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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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리뷰=박민규 기자] 세계 각국의 탄소 중립 선언이 잇따르면서, 이제 글로벌 경제는 완벽히 변곡점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럽 연합(EU)이 지난해 12월 '그린 딜'을 발표하며 탄소 중립 목표를 제시한 데 이어, 우리나라와 일본이 오는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에서는 2050년 탄소 중립 달성을 공약으로 내세운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을 기다리고 있으며, 중국 또한 2060년 이전에 탄소 중립을 실현하기로 했다. 전 세계 경제 규모의 3분의 2 이상이 탄소 중립을 지향하는 셈이다. 

이처럼 각국이 탄소 중립에 동참하는 것은 기후 변화에 대한 위기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지구 온난화 1.5도 특별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온난화가 현재 속도로 진행될 시 2030년~2052년 사이 지구의 평균 기온 상승 폭은 1.5도를 초과할 전망이다.

단순한 기온 상승으로 치부할 수 없다. 지구 평균 기온이 1도 올라갈 때마다 밀·쌀·옥수수 생산량이 약 3%~7% 감소하고, 일부 생태계는 치명상을 입게 된다. 그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맞게 될 것이라는 경고가 학계 안팎에서 나오는 상황이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국제 연합(UN)은 각국에 파리 기후 변화 협약에 따라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와 2050년 장기 저탄소 발전 전략(LEDS)을 올해 말까지 제출할 것을 요청했다.

핀란드는 지난달 2035년 탄소 중립을 명시한 LEDS를 UN에 제출했고, 뉴질랜드·덴마크·프랑스 등은 2050년 탄소 중립을 법제화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11월까지 탄소 중립 법제화를 마친 나라는 총 6개국이다. 파리 협정 당사국인 우리나라도 2020년 안에 2050 탄소 중립을 위한 LEDS를 마련하고, 2030 NDC를 UN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상품처럼 거래하고 세금 부과하고…각양각색 '탄소 중립'

다른 국가들은 탄소 중립을 어떻게 이행하고 있을까.

탄소를 배출하는 만큼 산림을 조성해 산소를 공급하거나, 화석 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수소·태양광·풍력 등의 신·재생 에너지에 투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탄소 중립의 선두 주자로는 독일이 꼽힌다. 독일은 기후 변화가 글로벌 쟁점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 온실가스 감축 정책을 구체화하는 데 나섰다. 화석 연료와 원자력을 규제하고 신·재생 에너지에 인센티브를 제공해, 신·재생 에너지부터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내용이 골자다. 독일이 1991년 세계 최초로 재생 에너지 판매 가격을 보장하는 발전 차액 지원 제도(FIT)를 도입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선제적인 에너지 정책을 통해, 독일은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전력의 48.7% 가량을 신·재생 에너지에서 생산할 수 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보다 기후 변화를 더 심각한 위협으로 여긴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기후 위기 대응에 무게를 두고 있는 EU는 '탄소 배출권' 거래 제도를 통해 1만4000개에 달하는 공장·발전소 등의 탄소 배출을 해결하고 있다.

해당 제도는 사업장이 정부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되, 배출량 초과 및 감축에 따라 시장에서 탄소 배출권을 사고 팔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즉, 온실가스를 상품으로 거래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헝가리는 탄소 배출권 거래로 얻은 수익을 신·재생 에너지 및 에너지 효율 개선 사업에 투입하고 있으며, 체코의 경우 공공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데 재투자하고 있다. 세계 탄소 배출 2위인 미국에서도 신·재생 에너지와 저탄소 기술에 투자하고 있으며, 캘리포니아주 등 9개 주(州)가 별도로 협의체를 설립해 탄소 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하고 있기도 하다.

1990년 핀란드가 처음으로 도입한 '탄소세'를 온실가스 저감 수단으로 활용하는 움직임도 많다. 탄소세는 화석 연료 사용량에 따라 부과하는 세금으로, 현재 50개국이 이를 적용하고 있다.

스위스는 자국 출발 항공권에 최대 120스위스프랑(약 14만6000원)의 탄소세를 매기기로 했다. 세계 탄소 배출량의 약 2%를 차지하는 민간 항공 업체들을 규제하지 않고서는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실현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스웨덴은 1991년 탄소세를 도입했으며, 1990년부터 2017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규모를 26% 가량 줄이면서도 약 78%의 경제 성장율을 달성했다.

한편, EU는 온실가스 감축에 소극적인 국가에 경제적 페널티를 주는 '탄소 국경세'를 2023년부터 실시할 것을 예고하기도 했다. 제품 생산 과정에서 EU보다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나라에서 제조된 물품에 대해 관세를 물리겠다는 것이다. 미국 역시 2025년까지 온실가스 저감 의무를 지키지 못하는 국가나 기업의 제품에 대해 추가적으로 관세를 부과할 방침이다.

이제 기후 변화는 단순히 환경 문제가 아니라, 경제 및 경쟁력과 밀접한 문제로 확장된 모양새다.

기업은 'RE 100' 선언

출처=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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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차원 뿐 아니라, 기업들의 탄소 중립 선언도 이어지는 추세다. 바로 'RE 100'이다. RE 100이란 제품 생산 등에 있어 100% 신·재생 에너지를 활용하는 것을 뜻한다.

RE 100은 2014년부터 본격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구글·스타벅스·애플·BMW 등 글로벌 기업들을 비롯해 전 세계 255개사가 RE 100에 참여하고 있으며, 거래·협력 업체에까지 RE 100을 요구하는 모습도 관측되고 있다. RE 100을 통해 탄소 배출권을 다량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 같은 움직임에는 사회 인식 변화도 큰 몫을 했다는 평가다. 이제 국제 신용 평가 회사들과 투자자들은 지속 가능성과 ESG(환경·사회·기업 구조) 경영 등에 역점을 두고 기업의 가치와 경쟁력을 평가한다. 여기에는 기후 변화 대응 관련 지표도 반영된다. 기업의 신·재생 에너지 사용 여부가 수출 및 해외 진출 가능성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것이다.

SK와 LG 등 국내 기업들도 잇달아 RE 100을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움직임은 아직 '선언'에 불과하며, 구체화된 계획과 실행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