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개봉 주요 작품의 라인업들의 영화관-HBO MAX 동시 공개를 알린 워너브라더스. 출처= 워너브라더스 
 2021년 개봉 주요 작품의 라인업들의 영화관-HBO MAX 동시 공개를 알린 워너브라더스. 출처= 워너브라더스 

[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 영화업계는 매우 큰 피해를 입고 있다. 당장 국내 주요 멀티플렉스들은 최대 30%까지 극장 수를 줄이는 특단의 대책을 발표하는 등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중이다.

세계 최대의 영화산업 규모를 자랑하는 미국도 다르지 않다. 미국의 거의 모든 영화관들은 올 한 해 동안 정상적으로 영업하지 못했고, 수많은 극장들이 폐업했다. 이러한 가운데 헐리웃의 대형 제작사 워너브라더스는 2021년 개봉 예정인 주요 작품들을 극장과 OTT(온라인 영상 제공) 서비스 ‘HBO MAX’에 동시 공개할 것이라고 밝혀 이는 전 세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영화 산업계의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라고 옹호한다. 다른 한 편에서는 ‘시장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행위’라며 비판적인 의견들도 나온다. 

논란의 시작, 워너브라더스의 '결단' 

워너브라더스는 지난 4일(현지시간) 2021년 개봉될 예정인 자사 영화 17편의 라인업을 공개했다. 작품들 중에는 모탈컴뱃 리부트(Mortal Kombat), 톰과 제리(Tom & Jerry), 고질라 vs 콩(Godzilla vs. King), 스페이스 잼: 어 뉴 레거시(Space Jam: A New Legacy),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The Suicide Squad), 듄(Dune) 그리고 매트릭스 4(The Matrix 4) 등 블록버스터 기대작들이 대거 포함돼있었다. 특히 전 세계에 수많은 매니아들을 보유하고 있는 작품들의 개봉에 대해 팬들은 열광했다. 그런데 여기에 덧붙여 워너브라더스는 전 세계 영화인들을 놀라게 한 충격적인 소식을 전한다. 바로 이상 17편의 영화를 OTT 서비스인 HBO MAX에 동시에 공개하고 밝힌 것이다. 논란은 여기에서 시작됐다. 

영화관은 많은 제작 예산이 투입되는 영화들이 가장 빨리,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유통플랫폼이다. 각 제작사들은 극장에서 상영되기에 최적화된 작품을 만들어 제작비를 감당하고, 입장권 판매 수익과 극장 광고로 수익을 올린다. 이것이 영화업계의 기본적인 순환구조이며 전 세계 영화업계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OTT의 등장 자체는 극장들에게 크게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점점 커지는 영화의 스케일을 가장 온전하게 표현하는 플랫폼이 극장이었기 때문이다.

오리지널 영화 콘텐츠를 제작하고 단독으로 상영(공개)하는 OTT의 등장은 영화 콘텐츠 유통 판로의 확장이었고, 극장들에게 큰 위협은 아니었다. 콘텐츠 소비자들은 자신들의 의사에 따라 극장 혹은 OTT를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판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극장에서 당장 영화를 상영할 수 없게 됐고 빨리 영화를 상영해서 수익을 올려야 하는 제작사들과 배급사들은 남은 선택지들 중 그나마 가장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는 OTT를 선택했다.

물론, 이는 일부 작품에 한정된 선택이었으며 마블 시네마틱 유비버스 시리즈로 대표되는 블록버스터 작품들 대부분은 개봉을 1년 가량 연기했다. 그러나, 워너브라더스와 같은 대형 제작사가 한 해에 개봉하는 십 수편의 영화 전체를 극장과 OTT에 같은 시점에 공개한다고 공표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2020년 12월  23일 극장 개봉, 25일 HBO MAX를 통해 공개되는 워너브라더스의 영화 '원더우먼 1984'. 출처= 워너브라더스
2020년 12월 25일 영화관과 HBO MAX를 통해 공개되는 워너브라더스의 신작 영화 '원더우먼 1984'. 출처= 워너브라더스

"그럴 수 있다" vs "그러면 안 된다"   

미국 내에서는 많은 논란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제작사들이 만드는 영화들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관객들과 만나야 하며, 현재의 상황에서 그 유통의 경로를 극장으로 한정할 이유는 없다”라면서 “이것은 영화산업계가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라고 워너브라더스의 입장을 옹호하는 의견들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의 극장주들은 의견이 달랐다. 그들은 “100년 이상의 영화산업 역사에서 정상적으로 작동된 영화 배급과 상영의 질서를 붕괴될 수 있다”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영화업계의 불만에 대해 워너브라더스 측은 “이는 코로나19가 문제가 되는 기간에만 한정적으로 적용되는 임시 조치”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의 극장주들은 “코로나19가 언제 완전히 진정되고 언제 정상적인 극장 운영이 가능할 것인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장 영향력이 제작사의 주도로 한 번 깨진 질서는 결코 원래대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워너브라더스의 실수, 놀란 감독의 '비판'

현재 미국 영화업계의 의견은 전자보다는 후자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데 이는 워너브라더스가 한 가지 실수를 했기 때문이다. 워너브라더스는 극장-HBO 동시 개봉을 직접적인 이해 관계자인 극장들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결론을 내렸다. 아무리 현재가 위기이기는 해도 워너브라더스가 일방적으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서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워너브라더스의 결정에 대해 비판한 내용이 담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인터뷰 기사. 출처= ET

‘다크나이트 트릴로지’, ‘인셉션’, ‘인터스텔라’, ‘테넷’ 등 명작으로 잘 알려진 헐리웃의 거장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감독은 미국의 콘텐츠 전문 미디어 ‘ET’와의 인터뷰에서 워너브라더스의 결정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놀란 감독은 “그들(워너브라더스)를 신뢰할 수 없게 됐다. 그들은 그들의 결정에 대해 사전에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여기에는 논란의 소지가 충분하다(Oh, I mean, disbelief. Especially the way in which they did. There's such controversy around it, because they didn't tell anyone)”라면서 워너브라더스를 비판했다. 

놀란 감독은 “2021년에는 코로나19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믿음으로, 수많은 헐리웃의 정상급 배우들은 최고의 감독들과 온 정성을 다 쏟아 작품을 제작했다. 그들이 온 정성을 다해 영화를 제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작품의 매력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대형 극장을 통해 많은 관객 앞에서 상영하는 것”이라면서 “영화업계와의 논의 없이 이제 갓 출범한 스트리밍 서비스의 마케팅을 위해 작품을 제공하는 것은 너무나도 정말 잘못된 일이며, 감독들과 배우들을 그런 방식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라고 일갈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정상적 순환이 망가져 버린 전 세계 영화업계의 상황은 거의 동일하다. 영화산업이 일정수준 이상으로 성장한 국가에서 이를 바라보는 관점 역시 거의 대부분 찬/반으로 극명하게 나뉘고 있다. 워너브라더스에서 본격화된 이 논란은 적어도 코로나19의 종식 전까지는 계속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