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철 현대위가드 대표

이디야 커피 창업자가 렌털 사업자로 변신했다. 가철 현대위가드 대표는 2000년대 국내 토종 커피브랜드 ‘이디야’를 창업해 사업을 성공 궤도에 올려 놓은 뒤 돌연 업계를 떠났다. 가족과 시간을 갖고 건강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일에 대한 열정은 그를 가만 놔두지 않았고 엄연한 생활가전 렌털 사업가로서 인생 2막을 시작하게 됐다. 그동안 다양한 사업에서 성공을 거둔 그의 성공 노하우가 렌털 사업에서는 어떻게 꽃피우게 될지 주목된다. 

ⓒ이코노믹리뷰 박지현 기자

커피 좋아하는 회사원치고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 ‘이디야’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지난 2000년 스타벅스가 국내에 점포를 개설할 때 토종 커피숍으로 출발해 현재 전국 매장 수만  870여 개나 된다. 스타벅스 창업자는 하워드 슐츠, 카페베네 창업자는 김선권 대표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국내에서 가장 많은 매장을 보유한 이 카페의 창업자에 대한 이야기는 그동안 거의 들을 수도 찾아볼 수도 없었다. 물론 이디야는 2005년 문창기 대표가 회사를 맡으면서 해외 점포 진출 등을 계기로 사세가 확장되고 브랜드 인지도도 더욱 높아졌다. 그러나 문 대표에게 회사가 인수되는 시점에도 이디야는 이미 국내에서 최단시간 내에 100호점을 넘기는 기록을 세울 정도로 잘나가던 커피 프랜차이즈 브랜드였다.

에티오피아 말로 ‘대륙의 황제’라는 이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카페명을 ‘이디야’라고 짓고 지금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낸 주인공이 따로 있었으니 그가 가철(47세) 현대위가드 대표다. 당시만 해도 언론에 알려지는 것이 부담스러워 한사코 지면이나 방송 등에 이름과 얼굴 내기를 꺼려했던 탓에 지금은 그가 한때 유명한 커피브랜드 창업자로서 언급된 보도 내용을 찾기도 쉽지 않을 정도다.

이디야 창업자 2005년 사업 접고 렌털 사업자 되기까지

가 대표는 2005년 이디야 매장이 120호점 개업을 달성했을 무렵 홀연 회사를 처분했다. 남들이 볼 땐 ‘미쳤다’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사업은 순탄대로를 달리고 있을 때였다. 당시 그에게 지급되는 월급만 1억원이 넘었다. 나날이 사업은 번성하겠다, 억대 연봉 받겠다, 남들이 들으면 배부른 이야기라고 시기할 수도 있는 완벽하게 ‘잘나가던’ 시점이었다.

그러나 ‘평안 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다’라는 속담처럼 남들이 보기엔 부럽기만 한 상황이 어느 순간 그에겐 더는 기쁨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건강이 나빠졌고 사업상 바쁜 일정을 소화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관계도 소원해지는 것 같았다. 너무 지친 나머지 일보단 가족과의 여유로운 일상들이 절실해졌다.

대학을 졸업한 뒤 1992년 우연히 볼링장을 인수하면서 사업에 뛰어들게 됐던 그는 10여 년 동안을 오로지 사업에만 매달려 왔다. 쉬지 않고 달려왔던 것이 문제라고 인식한 순간 그는 모든 것에서 손을 뗐다. 처음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정말 좋았다. 건강도 회복됐고 가족과도 화목해졌다. 여행도 많이 다니고 좋아하는 골프도 실컷 칠 수 있었다. 그러나 백수생활 1년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슬슬 마음 한구석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무료하고 소외감도 느껴졌다. 아내와도 다툼이 잦아졌고 만사가 짜증나고 우울해졌다. 결국 증상이 심각하다고 느낀 그는 병원을 찾았다. 치료를 받으면서 그는 인생의 방향성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다시 도전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새로운 삶에 대한 의욕을 불태우고 있을 무렵 우연찮게 과거 외식사업을 하던 중 알게 됐던 사람에게서 새로운 사업 제안을 받게 된다. 바로 과거 현대백화점에 입점하면서 알고 지냈던 현대 H&S 브랜드 사업팀장이 정수기 렌털 사업을 제안해 온 것이다.

“처음엔 생소한 분야라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은 저를 사업 파트너로 적합하다고 여겼는지 지속적으로 제안을 했고 결국엔 그 제안이 진정성 있는 제안이라고 여겨 사업을 검토하기 시작했죠. 여러 전문가와 지인들의 조언을 받아 신중히 검토한 결과 도전해볼 만한 일이라고 여겨 뛰어들게 됐죠.”

