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중국이 유럽의 손을 잡았다. 코로나19 및 홍콩 국가보안법 정국이 전 세계를 강타하기 직전까지 미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중국 화웨이 5G 장비를 속속 도입했던 유럽의 행보가 오버랩되는 순간이다. 다자주의를 기점으로 동맹과 함께 대중국 포위망을 구축하려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외교안보구상이 첫 걸음을 떼기 전부터 스텝이 꼬이는 분위기다.

중국과 유럽의 만남은 미중 갈등의 최전선에 노출될 수 밖에 없는 한국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역사적인 투자협정
AFP 등 외신은 30일(현지시간) 중국과 유럽연합이 투자협정을 공식 체결했다고 보도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샤를 미셸 유럽연합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의 화상통화를 통해 투자협정에 공식 서명했다.

2014년 1월 협상이 처음 시작된 후 7년 만이다.

중국은 이번 투자협정을 통해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국제노동기구 협약을 준수하는 한편 외국 기업을 대상으로 강제 기술 이전을 금지하기로 했다. 기업에 대한 보조금을 투명하게 지급하는 것과 외국 기업의 중국 진출의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 골자다.

무엇보다 기업의 공정경쟁활동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폐쇄적인 기업 환경을 바탕으로 자국 시장을 지켜온 중국이, 이번 유럽과의 투자협정을 통해 사실상 자국 시장의 빗장을 걷어버린 셈이다. 2000년대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서비스를 대부분 몰아내고 바이두와 알리바바, 텐센트, 웨이보 등을 키워온 중국 정부의 기존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번 투자협정이 중국에 다소 불리한 내용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바이든 행정부 예봉 꺾었다"
미중 갈등의 큰 틀에서 이번 투자협정은 미국의 공세를 막아내려는 중국의 전략적 포석이라는 평가가 중론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은 중국과 무역분쟁을 벌이는 한편 중국 기업에 대한 전방위적인 압박에 나선 바 있다. 그 연장선에서 ZTE에 이어 화웨이에 대한 강력한 견제구를 날리는 한편 동맹국들과 연합해 일대일로의 큰 꿈을 꾸는 중국의 대국굴기를 막으려 모든 전력을 동원했다.

다만 유럽은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 압박에 미온적으로 반응했다. 올해 초 영국에 이어 프랑스, 네덜란드 등 다수의 국가들이 속속 화웨이의 5G 장비를 도입하며 미국의 대중국 강경노선과는 미묘한 온도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아메리카 퍼스트'로 대표되는 극단적인 보호 무역주의가 강해짐에 따라 대서양을 사이에 둔 새로운 무역분쟁이 시작되는 등 유럽은 좀처럼 미국의 입맛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다행히 미국 입장에서 이러한 분위기는 코로나19 책임론, 홍콩 국가보안법 정국을 거치며 '정상'으로 돌아왔다. 유럽 입장에서 용납하기 어려운 코로나19 사태 및 홍콩 국가보안법이 시작되며 중국은 다시 '외톨이'로 전락해 버렸다.

이런 가운데 차기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동맹, 즉 유럽과 함께 인도 태평양 중심의 대중국 포위전선을 구축하려는 뜻을 밝혔다. 미국 홀로 중국과 극단적인 전투를 벌이는 것이 아니라 유럽과 같은 동맹과 함께 대중국 포위전선을 완성하겠다는 의지다. 국방수권법을 통해 중국의 통신장비를 사용하는 국가에 주둔하는 미군 병력의 감축까지 시사하는 등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국 압박기조는 여전히 승계하면서도 '동맹과 함께' 중국과의 일전에 나서겠다는 각오다.

