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민규 기자] 전기 자동차 관련 산업이 폭발적인 성장세로 주목을 받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폐배터리 처리 문제에 대한 우려도 부상하고 있다. 배터리에는 금속 등이 들어가 있어 환경 오염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전기차 배터리는 8~10년 뒤 사용 후 배터리 시장으로 나오게 된다. 현재 국내에서는 폐배터리 시장이 거의 형성되지 않다시피 한 상황이나, 오는 2030년에 이르러서는 연간 수만 개의 폐배터리가 쏟아져 나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빠르면 2025년부터 시작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따라서 전기차·배터리 업계 안팎에서 폐배터리 처리에 대한 제도적 준비와 투자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이다.

폐배터리를 사용이 아예 불가능할 정도로 낡아빠진 배터리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에너지 용량이 초기 대비 70% 이하로 떨어진 배터리들이 다수다. 전기차용 배터리의 경우 에너지 용량이 떨어지면 전기차 주행 거리가 짧아지므로 폐배터리로 분류되지만, 이후 ESS나 마이크로 모빌리티용 배터리 등으로 충분히 재사용할 수 있다.

이미 세계적으로 배터리 재활용 산업에 주력하는 분위기가 읽히고 있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주요 전기차 시장인 미국·유럽·중국 모두 배터리 재활용 기술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이라 언급하기도 했다.

에너지 시장 조사 업체 SNE리서치는 지난달 발간한 보고서에서 "최근 국내 주요 대기업들의 전기차 배터리 재사용·재활용 산업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늘어났다"며 "기업들은 배터리 재사용 및 재활용을 신규 사업으로 투자할 것을 고려하고 있으며, 실제로 이미 많은 투자 결정이 이루어졌다"라고 분석했다.

현대자동차(005380)는 자체적으로 보유한 사용 후 배터리를 활용해 태양광 에너지 저장 장치(ESS) 컨테이너 실증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해당 ESS 컨테이너는 태양광 발전 설비를 통해 생산된 전력을 저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사용 후 배터리를 재가공해 에너지 용량이 더 큰 ESS로 재활용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 현대차는 지난 5월 한화큐셀과 태양광 ESS 사업을 위한 업무 협약(MOU)을 체결한 바 있다. 사용 후 배터리를 재활용한 가정용 ESS 제품을 개발하고, 각 사의 고객·인프라 등을 활용해 대규모 ESS 프로젝트를 발굴하는 등의 내용이 골자다.

또 현대차는 SK이노베이션(096770)과 ▲전기차 배터리 렌털·리스·판매 ▲전기차 배터리 관리 서비스 ▲전기차 배터리 재사용·재활용 등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했다고 올해 9월 밝히기도 했다.

이를 위해 양 사는 기아차의 '니로 EV'에 탑재되는 배터리 팩을 수거해 검증하는 실증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전기차용으로 더 이상 쓰이기 어려운 배터리를 ESS 등으로 사용하는 '배터리 재사용', 배터리에서 니켈·리튬·코발트 등 금속을 추출하는 '배터리 재활용' 등을 통해 전기차 배터리의 경제·환경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들을 모색 중이라는 설명이다.

앞서 SK이노베이션은 단순히 완성차 업체에 전기차용 배터리를 공급하는 것 뿐만 아니라, 전기차 배터리 사업의 전후방 밸류 체인을 완성할 수 있는 'BaaS(Battery as a Service)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해당 체계는 배터리 수리·재사용·재활용·충전·임대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다.

이미 SK이노베이션은 사용 후 배터리에서 회수한 리튬을 NCM811(니켈 80%·코발트 10%·망간 10%) 배터리 등 하이니켈(high-nickel) 배터리들에 적용할 수 있도록 수산화 리튬 형태로 추출한 뒤 다시 니켈·망간·코발트 등 금속들을 뽑아내는 기술을 개발했으며, 해당 기술의 상용화를 앞둔 상태다.

