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ATL 홈페이지 캡처. 출처=CATL

[이코노믹리뷰=박민규 기자] 세계 전기 자동차용 배터리 시장이 격동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 배터리 업체 CATL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중국 전기차 시장의 회복세와 더불어 미국 테슬라와 독일 폭스바겐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까지 잇따라 중국산 배터리 탑재를 예고하면서, CATL의 반격이 시작됐다는 말이 나온다.

"CATL? 꺼질 듯 더 크게 타오르는 불꽃"

6일 업계 등에 따르면, 올해 들어 LG화학(051910)의 활약이 두드러지기는 했으나 CATL 또한 명실상부 글로벌 '톱티어' 이차 전지 업체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2011년 중국 배터리 업체 ATL에서 분할된 CATL은 매출 80~90%를 이차 전지 사업에서 창출하고 있다. CATL의 경우 지난해까지만 해도 세계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28%의 점유율로 1위 자리를 지켰으나, 현재는 LG화학과 '배터리 왕좌'를 두고 엎치락뒤치락하는 모습이다.

▲ 출처=SNE리서치

이러한 와중 CATL이 LG화학의 파죽지세에 제동을 걸었다. 지난 5일 에너지 시장 조사 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8월 전기차(EV)·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PHEV)·하이브리드카(HEV) 배터리 사용량이 10.8기가와트시(GWh)로 전년 동기 기록한 7.7GWh보다 41.3% 급증한 가운데 CATL이 두 달 만에 LG화학을 제치고 1위에 올라섰다.

이 기간 CATL 배터리 사용량은 2.8GWh로, 2위인 LG화학보다 0.4GWh 많았다. 근소한 격차인 데다 올해 1~8월 누적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에서는 LG화학이 1위를 수성해 예단은 이르다는 반응도 있으나, 이미 일각에서는 CATL의 재역전을 배터리 주도권의 이동 신호로 읽는 모습이다.

CATL의 경우 아직은 LG화학보다 기술력과 생산 능력이 떨어지지만, 탄탄한 중국발 수요와 유럽향 수출 청사진을 갖추고 있어 더없이 위협적인 라이벌이라는 평가다. 또 CATL의 배터리 기술 및 생산 규모는 5년 뒤 LG화학에 필적하는 수준에 도달하리라는 관측도 몇 차례 제기된 바 있다.

▲ 출처=대신증권

이날 한상원 대신증권 연구원에 따르면 CATL은 오는 2025년까지 220GWh 규모의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 능력을 갖추면서 것으로 예상되며, 이 같은 생산 규모 확대는 이익 성장으로 고스란히 이어질 전망이다.

한 연구원은 "CATL의 밸류에이션은 동종 업체들과 비교해도 높은 수준이며, 전기차 시장의 가파른 성장세가 장기적으로 이어질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높은 수준으로 유지될 수 있다"고 예측했다.

LFP 배터리 전문? NCM 경쟁력도 키우는 중

최근 테슬라와 폭스바겐 등 주요 전기차 업체들이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CATL을 비롯한 현지 업체들의 배터리를 수급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됐다.

이달 2일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테슬라는 중국의 전기차 보조금 지급 기준을 맞추기 위해 상하이에서 생산하는 '모델 3'의 가격을 인하했다. 이를 위해 테슬라는 중국산 배터리를 활용한 원가 절감 전략을 취하며, 모델 3에는 CATL의 리튬 인산철(LFP) 배터리가 적용될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또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폭스바겐은 이달부터 중국 공장 2곳에서 자사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MEB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 전기차를 연간 60만대 수준으로 생산하는 데 돌입하며, CATL·궈쉬안·완샹 A123 등 중국 업체들로부터 전기차용 배터리를 공급 받을 방침이다.

▲ 출처=대신증권

한편 CATL은 중국 전기차 업체들과 테슬라, 폭스바겐 뿐 아니라 독일 오펠과 프랑스 푸조 등에도 배터리를 납품하고 있는데, LFP 배터리가 아니라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를 제공한다. 

CATL의 주력은 LFP 배터리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가 CATL 배터리의 70% 가량을 차지한다. 그리고 CATL의 NCM 배터리 중 약 40%가 하이니켈(high-nickel) 배터리인 NCM 811(니켈 80%·코발트 10%·망간 10%) 배터리다.

CATL의 NCM 811 배터리 경우 최근 연이은 화재 사고로 안전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검증이 필요한 단계라는 평이 우세하나, CATL이 유럽 시장 진출을 타진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LFP 배터리에만 전적으로 의존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LFP 배터리는 값비싼 코발트와 니켈을 함유하지 않아 저렴하지만, 에너지 밀도 면에서 현재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주류를 이루는 NCM 배터리에 비해 현저히 뒤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CATL은 과거 테슬라 모델 3용으로 LFP 배터리만 납품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언급한 바 있다. 고객사의 요구에 따라 NCM 배터리 공급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시사한 대목이다.

결국 CATL은 '투 트랙' 전략을 취하는 모양새다. LFP 배터리의 단점을 개선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동시에, 완성차 업체들의 고용량 배터리 요구에도 맞춰 하이니켈 배터리에 대한 투자도 병행하는 것이다. 

