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권일구 기자] 소프트 콘텐츠 제작자 패스트뷰 오하영 대표를 만났다. 그는 한국에서 생활한지 불과 7년, 창립 3년 만에 회사를 급성장 시킨 비결을 ‘상생’ 이라는 한 단어로 함축했다. 특히 늦게 창업한 만큼,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 있다는 그. 외국 생활이 편할 만한데 한국에서 창업을 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의 목표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패스트뷰 오하영 대표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패스트뷰 오하영 대표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2명으로 시작해 3년 만에 80명으로 키우다

패스트뷰 오하영(만 37세) 대표는 7년 전 한국에 들어왔다. 외국에서 30년 정도 생활을 했다. 미국에서만 17년 정도 있었고 나머지는 프랑스, 스웨덴, 체코 등이었다. 외교관의 아들인 탓에 외국 생활이 몸에 배어 있는 그다. 한국에서 창업을 처음 했고, 지금 약 3년이 흘렀다. 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한국에서 2명으로 (사업)시작을 했는데, 2년 10개월 만에 80명의 직원들을 둘 규모로 성장했다. 급성장하고 있고 늦게 창업했다는 생각에 오하영 대표는 하루하루를 굉장히 열심히 살고 있다고 전했다.

오 대표는 대학에서 컴퓨터공학과 그래픽 디자인을 동시에 전공했다. 졸업 후 그는 기획 분야의 일을 맡아 해왔는데, 그 중에서도 모바일 기획을 주로 했다. 외국에서는 모건스탠리에서 잠시 인턴 생활도 해봤고 그 밖의 대기업, 슈퍼셀 등 주로 모바일 스타트업으로 유럽에서 일한 경험이 많다. 그가 패스트뷰를 창업하게 된 계기는 개인적으로 투 잡, 부업을 하면서 한국에서 잘 보지 못했던 외국 콘텐츠나 트렌드를 제작하고 유통을 시키다 보니, 막연하게 혼자해서는 콘텐츠 트렌드가 너무 빨리 바뀌고 이런 식이라면 1~2년 정도 밖에 못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유통 활로를 넓히고, 나 혼자가 아닌 남들도 같이 제작해서 함께하면 하나의 사업이 될 수 있겠다 생각이 들어, 좀 더 길게 내다보고 창업을 시작하게 됐다.

오 대표가 한국에 처음 들어와서 소프트 콘텐츠라는 단어를 들었던 게 2년 전 구글코리아 담당자로 부터였다. 당시에는 채널이 5~6개 밖에 없었다. 구글에서는 ‘아직 소프트 콘텐츠가 4~5년은 국내에서 더 이어질 것’이라고 얘기하면서 소프트 콘텐츠는 좀 더 말랑말랑하게 빨리 넘어갈 수 있는, 텍스트 이미지 위주의 정보를 전달하는 기사형 보다는 더 부드러운 콘텐츠라고 설명했다.

패스트뷰 오하영 대표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패스트뷰 오하영 대표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콘텐츠 커머스로 비즈니스 모델 ‘업그레이드’

오하영 대표는 한국에 와서 블로거 활동을 해왔다. 외국에서도 블로그를 운영하긴 했었는데, 일반 블로그가 아닌, 정보성이거나 스토리형 콘텐츠 사이트 등을 운영해 왔다. 직장인들에게는 재미있는 정보와 내용들을 제공했다. 그리고 동유럽에 잠시 머물면서 한창 K-POP이 유명세여서 이것과 관련해서 콘텐츠들을 많이 만들었고, 한국에서는 주로 외국 트렌드를 소개하는 내용을 실었다. 오 대표는 이 점을 강조했다. 그는 “1~2년 전 회사에 대한 기사가 나갔을 때는 패스트뷰가 소프트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였다. 물론 맞는 얘기다”라며 “투자 유치를 하면서 비즈니스 모델이 많이 바뀌었다. 지금은 비즈니스 모델이 콘텐츠 커머스 쪽으로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에는 콘텐츠를 많이 만들어 자체적으로 제작을 했고 그렇다 보니 광고 수익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콘텐츠가 트래픽을 일으키니 광고수익은 늘어나는 반면, 운영면에 있어서는 비효율적이어서 숙박권, 자동차, 강의 등도 팔았다. 결국 비즈니스 모델을 콘텐츠 커머스로 방향을 결정하게 됐다. 이로써 이전까지 콘텐츠를 제작하고 유통을 했던 부분의 비중이 많이 줄었다. 오 대표는 “투자도 그렇고 PR하고 싶은 부분도 크게 봤을 때는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이 업그레이드 된 것을 내세우고 싶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콘텐츠...생각의 전환이 100억 매출로

패스트뷰도 창업한 지 3년 정도 되다보니,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기존에는 직접 취재를 안하고 큐레이션(이미 만들어져 있는 콘텐츠를 목적에 따라 분류하고 배포하는 일)하고 있는 정보성, 스토리형 콘텐츠가 대부분이었다면 지금은 유형들이 다양해 졌다. 이 회사 역시 인터뷰나 리뷰형 콘텐츠를 하고 있고 커머스 상품 콘텐츠, 네이티브 콘텐츠, 그리고 역발상으로 생각을 해서 유튜브 영상들을 소프트 콘텐츠로 반대로 전환시키는 작업 등을 하고 있다. 