출처=SNE리서치
출처=SNE리서치

LG화학(051910)은 현대글로비스(086280) 및 KST모빌리티와 손 잡고 전기 택시 배터리 렌털 사업에 나선다. 현대글로비스가 보유한 사용 후 배터리를 KST모빌리티의 택시에 대여하고, 다시 2~3년 뒤 나오는 배터리를 LG화학이 전기차 급속 충전용 ESS로 제작하는 것이다. 영업용 차량인 전기 택시의 경우 주행 거리가 길어 2~3년 안에 배터리를 교체해야 한다.

또한 LG화학은 르노삼성차의 폐배터리를 활용해 ESS를 개발하는 것을 연구 중이다. 르노삼성차의 전기차인 'SM3 Z.E.'에 장착됐던 배터리 40개를 LG화학이 새로운 ESS로 만든다는 설명이다. LG화학은 전기차 폐배터리에 최적화된 ESS를 내년까지 개발, 시험 운영 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폐차 업체 굿바이카가 지자체로부터 폐배터리를 사들여 캠핑용 배터리로 활용하는 사업을 시범적으로 실시하는 등, 각 기업이 전기차용 배터리 재활용 사업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거는 모습이다.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 시장은 규제 완화에 힘입어 더욱 활기를 띌 전망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19일 제4차 산업 융합 규제 특례 심의 위원회를 열고 전기차 사용 후 배터리 활용 사업 3건을 포함해 총 10개의 안건을 심의, 의결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9건이 기존 규제를 면제하고 안전성 등을 검증하는 제도인 '실증 특례'를 적용 받게 됐고, 나머지 1건은 임시 허가로 의결됐다. 

여기에 경북 포항을 비롯한 지방 자치 단체들이 배터리 리사이클링 사업에 이미 투자했거나 지속적으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한국의 '배터리 도시'를 꿈꾸는 포항시는 포스코케미칼과 에코프로비엠 등 배터리 소재 업체들을 유치한 데 이어, 지난해 7월 배터리 리사이클링 규제 자유 특구로 지정됐다.

경북도와 포항시는 이달 23일 포항 동해면에서 이차 전지 종합 관리 센터 건설에 착공했다고 밝혔다. 오는 2021년 6월 준공을 목표로 지어지는 해당 시설은 전기차 폐배터리 수거·보관·성능 검사·등급 분류 등을 수행하는 폐배터리 전문 센터로, 사용 후 배터리를 ESS로 재활용하기 위한 주요 인프라로 꼽힌다.

제도적으로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 산업의 밑그림이 그려지고 있는 가운데, 궁극적으로는 폐배터리 시장 규모가 향후 기하급수적인 증가세를 시현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산업부는 폐배터리 시장이 10년 뒤인 2030년에는 올해의 46배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 미국 시장 조사 업체 네비건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2015년 약 1600만달러(약 177억원)에 불과했던 배터리 재활용 시장 규모가 2035년에는 30억달러(약 3조3200억원) 가량으로 187배 넘게 확대될 전망이다.  

탁월한 시장성만이 배터리 재활용 산업을 추동하는 것은 아니다.

전기차 시장의 급격한 성장과 전도유망한 미래는 친환경 기조에 기인한다. 탄소 배출량 감축 면에서 환영 받고 있는 이 교통 수단이 8~10년 뒤 또다른 환경 문제를 야기한다면, 이는 친환경이라는 정체성을 포기하는 꼴이 된다.

전기차·배터리 업계에 있어 배터리 재활용 사업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내포한 시장을 노리는 동시에, 결국은 친환경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복안인 것이다.

또한 배터리 재활용 산업을 통해 모빌리티-배터리 업계가 다양한 협업 모델을 제시할 가능성도 기대를 모은다. 모빌리티 및 배터리 업체들이 배터리의 전 생애를 활용하는 '선순환'을 목표로 내놓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단순한 배터리 수급 관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업 모델과 부가 가치를 창출할 공산이 크다.

다만, 폐배터리 리사이클링의 가치나 폐배터리를 활용한 제품의 성능·안전성 등을 평가할 기준이 아직 없다는 점은 과제로 남아있다.

산업부에 따르면 현재 환경부와 국가기술표준원이 폐배터리의 상태·가치 등을 산정하고 있으며, 관련 표준을 마련할 방침이다. 한편 이를 위해서는 배터리 재활용 사업의 실적 등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