현재 CATL은 LFP 배터리의 낮은 에너지 밀도를 보완하기 위해 테슬라와 함께 '셀투팩(CTP)'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CTP 기술은 배터리 셀과 모듈을 합쳐 전기차 내부 공간을 확보, 더 많은 배터리를 실어 전기차 주행 거리를 향상시키는 방법이다.

CATL은 中수저를 물고 태어났다
▲ 출처=대신증권

CATL의 저력은 중국에서 나온다. 중국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시장을 갖췄거니와, 자국 기업에 유리한 전기차 산업 육성 정책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중국 내수 시장은 세계 최대 규모인 데다 충성도까지 높다. CATL은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약 3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CATL의 압도적인 중국 시장 점유율이 큰 몫 했다. CATL의 시장 점유율은 중국에서 무려 50%에 달하는 반면, 중국 외 시장들에서는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상원 연구원은 "CATL의 배터리 판매는 대부분 중국에서 이루어지며, 전체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95%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또한 중국은 전기차와 관련해 보조금 지원·세금 감면·인프라 구축 등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자국 산업을 적극적으로 보호하면서 현지 업체 중심의 성장에 기여했다. 즉 CATL은 중국 '전기차 굴기'의 일환이며, 이를 통해 수혜를 입은 대표적 사례다.

CATL의 중국 시장에 대한 높은 의존도는 때로 약점으로 부각될 때도 있다. 시장 위축에 더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2020년 상반기 중국 전기차 시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전년 대비 45% 역성장했고, CATL의 배터리 출하 역시 -28%라는 동반 역성장을 피할 수 없었다. 반면 유럽 시장 노출도가 큰 LG화학의 경우, 유럽 내 전기차 판매가 52% 늘어나면서 같은 기간 배터리 출하량이 83%나 급증했다.

그럼에도 중국 시장과의 높은 상관 관계는 CATL에게 실보다 득이라는 평가다. 한 연구원은 "중국 정부의 보호 정책이 없었다면 CATL은 현재 수준까지 성장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중국은 비록 올해 상반기에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이라는 타이틀을 유럽에 뺏기긴 했으나, 여전히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의 50~60%를 담당하는 핵심 무대다. CATL은 이 같은 중국 전기차 시장의 규모 및 고성장에 맞춰 생산 능력을 확대하면서 현 위치까지 오른 것이다.

CATL의 배터리 캐파(생산 설비 용량)는 지난해 기준 53GWh로, 국내 배터리 업체들과 비교할 때 70GWh 규모의 LG화학 캐파보다는 작지만 20~30GWh 수준의 삼성SDI 캐파는 이미 넘어섰다.

또 중국 시장은 CATL에 현지 자동차 업체들 뿐 아니라 폭스바겐과 독일 BMW, 미국 제너럴모터스(GM) 등 다양한 해외 완성차 업체들과도 거래할 기회를 마련해 줬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 출처=대신증권
독일, 대마불사의 포석 될까
▲ 출처=대신증권

CATL은 유럽에서도 공격적으로 배터리 생산 기지를 신증설하고 있다. 유럽은 올해 상반기 중국을 추월하고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으로 발돋움했으며, CATL은 특히 주요 전기차 생산 거점 가운데 하나인 독일에서 배터리 생산 현지화를 꾀하는 모습이다. CATL은 독일 튀링겐주에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으며, 이를 교두보로 삼아 유럽 사업을 확장해 나갈 전망이다.

한상원 연구원에 따르면 당초 14GWh로 설정됐던 해당 공장의 목표 생산량은 2026년 기준 100GWh로 상향 조정됐으며, 공장 건설에 투입될 자본도 2억4000유로(약 2700억원)에서 18억유로(약 2조4500억원) 규모로 7배 넘게 확대됐다.

지난 5월 CATL은 진행 중인 증설의 규모가 22GWh라고 밝힌 바 있으나, 중장기적으로는 2023년까지 150GWh의 생산 능력을 추가로 확보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CATL이 현재까지 발표한 중국 내 증설만 따져도 배터리 생산 능력은 이미 100GWh 규모에 달한다. 독일 CATL 공장까지 100GWh의 생산 규모를 달성하면, CATL의 배터리 캐파는 총 253GWh에 이를 전망이다. 또 CATL은 "장기적으로 목표하고 있는 배터리 생산 능력은 360GWh"라 언급하기도 했다.

CATL의 유럽 고객사 유치 또한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다. CATL은 2018년 BMW와 47억유로(약 6조4000억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한 바 있으며, 최근에는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발표하기도 했다. 벤츠가 향후 출시할 전기차 EQS에는 CTP 기술이 적용된 CATL 배터리가 탑재될 전망이며, 양 사는 차세대 배터리 기술 개발에도 협업하기로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CATL이 유럽에서 테슬라와 더 큰 그림을 그릴 가능성도 있다. 테슬라는 독일 베를린 소재 기가팩토리를 내년에 가동해 연간 50만대의 '모델 Y'를 양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해당 공장의 모델 3 제조 역시 검토하고 있다.

베를린 기가팩토리에 공급될 배터리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으나, 지리적 이점을 따져 볼 때 CATL의 독일 공장에서 생산된 배터리가 납품될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