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전현수 기자] 올해 ‘테슬라 열풍’을 시작으로 자율주행차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치가 매우 높은 상황이다. 자율주행 AI 기술 역시 빠른 속도로 고도화되고 있다. 이 가운데 자율주행차 인공지능(AI) 학습에 게임 기술이 활용되는 사례가 있어 눈길을 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이달 발간하고 시장 조사업체 스트라베이스가 작성한 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11+12월호)는 “자율주행 AI의 개발에 GTA와 같은 게임을 활용하려는 시도는 일찍부터 있어 왔으며, 사실적인 게임 구현에 필수적인 GPU 기술은 가상환경에서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는데 핵심 플랫폼이 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불 밖은 위험해”…안전한 학습 가능한 ‘가상 주행’


자율주행 AI 학습의 원리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학습 원리와 같다. 많이 운전할수록 운전 실력이 좋아진다. 이런 이유로 자율주행차 개발 업체들은 실제 운전자들의 도로주행 패턴과 상황별 대응 등 데이터를 AI에 학습시킨다.

그런데 실제 도로가 아닌 가상 도로에서 AI를 학습시키는 사례가 있어 눈길을 끈다. 스웨덴 완성차업체 볼보(Volvo)는 지난달 자사가 개발한 주행 시뮬레이터 ‘얼티밋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를 공개했다. 이 시뮬레이터는 움직이는 운전 좌석, 햅틱 피드백이 내장된 스티어링 휠(운전대), VR 헤드셋 등을 갖추고 있다. 외형도 실제 자동차와 비슷하게 생겼다.

‘얼티밋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출처=볼보 글로벌 뉴스룸
‘얼티밋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출처=볼보 글로벌 뉴스룸

볼보의 시뮬레이터는 게임 상용화 엔진으로 유명한 유니티 엔진을 사용하고 있다. 유니티 엔진은 실제 세계를 가상 공간에 사실적으로 재현한다. 또 사람들의 행동은 모션 캡처 기술로 데이터화되고 가상 환경 속에서 반영된다.

보고서는 “인공지능 개발 전문가들은 볼보의 방식에 대체로 호의적”이라면서 “비디오게임과 같은 합성된 학습 데이터의 사용 효과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합성 데이터를 미세하게 조정하는 것이 실제 데이터만을 사용해 도출한 결과만큼 좋은 학습 결과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이어 “볼보의 가상훈련 환경은 실제와 매우 흡사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다양한 날씨와 조도 조건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고, 동물이 도로에 뛰어드는 상황 같이 갑작스러운 위험이 발생했을 때 자율주행 차량이 어떻게 반응할 수 있는지를 테스트할 수도 있다. 햅틱 피드백과 VR 시스템을 탑재하고 있어 사람이라면 특정 시나리오에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관한데이터를 수집할 수도 있다. 실제 세계에서 테스트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상황이나 혹은 거의 발생하지 않아 데이터가 부족한 상황을 얼마든지 테스트해 볼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얼티밋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출처=볼보 글로벌 뉴스룸
‘얼티밋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출처=볼보 글로벌 뉴스룸

글로벌 1위 그래픽 업체 엔비디아도 볼보와 비슷한 방식으로 자율주행 시뮬레이션 기술을 선보인 바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지난 10월 연례행사인 ‘GTC 2020’에서 엔비디아 드라이브(NVIDIA DRIVE) 기술 개발과 시뮬레이션 테스트 방식을 시연했다.

젠슨은 동영상 데모에서 가상의 엔비디아 차량이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엔비디아 본사 주변의 고속도로와 시내거리를 주행하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이는 모두 시뮬레이션으로 진행되는 상황이었다. 17마일 거리의 주행을 통해 엔비디아의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는 실제 환경과 거의 동일한 시뮬레이션 환경에서 도로, 보행자, 교통상황을 학습했다.

엔비디아는 지난해 자율주행차 시뮬레이션 플랫폼인 ‘엔비디아 드라이브 컨스털레이션을 출시한 바 있다. 토요타의 자율주행 연구 부문 자회사인 TRI-AD2가 첫 고객이며글로벌 자율주행 차량 시험인증기관 티유브이슈드(TÜV SÜD) 등이 드라이브 컨스털레이션을 사용해 자체 자율주행 검증 표준을 공식화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GTA5 이미지. 출처=GTA5-Mods.com, 한국콘텐츠진흥원
GTA5 이미지. 출처=GTA5-Mods.com, 한국콘텐츠진흥원

이처럼 기존에 ‘게임 개발 기술’로 여겨지던 기술이 자율주행 AI 학습에 도움을 주고 있는 가운데 사실은 과거부터 ‘GTA5’ 등과 같은 게임을 이용해 자율주행과 컴퓨터 비전 알고리즘을 학습시켜 온 사례는 여럿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런 프로젝트들은 타사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한 것이기 때문에 개발사와 법적 문제가 불거져 원활히 지속되지 못했다.

보고서는 “게임과 자율주행차 개발의 관계는 서로 다른 분야 간 기술 교류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많은 드라이빙 게임들이 최대한 현실적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해 왔는데, 그 과정에서 발전한 기술이 이제는 게임이 모방하고자 했던 실제의 차량을 기술적으로 진화시키는데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AI, 게임을 더 똑똑하게


반대로 AI가 게임 개발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AI 기술을 통해 레이싱 게임은 더욱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 예를 들어, 포르자(Forza) 시리즈는 2005년 첫 출시 이래 플레이어가 아닌 게임 시스템이 구동시키는 레이싱 카를 보다 사실적으로 제어하기 위해 딥러닝4신경망을 채택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알고리즘이 게임 이용자의 운전 스타일을 모방한다. 때문에 포르자의 AI 레이서들은 전세계 모든 이용자의 장점, 실수, 약점 등을 흉내 낼 수 있다. ‘예측할 수 없는’ AI 레이서가 탄생하는 셈이다.

AI 기술은 국내 게임 업계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특정 게임 장르나 플랫폼에 국한되지도 않는다. 국내 게임 빅3인 넥슨, 넷마블, 엔씨소프트 역시 AI 연구개발(R&D)에 투자를 하는 한편 실제 기술 적용도 진행 중이다. 개발 영역에서는 단순 작업을 더욱 빠르게 구현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서비스 영역에서도 매일 쏟아지는 이용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더 오래,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방향으로 게임을 가다듬는다. 기획, 프로그래밍, 아트, 밸런스 조절, 운영,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전 단계에 활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