그는 “사실 1년 전까지만 해도 네트워크 광고나 광고대행, 즉 대기업들의 콘텐츠 광고 대행을 많이 해줬다”며 “총 매출의 15~20% 정도고 나머지 80%가 네트워크 광고였다”고 회상했다. 이어 “작년 초중반 때 쯤 정말 많은 트래픽을 일으키고 있는데 한 달에 PV 기준으로 약 1억3000만뷰 정도를 일으켰다”며 “광고 수익만 의존하기에는 너무 아까웠다”고 덧붙였다.

오 대표는 이후 직접 판매를 해보자는 생각으로 강의나 교육콘텐츠 등을 팔았고 결론적으로는 4~5만원 이하의 아이디어 상품을 많이 팔았다. 이 같은 콘텐츠 커머스 사업을 시작하면서 매출이 껑충 뛰었다. 한 달 매출이 10~12억원 정도 발생하고 있는데, 이 중 커머스가 차지하는 금액이 8~9억원 정도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연간 매출 100억원에 달하는 회사로 성장한 것이다.

패스트뷰 오하영 대표  사진=패스트뷰
패스트뷰 오하영 대표 사진=패스트뷰

남의 즐거움은 곧 나의 즐거움

오 대표는 스타트업을 하면서 남들과 같이 돈을 버는 지금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그가 한국에 입국해서부터 지금까지 정말 많이 받는 질문이 ‘그래서 콘텐츠로 돈을 어떻게 버는데?’라고 한다.

그는 “사실 너무 안타까운 것은, 내가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을 떠나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콘텐츠로 정말 무수히 많은 수입을 낼 수가 있는데, 한국에 와서 보니 낭비되는 트래픽이 너무 많다는 것을 느꼈다”며 “콘텐츠로 너무 똑같은 유가기사, 광고 등으로 업체나 크리에이터들이 움직이고 있더라. 그래서 이런 수익구조 또는 유통구조 등 새로운 것을 소개 시켜주고, 또 서로가 적대감 없이 협업하면서 파트너사나 제휴사들과 함께 돈을 벌 때 정말 희열을 많이 느꼈다”고 말했다.

하지만 힘든 일도 많았다. 우선 한국문화에 대한 적응이 어려웠다. 특히 비즈니스간 상행부분이 컸다고 한다. 그는 “한국에 들어와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이런 속담이 정말 이해가 안됐다. 남을 짓밟고 올라가는 것도 그렇지만, 남이 잘되면 못 봐주는 그런 것, 무언가 하나를 해주면 그걸 돌려받아야 하고, 이런 부분에서 한국문화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최종 사업 목표 ‘상생’

한국의 많은 이들이 1인 방송 크리에이터 등을 꿈꾸고 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잘 만들면 와서 보겠지? 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오 대표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는 좋은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정말 많다. 그런데 상품이 모두 잘 팔리지 않는다.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양질의 콘텐츠라고 해도 사람들이 보지 않으면 헛수고다. 공격적인 마케팅이 필요하다. 유통을 뚫기 위해서는 자기를 적극 내세우는 마인드셋(사고방식)이 필요하다.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답은 두 가지다. 하나는 무조건 실천하고 두 번째는 한계에 달할 때 까지 꾸준히 해라라는 것.

오하영 대표의 사업의 목표는 ‘상생’이다. 그는 상생을 크게 두 분류로 나눴는데, 먼저 파트너사와 제휴사, 아니면 동등한 위치의 크리에이터라고 보는데 그는 “다 같이 상생하는 것이 제일 좋다. 사업의 목표가 다 같은 돈을 벌려면 남을 돈을 잘 벌게 해주는 것이 나도 돈을 벌 수 있게 해준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두 번째 상생파트는 팀원들과의 상생이다. 예를 들어 메시나 마이클조던 같은 사람들은 자기 능력도 뛰어나지만 주변의 팀 메이트를 올스타로 다 만들어 준다. 오 대표 역시 팀원· 직원들이 똑같이 업그레이드되고 그런 부분을 상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