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의 2021년 신년 영상 메시지. 출처=아모레퍼시픽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의 2021년 신년 영상 메시지. 출처=아모레퍼시픽

[이코노믹리뷰=박자연 기자] “귀하의 열정과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의 아모레퍼시픽이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회사와 동료를 향해 보여준 믿음과 애정을 기억하겠습니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002790) 회장이 최근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떠난 직원들 자택으로 보낸 편지 속 내용이다. 서 회장은 ‘설화수’ 제품과 건강 음료 ‘바이탈뷰티’ 명작수 등이 담긴 상자를 보내며 그 안에 참담한 마음도 함께 넣었다.

8일 아모레퍼시픽에 따르면 서 회장은 해당 편지에 “아모레퍼시픽과 함께 한 시간이 부디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기를 소망한다”며 “다가오는 새해에는 더 아름답고 건강한 한 해를 보내길 기원한다. 아름다움을 향한 여정에 함께 해주심에 다시 감사드린다”는 말도 담았다.

그룹 회장이 퇴직자들에게 고마움을 표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격려차 현장을 방문하거나 현 직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달하는 경우는 다수 있지만, 퇴직자들까지 배려한 사례는 드물다. 재계는 서 회장이 그간 K-뷰티 성장을 위해 회사의 함께 한 직원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서 회장은 지난해 창사 이래 처음으로 눈물의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했다. 지난해 아모레퍼시픽은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49% 감소한 610억원을 기록해 최악의 한해를 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조한 성적표는 지난해 한해뿐만이 아니었다. 아모레퍼시픽은 K-뷰티 황금기라 불리던 2010년대 중반까지 가파른 성장곡선을 그리다 사드 사태 이후인 2017년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중국 의존도가 높았기에 중국의 사드보복은 매출에 직격탄이 됐고, 실적 악화 주범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예상보다 긴 '사드 후폭풍 터널'을 경험한다.

시장에서는 '아모레퍼시픽 거품이 꺼졌다'며 그간의 공적마저 깎아내렸다. 사업포트폴리오 한계를 지적하며 '위기와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아쉬운 평가도 내놨다.

그러나 아모레퍼시픽은 시간이 흘러도 상황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사드 이후 중국 시장 공략은 점점 어려워졌다. 여기에 국내 시장이 로드숍 정체기를 맞는 등 내수부진까지 더해지면서 사정이 더욱 악화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 코로나19 사태까지 발생하면서 아모레퍼시픽은 창사 이래 최악의 상황마저 맞는다.

지난 3여년간 수많은 자구책 마련에 나섰던 서 회장이 지난해 꺼내든 카드는 결국 인력감축이었다. 서 회장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룹 전반에 걸쳐 적신호가 켜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서 회장은 전사 차원의 비용 절감, 임원 급여 삭감 등은 물론 창사 이래 첫 희망퇴직도 실시한다.

15년 차 이상 근무한 직원들에게는 근속연수에 5개월치 급여를 더한 위로금을 지급했고, 20년차 이상 직원들은 40개월치의 위로금을 지급했다. 회사 성장의 한축이었던 면세점도 구조조정에 포함시켰다. 근속연수나 직급에 상관없이 750명에 달하는 전 인력을 대상으로 이뤄졌고, 위로금은 1억원을 지급한다.

남게 된 직원들도 뼈를 깎는 고통이 분담됐다. 잔류 직원들은 올해부터 새롭게 시행되는 인사제도가 적용, 기존 6단계였던 직급 체계가 5단계로 축소됐고 승진할 때 3~6% 수준이던 연봉상승률도 3%로 통일되면서 승진 시 평균 4.5%였던 연봉 상승률이 평균 1.5%포인트 낮아졌다. 잇따른 구조조정과 인사제도 변화로 크게 술렁였다는 게 내부 관계자들의 말이다.

이를 염두한 듯 서 회장은 2021년 경영방침을 ‘위닝 투게더(Winning Together)’로 정하며 위기 극복 의지를 다졌다. ‘강한 브랜드’, ‘디지털 대전환’, ‘사업 체질 혁신’을 3대 추진 전략으로, 재도약 각오도 내비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 회장은 회사를 떠나야만 했던 직원들에 대한 아쉬움과 미안함 컸던 것으로 관측된다. 20대 중반 나이에 아모레퍼시픽에 합류해 지난 30여년간 바닥부터 경영에 참여했던 서 회장이었기에 직원에 대한 애뜻함이 남달랐을 것이란 게 그룹 안팎의 전언이다.

서 회장은 내부적으로도 실추된 임직원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한 ‘포스트 코로나’ 대비에 적극 나서는 모습이다. 그는 신년사를 통해 “팬데믹 이후 시대를 미리 대비하면 오늘 상황을 성공 발판으로 만들 수 있다”며 “임직원 모두 이 시대 인재로 육성되는 기회를 아낌없이 제공하고, 일함으로써 행복과 성취를 느끼며 성장하는 길을 닦을 것”이라며 남은 직원들의 결속을 다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CEO가 회사를 떠난 직원을 챙기는 것은 물론 새로운 경영방침 아래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의지는 직원 불안감을 해소하고 사기를 북돋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올해는 특히 효율화 작업을 통한 손실 구조 개선이란 구체적 목표를 세웠고, e커머스 시장 확대라는 중국 시장 내 점유율 회복 목표를 세운 만큼 실적 반등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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