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기업은행 본점. 출처=각사
왼쪽부터 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기업은행 본점. 출처=각사

[이코노믹리뷰=박창민 기자] 최근 은행들이 자금세탁방지(AML) 시스템 고도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비대면 금융거래 활성화와 가상화폐 등장 등 디지털 기술 발달로 자금세탁방지를 위한 글로벌 눈높이가 높아진 상황이 주요 배경이다. 해외 금융사 M&A(인수합병)나 지분 투자 등을 통해 해외 시장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는 은행권에 AML 체계 고도화는 핵심 과제로 자리잡고 있다. 

이에 은행들은 인공지능(AI), 로봇 프로세스 자동화(RPA) 등 디지털 기술을 AML에 접목시켜 글로벌 수준의 AML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고삐를 죄고 있다.

AML에 디지털 기술 접목하는 은행권

하나은행은 올해 들어 차세대 '국외점포 자금세탁방지 거래 모니터링 시스템(국외AML 시스템) 고도화에 나섰다. 하나은행은 지난 2008년 국외AML 시스템을 도입한 이후 2012년, 2017년 두 차례에 걸쳐 대규모 고도화 사업을 완료한 바 있다.

하나은행은 이번 고도화 작업을 통해 ▲차세대 사례 분석 도입 ▲자금세탁 유형론을 활용한 시나리오 확장 ▲고도화된 자동 보고서 작성 지원 등 레그테크(Reg-tech, 금융사가 내부통제와 법규 준수를 용이하게 하는 IT기술) 기반의 모니터링을 강화한다는 목표다.

AML과 관련해 '쓰라린 기억'이 있는 농협은행과 기업은행도 추가적인 고도화를 잇달아 단행하고 있다.

농협은행과 기업은행은 각각의 미국 뉴욕지점이 AML 관련 내부통제 기준을 어겼다는 이유로 뉴욕 금융감독청(DFS)으로부터 각각 과태료 1100만달러, 과징금 약 1000억원을 부과받은 바 있다.

농협은행은 작년 11월 7개월 간의 개발 과정을 거쳐 RPA·전자창구(PPR) 등 디지털 기술을 AML에 적용했다. 앞서 농협은행은 과태료 부과을 받은 이듬해인 2018년 6월 기존 준법감시부 내 자금세탁방지단을 격상시켜 자금세탁방지 전담부서인 자금셑가방지센터를 신설한 바 있다.

기업은행도 지난해 11월 'IBK 글로벌 AML 시스템'을 도입해 모든 해외지점의 AML 업무를 실시간으로 확인·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AML 고도화 착수 도화선이 된 뉴욕지점에 대한 AML시스템 업그레이드도 주기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우리은행도 작년 9월 싱가포르, 시드니, 동경, 런던, 홍콩 등 해외 9개 지점과 인동지역본부에 글로벌 통합 AML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번 고도화로 우리은행은 무역기반 자금세탁방지(Anti-TBML), 위험평가(RA) 기능을 적용한 국내 첫 시중은행이 됐다. 올해 우리은행은 해외지점은 물론 해외법인에도 AML 시스템을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신한은행도 지난해 9월 AML 업무에 머신러닝, RPA 등의 디지털 기술을 접목하는 고도화 작업을 완료했다. 2019년에는 이상징후 탐지에 AI기술을 적용한 'XAI' 탐지 체계를 구축한 바 있다. 그룹 차원에서 준법감시인 상무를 부사장으로 격상시키는 조직 개편을 통해 AML 고도화 등 사전적 컴플라이언스 체계 강화를 위한 조치도 취했다.

국민은행은 AI와 RPA 기술을 활용해 자금세탁 의심거래를 자동식별하는 '의심거래분류모델'을 개발했고, 영업점의 AML업무 이행을 지원하고자 'AML 챗봇'을 개발해 작년 7월부터 적용하고 있다. 앞서 2019년에는 자금세탁방지 인력을 추가 확대하고 위험평가체계를 도입한 바 있다. 

왼쪽부터 한국씨티은행, SC제일은행 본점 전경. 출처=각사
왼쪽부터 한국씨티은행, SC제일은행 본점 전경. 출처=각사

외국계 은행 'AML 강자'…지방은행·인터넷은행도 AML 고도화 '꾸준'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도 설립 초기부터 AML 시스템 구축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비대면채널을 통해서만 외화송금 등 금융서비스가 가능한 인터넷전문은행 특성상 높은 수준의 AML 체계 구축이 필수적이어서다. 

카카오뱅크는 데이터 거버넌스 솔루션 전문 기업 지티원(Gtone)과 함께 두 차례 걸쳐 AML 시스템 구축에 협력했다. 지난해에는 금융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열린 '제14회 자금세탁방지의 날' 기념식에서 금융위원회 표창을 받았다. 

케이뱅크도 2016년 LG CNS와 협력해 AML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를 통해 테러지원 위험 인물리스트 등을 포함한 블랙리스트의 관련 거래를 사전에 적하는 솔루션인 '와치리스트(Watch List)' 등을 도입했다.

외국계 은행인 SC제일은행과 한국씨티은행은 국내 은행 가운데 AML 고도화 수준과 업무 체계가 가장 앞선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글로벌 수준의 자금세탁방지 정책과 시스템을 갖춘 글로벌본사(SC은행·씨티은행)의 내부 통제, 리스크관리 체계를 그대로 따르고 있어서다. SC제일은행은 2019년 열린 '제13회 자금세탁방지의 날' 기념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은 바 있다. 

지방은행 가운데는 BNK금융 계열 지방은행들이 AML 체계 구축을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경남은행은 2016년 AML 고도화를 완료한 바 있으며, 지방은행 가운데 처음으로 법인(단체) 고객확인업무 본부사전심사제도를 작년 4월부터 도입했다. 부산은행도 1년여간의 개발과정을 거쳐 2019년 11월 AML 시스템을 전면 재구축하면서 딥러닝 기반 FDS 시스템 등을 도입했다.

한편, 시행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특금법(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 시행도 은행권이 AML 시스템 재정비에 나선 이유 중 하나다. 특금법 개정안은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권고안에 따라 가상자산(암호화폐) 사업자에게 AML과 테러자금조달금지(CFT) 의무를 부여하면서 은행들이 가상화폐 거래소 등 가상자산 사업자의 자금세탁 위험도를 평가하도록 했다.

평가 이후 가상자산 사업자의 운영에서 자금세탁 문제가 불거진다면 은행이 공동 책임을 질 수도 있는 부담이 있다. 이에 앞서 은행들이 자체 역량 강화에 우선 주력하려는 점도 최근 AML 고도화의 배경 중 하나라는 분석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11월 열린 '제14회 자금세탁방지의 날' 기념식에서 "자금세탁방지 제도가 공고히 운영되기 위해서는 최일선에서 의심거래를 감지하는 금융회사, 전문성에 기반해 심사분석을 수행하는 FIU(금융정보분석원), 제공된 심사분석 정보를 활용하는 법집행기관 등 모든 관계기관들의 유기적인 공조가 필수적"이라며 "투명한 금융거래질서 확립이라는 공통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