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LG그룹에서 LG상사, LG하우시스, 판토스 등이 계열분리될 전망이다. 고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셋째 아들이자 고 구본무 LG회장의 동생인 구본준 LG그룹 고문이 (주)LG 지분을 매각해 해당 계열사들은 인수, 독립하는 것으로 16일 알려졌다.

구본준 고문은 지주사 (주)LG의 2대 주주로 지분 7.72%를 보유하고 있으며 지분 가치는 약 1조원 수준으로 평가된다.

구 고문은 한 때 LG그룹을 이끌었으나 형인 고 구본무 회장이 작고한 2018년 5월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오래된 LG그룹의 전통에 따라 계열분리를 통해 '범' LG가로 남는 한편 구광모 LG그룹 회장 체제에 힘을 실어줄 전망이다.

재계에서는 구본준 고문의 길이 고 구자원 회장의 길과 비슷하다는 말도 나온다.

구본무 고문. 출처=LG
구본무 고문. 출처=LG

예상된 계열분리
LG그룹은 오는 26일 이사회를 열어 관련된 계열분리를 시작할 예정인 가운데 재계에서는 예상된 일이라는 말이 나온다.

LG그룹은 지난 최순실 국정농단 당시 삼성을 비롯해 많은 그룹들이 승계와 관련된 논란에 휘말렸으나 거의 유일하게 '무풍지대'로 남았다. 이는 LG그룹의 투명한 경영 방침을 보여줌과 동시에 승계구도에서도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LG그룹은 고 구인회 창업주 당시부터 4세 경영인 현 구광모 LG그룹 회장까지 한결같은 장자승계원칙을 고수했다. 

당장 고 구인회 창업주가 별세할 당시 동생인 고 구철희 창업고문은 조카들을 불러 본인은 경영승계에 관련이 없고, 창업주이자 형인 고 구인회 회장의 장남인 고 구자경 당시 부회장이 경영을 총괄해야 한다고 설득한 바 있다.

본인은 고 구자경 2대 회장 취임과 동시에 LG를 떠났다.

다만 고 구철희 창업고문의 장남인 고 구자원 회장은 계속 LG에 남아 2세 경영의 든든한 지원을 했다. 럭키증권 사장을 거쳐 럭키개발, LG정보통신부문을 거치며 LG의 사세확장에 큰 역할을 수행했다. 

시간이 흘러 고 구본무 회장이 3세 경영에 나서는 단계가 되서야 고 구자원 회장도 LG를 떠났다. 삼촌격인 본인이 계속 LG에 남아있을 경우 고 구본무 회장의 경영전략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후 1999년 LG화재를 계열분리해 LG그룹에서 독립했으며 LIG손해보험으로 사명을 바꾸며 보험을 핵심 먹거리로 삼아 2020년 3월 작고할 때까지 종합금융회사의 영역을 개척했다.

구본준 고문의 길도 고 구자원 회장의 길과 비슷하다.

그는 형인 고 구본무 회장 당시부터 그룹의 대소사를 챙겼으며, 고 구본무 회장이 작고한 후 3년간 4세 경영인인 구광모 회장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그도 고 구자원 회장이 고 구자경 회장, 고 구본무 회장의 충실한 도우미 역할을 수행한 후 '때가 되어' LG를 떠난 것처럼, 구광모 회장 시대가 열린 후 3년이 지난 지금 범 LG가로 남게 됐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방식이 여성의 경영참여를 배제하고 지나치게 딱딱한 유교식 사고방식이라는 지적이 나오지만, LG그룹이 이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경영환경을 지켜왔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한편 LG상사는 지난해 LG트윈타워 지분을 (주)LG에 매각했으며 현재 광화문 빌딩으로 이전했으며 구광모 회장 등 오너 일가는 승계 구도에서의 자금 확보 등을 위해 판토스 지분을 모두 매각한 바 있다. 계열분리를 위한 신호탄인 셈이다.

일타삼피?
재계에서는 구본준 고문이 조만간 LG를 떠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LIG의 사례 외에도 구태회·구평회·구두회 씨는 2003년 계열 분리해 2005년 LS그룹을 세웠으며 구인회 회장의 차남인 고 구자승 전 LG상사 사장의 자녀들은 LG패션을 분사해 독립하는 등 형제들의 계열분리가 LG에서는 흔했기 때문이다.

고 구인회 회장의 3남 구자학 회장도 2000년 아워홈을 만들었고 고 구인회 창업주의 동업자인 고 허만정 회장의 손자 허창수 당시 LG건설 회장도 2004년 GS그룹으로 독립한 바 있다. 이런 가운데 구본준 고문이 LG상사 등을 분리해 독립할 경우 희성그룹으로 활동하는 구광모 회장의 친부인 구본능 회장과 함께 3세 계열분리가 완성된다.

일각에서는 구본준 고문이 계열분리를 통해 독립할 경우 본인이 경영에 참여했던 전자 및 디스플레이 핵심 계열사를 분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LG상사 등을 선택하며 현재의 LG그룹 핵심 계열사의 보존을 전제했으며, 이를 통해 구광모 LG그룹 체제에 더욱 힘을 실어주게 됐다.

심지어 LG상사 및 판토스 등은 LG 계열사 내부에서 끊임없이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벌어지는 곳이다. 이를 구본준 고문이 계열분리하며 관련 잡음을 잠재울 수 있을 전망이다. LG그룹 입장에서는 LG 핵심 계열사 보존 및 구광모 체제에 대한 지원, 일감 몰아주기 논란 잡음 차단의 '일타삼피'다.

한편 구본준 고문은 새로운 도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LG상사, 판토스, LG하우시스는 물론 계열분리된 지주사 개념의 범 LG가 회사가 출범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가능성이 타진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구본준 고문의 아들인 구형모 씨의 행보에도 주목한다. 구형모 씨는 현재 LG전자 일본법인에서 일하고 있으며 사실상의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아버지 구본준 고문이 계열분리를 통해 홀로서기에 나선다면 아들인 구형모씨가 일정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다만 1987년생인 그가 계열분리와 동시에 경영일선에 등판할 가능성은 낮기 때문에, 계열분리가 진행되면 구형모 씨는 자리를 이동해 전문 경영인과 합을 찾출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