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전지현 기자] 2019년 기준 생산량 6000만톤, 세계 11대 시멘트 생산국, 세계 8위 시멘트 소비국. 

60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 시멘트산업의 현주소다. 하지만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국내 시멘트산업은 현재 '멈춤상태'다. 건설경기 부진에 따른 근본적인 수요 감소와 각종 정부 정책으로 시장이 수년째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매출 감소에 한숨쉬고 있다.

성수기와 비수기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계절성이 큰 시멘트업계는 지난 여름 긴장마와 코로나19로 건설 현장도 문을 닫아 3·4분기 실적전망마저 암울하게 만들고 있다. 시멘트업계는 수년째 최악의 보릿고개를 넘는 중이다.

韓 근대화·산업화 과정과 함께 한 시멘트 삽질 역사 60년

시멘트산업은 1919년 일본인이 평안남도 평양 교외에 시멘트 공장을 세운 것이 시초다. 1945년까지 시멘트공장은 총 6개로 연산능력이 180만톤에 이르렀지만, 1945년 8·15 광복과 1950년 6·25 국란으로 대부분 파괴됐다. 1952년 정상궤도를 찾아 1957년 후반 문경공장 가동으로 시멘트산업 면모를 갖춘 것을 감안하면, 국내 시멘트 역사는 약 60년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일본 오노다 시멘트/평안남도 승호리 공장. 출처=한국시멘트협회.
일본 오노다 시멘트/평안남도 승호리 공장. 출처=한국시멘트협회.

건설경기 변화에 영향을 많이 받는 국내 시멘트산업은 한국 근대화 및 산업화 과정과 궤를 같이 해왔다. 1960년대 정부의 공업화 추진으로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가 단행되면서 급성장했고, 1970년대 중후반엔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시작과 함께 도약기를 맞는다.

1970년대 확장기를 거쳐 1980년대에는 큰폭의 성장을 이어가는 성숙기에 접어든다. 1982년 생산능력은 1971년에 비해 3.4배, 국내수요 2.3배, 수출 5.1배 등으로 뛰어 오르며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보인다. 이는 시멘트 사업자들이 속속 늘어난 점에서도 드러난다.

산업 초기 동양시멘트와 대한양회(1975년 쌍용양회 흡수) 2개사에 불과했던 시멘트 생산기업은 새마을운동 등으로 증가한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쌍용양회, 한일, 현대, 성신양회, 유니온 등이 신규 진출하면서 1971년 8개사로 늘었다. 이 기간 연간시멘트 생산은 51만톤에서 687만톤으로 무려 13.5 배 올랐고, 한국은 세계 제 20위 시멘트 생산국으로 발돋움한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는 시멘트산업 부흥기가 찾아왔다. 아파트 중심 주택건설과 아시안게임, 서울올림픽 등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를 개최한 덕분이었다. 시멘트산업은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적극적인 생산능력을 확대로 1995년 국민 1인당 소비량이 선진국보다 2배 많은 1267kg을 기록했고, 1997년 생산능력이 6200만톤 수준에 이른다.

그리고 IMF 외환위기가 시작된 1997년 말까지는 최고 전성기로 꼽힌다. 당시 1인당 소비량은 1.5톤, 내수 6175만톤으로 정점을 찍으면서 생산량 기준 중국, 미국, 러시아, 일본에 이은 세계 5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한다.

IMF 외환위기 이후 되살아 나지 못하는 부흥기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시멘트업계는 1997년 이후 고전을 면치 못하는 중이다. 1997년 급작스레 불어닥친 IMF 외환위기로 건설업체 상당수가 파산하면서 빈사상태가 됐다. 설비 증설에 따른 금융비용 부담과 영업환경 악화로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한 한라시멘트 부도 등 업계 전체가 어려움에 빠진다. 이로 인해 1998년 상반기 시멘트 수요는 총 2256만톤으로 전년 동기보다 25% 줄고, 가동률은 60%를 밑돌게 된다.

여기에 환율 상승은 시멘트업체들의 수익성 악화에 불을 지폈다. 시멘트 주 생산원료인 석회석은 국내 조달이 가능한 반면, 열에너지원인 유연탄은 해외에서 전량 수입해 사용, 국제 자원 가격 및 환율 움직임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결국 환율상승으로 시멘트 주·부원료 수입가격이 오르고 제조원가 및 물류비가 높아지면서 채산성이 악화된다.

시멘트업계는 구조조정을 통해 IMF 위기를 넘겼지만 2000년대 들어서도 과거의 영화를 재현하지 못했다. 건설경기 침체와 가격경쟁이 이뤄지면서 실적이 최악으로 치달았다.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규제정책까지 이어지면서 건설사, 시멘트사로 연결되는 연쇄적 불황에 빠진다.

그나마 2015년 이후 시멘트 내수는 정부의 건설투자 확대정책 등에 힘입어 2016년 5576만톤, 2017년 5671만톤 등 회복세를 보였다. 그러나 6·19 대책, 8·2 대책 등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억제정책으로 주택건설경기가 위축되면서 내수가 지난해 4948만톤까지 감소했다. 올해 예상 출하량은 약 4550만톤으로,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시멘트업계는 2010년대 후반부터 각종 준조세로 경영상 위기마저 겪는 중이다. 구체적으로는 ▲지역 자원시설세 입법 추진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제 도입 ▲미세먼지 배출업종 분류에 따른 질소산화물 배출 부담금 등이 있다. 이중 시멘트 1톤당 약 1000원의 세금을 부과하려는 지역자원시설세 입법 추진이 부담으로 꼽힌다.

긴 장마, 코로나19로 멈춰선 현장... 올해도 '암울'

올해 역시 상황은 녹록치 았다. 건설경기 부진과 코로나19 영향 등으로 고전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쌍용양회, 아세아시멘트, 한일시멘트, 한일현대시멘트, 삼표시멘트 등 국내 시멘트업체들은 지난 2분기 매출이 2016년 이후 4년만에 처음으로 역신장했다. 영업이익은 구조조정 등 허리띠를 졸라 가까스로 적자를 면했지만 매출은 전년동기대비 8~17%까지 줄어든 상황이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지속되는 코로나19 재확산에 건설사들은 공사 일정을 줄줄이 연기하고 있다. 지난 여름 장마마저 유독 길면서 현장이 멈춰 3분기 매출증대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통상 시멘트 소비 계절지수는 3~5월과 9~10월이 높고, 동절기인 1~2월과 12월 및 강수량이 많은 7~8월이 낮게 나타나는데 3분기 장사가 소원해 지면서 올해 실적은 악화일로다.

시멘트업계 한 관계자는 "내수 중심의 산업 특성상 단기적으로는 국내 건설경기 악화의 영향으로 성장성의제한을 받고 있어 산업 성장기와 같은 호황의 재현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