실제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29일(현지시간) 차기 행정부의 외교안보팀과 첫 화상회의를 연 후 기자회견을 통해 "세계 미래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는 나라에 둘러싸여 있을 때 미중 관계의 사안이 더 강력해지고 효과적일 것"이라며 "(동맹과의) 단결을 통해 자유세계를 이끌 신뢰를 되찾겠다"고 강조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지명자,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지명자 등 차기 바이든 행정부를 이끌 외교안부 수뇌부와 첫 회동을 가진 후 나온 메시지의 핵심은 명료하다. 홍콩 민주화와 신장위구르 이슬람족 인권 탄압을 거론하며 강력한 대중국 압박 의지를 보여주는 한편 동맹과 함께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에 나선다는 구상이다.

다만 바이든 당선인의 '동맹과 함께하는 대중국 포위전선 구상'은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거대한 난관과 직면했다. 바이든 당선인의 대중국 구상이 나온 다음날 중국과 유럽연합이 투자협정에 공식 서명하며 무엇보다 '동맹과 함께 한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야심찬 계획이 묘하게 삐걱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자국 시장의 폐쇄적인 빗장을 걷어내는 초강수를 감수한 중국의 의지가 돋보인다. 이날 파이낸셜타임스는 "중국 정부가 바이든 행정부의 예봉을 꺾었다"고 보도했다.

"꼬인다 꼬여"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의 외교안보 전략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두 지역, 즉 이란과 중국 및 북한을 아우르는 아시아에서 대략적인 청사진을 내놓은 상태다.

이란과는 관계정상화를 꾀하려는 분위기다. 오바마 행정부 당시 이란 핵협상 타결의 주역인 토니 블링컨 전 국무부 부장관을 국무장관에, 제이크 설리번 전 부통령 국가안보보좌관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지명한 것만 봐도 바이든 행정부의 중동지역 외교안보정책기조를 예상할 수 있다. 바이든 당선자 스스로도 "이란과의 핵 프로그램을 둘러싼 분쟁이 해결되도록 협상이 필요하다"고 수 차례 공언한 바 있다.

다만 최근 이란을 둘러싼 중동지역의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상태에서 지난 1월 미국이 가셈 솔레이미니 전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을 드론으로 폭격해 사살하는 등 역내 '시아 벨트'의 확장에 제동을 걸고 있다. 2018년 5월 14일(현지시간)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하는 등 친 이스라엘 정책을 강하게 펴는 가운데 이란과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시아 벨트의 팽창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그 연장선에서 지난 9월 15일(현지시간)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이 아랍에미리트(UAE)·바레인과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한 아브라함 협정이 수립됐다. 이스라엘과 수니파의 연대며, 정확히는 미국 주도의 중동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미국이 이스라엘에 힘을 실어주는 한편 이스라엘은 수니파 국가인 UAE 및 바레인과 협력해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과의 대결에 나서는 그림이다.

문제는 이란과의 관계 정상화를 선언한 바이든 차기 행정부의 등장이다. 만약 바이든 행정부의 미국이 이란과의 관계 정상화에 나설 경우 트럼프 행정부가 그린 이스라엘 및 수니파 중심의 중동 지역 역학구도는 완전히 뒤집히는 셈이다. 여기서 이스라엘과의 연대가 유력했던 수니파 맹주 UAE가 아브라함 협정에서 살짝 발을 빼려는 분위기가 연출되는 등 트럼프 행정부와 이스라엘 시각에서는 위험천만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서 11월 27일(현지시간) 이란의 핵 과학자인 모흐센 파흐리자데가 수도 테헤란 외곽인 아브사르드에서 신원불상자들이 저지른 폭탄 테러에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가 그 배후라는 설이 유력한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도 이를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 배후가 누구이든 파흐리자데 사망 사건은 향후 미국과 이란의 관계가 더욱 험악하게 돌아갈 것이라는 전망에 힘을 실어준다. 당연히 이란과의 관계 정상화를 노리는 바이든 행정부는 본격적인 중동 외교의 틀을 잡기도 전 예상하지 못한 암초를 만나고 말았다.

