR), 테슬라 등 글로벌 고객사들에 원통형 배터리를 납품하는 사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하면서 소형 배터리 플레이어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할 전망이다. 앞서 삼성SDI는 지난 2019년에 스웨덴 볼보와 전기 트럭용 배터리를 개발하는 내용의 MOU를 체결, 올해 안에 해당 배터리 개발을 완료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볼보는 삼성SDI 배터리가 탑재된 전기 트럭을 내년에 출시할 계획이다.

김현수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삼성SDI의 경우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전기차 등으로의 원통형 배터리 공급이 본격화하면서 기업 가치 상승을 견인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증권가에 따르면 삼성SDI는 세계 ESS용 배터리 시장 1위로, 이미 지난해 4분기부터 테슬라에 ESS용 배터리를 납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SDI의 테슬라향 ESS용 배터리 공급은 2015년과 2017년에 이어 세 번째다.

또 삼성SDI는 최근 테슬라의 새로운 전기차용 배터리 공급사로도 유력히 거론되는 상황이다. 국내 배터리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SDI의 배터리 기술력 등을 따져 볼 때) 삼성SDI가 테슬라에 (전기차용 배터리를) 공급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라면서 양 사의 연합 전선 구축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기도 했다.

삼성SDI 경우 테슬라 뿐 아니라 미국 전기차 산업의 전반적인 확대에 힘입어 수혜를 입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소현철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삼성SDI의 올해 자동차용 전지 매출액이 전년 대비 50% 가까이 늘어난 약 5조7850억원, 전체 영업 이익은 78.1% 증가해 1조3872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삼성SDI의 원통형 배터리. 출처=삼성SDI
삼성SDI의 원통형 배터리. 출처=삼성SDI

아울러 삼성SDI가 소형 전기 모빌리티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는 점도 강력한 성장 동력으로 꼽힌다. 삼성SDI의 경우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 능력 확충 면에서는 경쟁사들보다 존재감이 미약하지만, 마이크로 모빌리티·웨어러블 기기 등 분야에서 낭중지추의 시장 개척 능력을 보여 주고 있다는 평가다.

앞서 삼성SDI는 지난해 10월에 개최된 국내 최대 이차 전지 전시회 '인터배터리 2020'에서 대림의 전동 스쿠터 2대와 전기 오토바이 충전 스테이션 시제품 등을 당사 부스 전면에 전시, 마이크로 모빌리티용 배터리 사업을 공격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실제로 삼성SDI는 2010년에 전기 자전거용 배터리 시장에 진입한 이후 원통형 배터리를 통해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으며, 차세대 전기 자전거용 21700 배터리도 개발하고 있다. 삼성SDI 관계자는 "세계 전기 자전거 시장은 오는 2027년까지 연 평균 5%씩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와 함께 전기 자전거용 배터리 수요도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언급했다. 

지난해 10월에 개최된 '인터배터리 2020'에서 삼성SDI의 부스에 대림의 전동 스쿠터들이 전시돼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민규 기자
지난해 10월에 개최된 '인터배터리 2020'에서 삼성SDI의 부스에 대림의 전동 스쿠터들이 전시돼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민규 기자

K-배터리가 진화하는 만큼 맞수들도 강력해진다

전기차 시대의 본격적인 개화를 맞아 국내 배터리 3사가 각각 선보일 '신무기', 즉 차세대 배터리도 기대를 모은다. 국내 배터리 3사는 배터리 에너지 밀도, 즉 전기차 주행 거리를 좌우하는 원료인 니켈의 비중을 높인 하이니켈(high-nickel) 배터리에 전력투구하는 모습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니켈 함량이 90%가 넘고 값비싼 코발트는 5% 이하인 NCMA(니켈·코발트·망간·알루미늄) 배터리를 생산할 계획이다. 삼성SDI는 올 상반기 안에 하이니켈 배터리 '젠 5(Gen 5)'를 선보일 예정이다. 해당 배터리는 니켈 함유량 88%의 하이니켈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 양극재를 적용해 에너지 밀도를 약 20% 높이고 원가는 20% 절감한 것이 특징이다. SK이노베이션도 니켈 비중을 90%까지 확대한 'NCM 구반반(9½½)' 배터리 개발 소식을 알린 바 있다. 해당 배터리는 미국 포드에 공급될 예정이며, 오는 2023년 양산이 시작된다는 설명이다.

K-배터리가 생산 기지 신증설과 차세대 배터리 출시로 전열을 가다듬는 가운데, 글로벌 배터리 업체들의 저력도 만만치 않다.

중국의 전기차 '굴기'의 산물인 CATL은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 중 하나로 꼽히는 중국에서 독보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주력인 리튬 인산철(LFP) 배터리 등으로 저가 공세를 펼치고 있다.

CATL의 경우 아직 기술력이 낮아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하지만, 국내 배터리 업계는 CATL이 이미 한국 업체들의 하이니켈 배터리 기술력을 따라잡은 것으로 보고 있다. 향후 CATL이 하이니켈 배터리 양산 능력까지 갖추면 그야말로 천하무적의 '배터리 왕'이 되는 셈이다. 이는 높은 기술력을 갖춘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안주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생산 능력 확충에 나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CATL은 최근 연이어 생산 기지 신증설 투자를 발표해 눈길을 끌고 있다. CATL은 지난해 12월 약 390억위안(약 6조7000억원)을 들여 중국에 3개 배터리 공장을 증설할 계획을 밝힌 데 이어, 이달에는 광둥성 자오칭시·쓰촨성 이빈시·푸젠성 닝더시 등에 생산 라인을 신증설하기 위해 최대 290억위안(약 5조원)을 투자한다고 공시했다. 

또 CATL은 첫 해외 생산 기지로 독일에 짓고 있는 연산 14GWh 규모의 배터리 셀 공장을 올해 하반기 중 가동할 예정이며, 해당 공장에서 생산하는 배터리는 BMW와 폭스바겐 등 독일 완성차 업체들에 공급될 전망이다.

파나소닉 등 일본 배터리 업체들도 최근 증설 경쟁에 가세, 특히 K-배터리의 텃밭인 유럽에서 기회를 타진하는 모습이다. 파나소닉은 노르웨이의 국영 석유 회사 에퀴노르 및 알루미늄 제조 업체 노르스크하이드 등과 현지 배터리 합작 법인을 설립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파나소닉은 LG에너지솔루션과 CATL에 밀려 현재 세계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 3위에 머물고 있으나, 테슬라의 전통적인 배터리 공급사라는 점에서 무시할 수 없는 플레이어다.

테슬라가 배터리 공급선 다변화를 꾀하고 있기는 하나 파나소닉이 테슬라의 퍼스트 서플라이어로서 내뿜는 존재감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테슬라와의 돈독한 관계를 기반으로 파나소닉은 유럽 배터리 사업을 확대,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의 주도권을 탈환하겠다는 전략인 것으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