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전지현 기자] #. 올해 4학년이 되는 대학생 안수현(23·여)씨는 최근 친구들과 '랜선 생일파티'를 즐겼다. 장소 이동은 없었다. 비대면 화상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서로 연결, 준비한 맥주와 안주를 갖고 각자 방에 모였다. 오후 7시가 되자 7명의 친구들은 화상 채팅방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곧 '짠~'하고 외친 뒤 생일 축하송을 불렀다.

안씨는 이날 아침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선물도 미리 받았다. 그는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혼자 있다는 생각에 우울할 때가 많았다"면서도 "랜선으로라도 서로 연결됐다는 심리적 위안을 얻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새로운 술 문화가 꿈틀거리고 있다. 사람들은 왁자지껄한 술자리 보단 집에서 홀로마시는 술, 자신만의 개성을 살린 술문화에 선호하고 있다. 하지만 '혼술(혼자 마시는 술)'만은 아니다. 직장인 회식부터 송년회, 신년회, 생일파티까지 화상이나 온라인으로 즐기는 '랜선 술자리'도 인기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일상생활 속 대면 접촉을 줄이면서 오프라인 모임도 온라인상에서 이뤄지는 '랜선 홈(home)술(집에서 마시는 술)'로 확대된 것이다. 바야흐로 '혼술·홈술 시대'다.

일상생활로 스며든 '혼술·홈술', 주류 새 트렌드

'랜선 홈술 문화'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가 장기화되면서 사람간 접촉을 최소화하는 '언택트 문화'가 자리잡은 데서 확산됐다. 그렇다고 과거에 '홈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술 한잔을 마셔도 집에서 편하게 즐기는 '혼술·홈술 문화'는 1~2인 가구 및 혼자만의 시간을 소중히하는 사람들 등의 증가에 따라 일상생활로 스며들고 있었다.

달라진 것은 '랜선 술자리'가 추가됐다는 점이다. '랜선'이란 온라인 네트워크를 이용한 만남을 통칭한다. 과거 네트워크로 연결돼 함께 게임을 즐기던 용어에서 시작됐으나 오늘날 모든 종류의 온라인 모임을 뜻한다. 코로나19 여파에 1년여간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낸 영향이다. 사람들 사이에선 우울감과 무기력증 등이 생겨났고, '코로나블루'란 신조어도 탄생했다. 때문에 사람들은 함께 어울리길 원했고, 집에서 비대면으로 같이 즐기는 새로운 '홈술 문화'가 등장했다.

혼자 술을 마시면 사연이 있거나 성향이 별난 것으로 여겨졌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퇴근 후 OTT로 영화를 보거나 하루의 피로를 달래는 '나만의 힐링'으로 '혼자 마시는 술 문화'가 떠올랐고, 코로나19 여파와 맞물리면서 주류소비는 자연스레 가정으로 들어왔다. 여기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되면서 '랜선 홈술'까지 유행처럼 번져, '혼술'과 '홈술'은 한국 음주문화 트렌드로 자리잡은 모양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가 2020년 국민 주류 소비·섭취 실태를 조사한 결과, 코로나로 1회 평균음주량과 음주 빈도는 감소했지만 혼술과 홈술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0월 농림축산식춤부와 한국농수산식품공사가 발표한 '주류시장 트렌드 보고서'에서도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 술을 마시는 상황에 대한 답변이 '혼자서'가 45.2%로 가장 많이 차지했다.

술을 마시는 장소는 외부에서 집으로 바뀌었다. 식약처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이전에는 음주 장소가 주로 주점‧호프집(82.4%), 식당·카페(78.9%) 등 외부 영업시설이었으나 코로나19 이후에는 자신의 집(92.9%), 지인의 집(62.9%), 식당·카페(35.8%) 순으로 조사됐다.

회식도 집에서...주류 소비패턴도 바꾼 코로나

"오늘 신입사원 환영회 겸 송년회 회식합니다. 모두 6시30분까지 화상회의 프로그램에 접속해 주세요. 회식비는 지원합니다."

재택근무 5개월차에 돌입한 김상현(36·남)씨가 화상회의 프로그램으로 회의를 마친 시각은 오후 4시30분. 김씨는 배달앱으로 피자를 주문한 뒤 5시50분이 되자, 어제 커피빈에서 미리 사놓은 칵테일 '깔루아 에스프레소 마티니 캔'을 꺼내들었다. 회식 시간은 단 1시간. 김씨는 "1차로 끝나는 회식문화가 낯설지 않게 됐다"며 "원하는 술 종류와 안주를 취향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한 사례자의 화상 회식 경험담이다. 코로나19 장기화에 직장내 회식이나 개강·종강 파티도 집에서 나홀로 즐기는 '비접촉 사회'가 일상화됐다. 이 영향에 주류 소비패턴도 달라졌다. 특히 새로움을 추구하는 젊은 층에게 전통주가 새로운 술로 인식되고 있었다. 20학번 대학생 유선화(20·여)씨는 "1년 내내 화상으로 강의를 듣다 보니 대부분 술자리가 온라인으로 이뤄지는데 불편함이 없다"며 "요즘 고흥유자주, 귤주 등 시트러스 계열 전통주에 푹 빠져 있다"고 전했다.

'혼술·홈술족'들은 술의 맛을 중시한다. 술 종류와 도수도 나만의 술로 가볍게 즐기는, 자신만의 개성을 살린 술을 선호하는 성향이 코로나19와 맞물리면서 음용문화에서도 '나심비' 소비문화가 작용하는 것이다. 나심비는 '나'와 '심리', '가성비'의 신종 합성어로, 자기 만족에 지갑을 여는 소비심리를 말한다.

이에 국내 주류시장 흐름도 바뀌고 있다. 혼술·홈술이 가능한 커피매장 판매의 낮은 알코올 도수 RTD(Ready-to-drink) 칵테일을 테이크아웃하거나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순한 술을 찾는 이들이 증가세다. 취향대로 만들어 원하는 만큼만 즐기는 소비자가 늘자, 위스키는 소용량화되고 술병도 작아졌다.

건강을 우려한 소비자들은 코로나19가 면역력이 부족하면 걸리기 쉽다는 연구결과를 의식한 듯 무알콜을 찾고 있고, 소비 주축으로 올라선 MZ세대들은 낮은 도수로 즐길 수 있는 와인을 향해 손길을 뻗고 있다. 젊은 여성 층은 패키지가 세련되고 트렌디한 술을 선호하며 부드럽고 마시기 편한 술을 주종에 관계없이 원하고 있다. 색다른 술을 즐기려는 사람들에겐 한달에 한번씩 몇가지 술을 보내주는 주류 구독서비스가 각광받고 있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로 혼술·홈술은 지속적인 주류음용 트렌드로 자리잡았다"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주류 음용 태도는 술을 마시는 빈도와 장소, 주종이 지금의 변화된 흐름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