대중국 전선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행정부가 아시아 외교안보 전략의 틀을 북한을 포함한 동아시아로 잡은 것과 달리, 바이든 행정부는 인도 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전략을 예고하는 중이다. 29일(현지시간) 차기 외교안보 수뇌부들과의 회동 후 인터뷰에서 중국의 위구르 인권문제를 거론하면서도 북한의 인권문제를 거론하지 않은 장면이 눈길을 끄는 이유다. 바이든 당선인은 문재인 대통령과의 첫 전화통화에서도 한국을 인도 재평양 중심 전략의 핵심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이렇게 변화된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 전략은 기본적으로 동맹국들과의 연합 및 공조를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이번에 중국과 유럽이 사실상 '손'을 잡으며 바이든 행정부의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 전략도 상당부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한국의 줄타기
지난 11월 15일 한국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참여했다. RCEP는 싱가포르·필리핀·태국·말레이시아·미얀마·인도네시아·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브루나이 등 아세안(ASEAN) 10개국을 비롯해 한국·중국·일본·호주·뉴질랜드 등 총 15개 나라가 함께하며 한국은 비아세안 국가인 AFP(ASEAN FTA Partners facilitator)를 사실상 이끌며 다자협상을 주도했다는 설명이다.

RCEP는 5조4000억달러의 무역규모, 22억6000만명의 인구가 활동하는 메가 FTA라는 점과 더불어 중국 주도의 경제블록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중국과 국경분쟁을 겪는 인도가 참여하지 않았으나 미국 중심 대중국 안보 포위망인 쿼드 당사자인 일본, 그리고 호주가 CPTPP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중국의 존재감이 강해진 것으로 풀이된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RCEP 출범 직후 "중국의 승리"라고 평가한 이유며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지역 경제 회복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 성장을 이끌 것"이라며 만족스러운 입장을 밝힌 배경이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유럽연합과 별도의 투자협정을 맺으며 바이든 행정부의 등장과 함께 재개될 미국의 공세에 대응할 카드를 차곡차곡 모으는 중이다.

미국과 중국에 정치 및 경재의 상당부분을 의존하는 한국 입장에서는 절묘한 줄타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선은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과 관련해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오바마 행정부 당시 미국 주도로 출범한 TPP의 후신인 CPTPP는 트럼프 행정부 시절 미국의 탈퇴로 다소 빛을 바랬으나, 바이든 행정부는 파리기후협약과 더불어 CPTPP 재가입 가능성을 꾸준히 시사한 바 있다. 중국과의 자유무역경제 경쟁에서 뒤질 수 없다는 각오인 가운데, 한국이 CPTPP에도 가입해 최소한의 줄타기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미 한국 정부는 움직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제57회 무역의날 기념식 기념사에서 "시장 선점을 위해 모든 나라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보호무역의 바람도 거셀 것"이라며 WTO, G20 등 국제사회 논의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CPTPP 가입을 계속 검토할 것"이라며 "자유무역과 다자주의를 회복하는데 힘쓸 것"이라 강조했다.

장기적으로는 미국과의 공조를 강화하면서 중국과의 밀착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바이든 행정부 중심의 미국 주도 대중국 압박 전선이 우선은 계획대로 가동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유럽은 그 사이를 오가며 절묘하게 실익을 챙기는 중이다. 한국도 이러한 유럽의 전략적 선택에 주목하며 기민한 상황판단에 나서야 한다는 논리에 힘이 실린다.

한국에 진출한 중국 기업, 특히 화웨이와 같은 ICT 기업과의 적극적인 연대도 고려해볼 가치가 있는 카드다. 정성림 ICT핀아시아전략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글로벌 무역 및 ICT 업계에서 미국과 중국이라는 거대한 권력이 한 판 승부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비록 유럽처럼 판을 결정할 권한이 없다고 해도 한국의 길은 오로지 줄타기를 통한 실익을 챙기는 것"이라며 "미국의 심기를 건들이지 않는 선에서 한국의 국가 안보, 여론을 의식해 화웨이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각 국 정부에 과감한 어필에 나서는 것도 좋은 메시지가 될 것"이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