현대위가드 대표 맡은 지난 3년간 렌털 사업 가능성 엿봐

ⓒ이코노믹리뷰 박지현 기자

그는 2008년 현대위가드 대표로 취임해 본격적인 경영을 시작했다. 사업 첫해와 이듬해인 2009년까지는 사업에 신중을 기했다. 처음엔 보수적으로 운영했으나 이후 2년여간의 수금률과 수익성을 분석해본 후 전망이 있다고 판단했다. 자신감이 생기니 영업과 신제품 출시와 같은 적극적인 사업 분야까지도 관심이 생겼고 더는 망설이지 않게 됐다.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영업에 박차를 가했고 고객 수도 2~3년 만에 7만여 명을 확보했다. 지난해 매출만 12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는 100억원을 더해 220억원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온수통을 없애고 커피포트를 달아 사용자가 손쉽게 온수를 사용할 수 있고 전력 소모도 적은 신개념 포트형 정수기를 개발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최근엔 안마기기와 의료기기 부문에서 20여년간 기술력을 축적한 현대쎈안마의자를 출시해 경쟁력 있는 가격과 제품력으로 홈쇼핑 등에서 선보인 결과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가 대표는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그동안 다져온 다양한 제품군과 설치·관리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가전부분의 사업영역을 확장할 계획이다. 기존 판매 위주의 가전상품 유통구조의 틀을 깨고 다양한 가전생활용품들을 렌털화함으로써 소비자의 생활에 편리와 편의를 제공하고 합리적인 소비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포부다. 이를 위해 가 대표는 최근 ‘비전2020’을 선포하기도 했다.

“현재는 정수기와 안마의자 등 생활가전제품 위주로 렌털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 회사에 유보금이 쌓이고 자체 금융으로 돌아가게 될 때쯤이면 사업영역을 좀 더 넓혀 의료장비는 물론 건설장비까지 렌털해 주는 다각화 방식으로 사업을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

가 대표의 성공노하우  “될 만한 사업 알아보는 눈 있다”

가철 대표는 사업에 일찍 눈을 떴다. 그런 만큼 누구보다 시장을 읽고 트렌드를 파악하는 눈이 밝다. 될 만한 사업을 애초부터 알아보고 어느 정도 성공 궤도에 오르면 분야를 바꾸는 전략으로 사업을 성공시켰다.

그는 1991년 우연한 기회에 안양우체국 사거리에 있는  볼링장을 인수해 운영하면서 사업에 눈을 떴다. 14레인 규모의 볼링장을 보증금 2억원, 월세 2100만원을 내기로 하고 계약했지만 수익은커녕 월세를 내기도 어려울 정도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6개월간 번 돈이 50여만원이었던 그는 매월 500만원 이상의 적자가 발생하는 것을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심정이었어요. 손해를 최소화하고자 임대인에게 계약 해지를 요구했지만 매몰차게 거절당했죠. 계약기간 2년 동안 보증금 2억원을 어떻게든 지켜서 부모님께 꼭 돌려드리겠다는 오기가 발동했죠.”

그때부터 가 대표만의 경영능력이 발휘됐다. 그는 주부들을 대상으로 무료 레슨을 해주고 인원이 모아지면 대회를 여는 등의 전략으로 손님을 끌어모으게 됐다. 사람들이 몰리고 장사가 되면서 20대 청년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액수의 수익을 올리게 됐다. 이후 그는 과감하게 업종 전환을 시도해 1994년 평촌 신도시에 ‘피자맥’이란 브랜드로 새롭게 창업을 했다. 서울과 수도권 일대에 직영점을 개설할 정도로 매장은 늘었지만 매출이 잘 나오지 않았다. 당시 국내시장은 ‘피자헛’이란 높은 벽이 존재했었다. 여러 가지로 고민하던 중 1996년 가족과 함께 간 미국 여행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이미 피자가 대중화돼 있는 미국 시장에서 큰 사이즈 피자가 9달러9센트에 판매되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13인치의 큰 피자를 9900원에 판매하기로 한 것이다. 이 전략도 성공했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로 또 한 번의 위기를 맞게 된다. 피자 점포를 처분하고 그것을 종잣돈으로 가 대표는 스타벅스가 국내에 첫 점포를 개설할 시점에 이디야를 창업했다. 평소 독서를 즐기고 미래 트렌드를 앞서 읽기를 즐긴 덕분에 미국 시장을 보고 국내에서도 곧 커피 사업이 대중화되리라고 점쳤던 것이 통했던 것이다. 이디야 커피를 창업하면서 점포 운영에 있어 소규모 다점포 전략으로 스타벅스와는 확실히 차별화했고 철저한 브랜드 이미지 관리와 가맹점 수익성 제고를 경영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당시 프랜차이즈 본사가 가맹비나 인테리어비 등 초기 개설 마진으로 수익을 올리는 데 반해 이디야 커피는 구매력을 통한 원부자재 등 물류 마진을 수익 모델로 삼았다. 이 같은 전략과 가 대표의 사업에 대한 진정성과 철학이 빛을 발하며 이디야 커피는 창업 3년 만에 100호점을 돌파하고 장수 브랜드로서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가 대표는 불황기에 창업하려는 사람들에게 “자금이 많지 않다면 되도록이면 창업을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자금이 쪼들리고 재정상태가 어려울수록 사람들은 무리한 경영을 하려 하기 때문에 상황이 더 안 좋아지는 악순환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다. 눈높이에 맞는 창업과 경영을 하라고 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