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어느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그를 기다렸다. 테이블 너머에 걸린 작품이 눈에 띄었다. 추상화가인 ‘바넷 뉴먼’의 ‘원먼트VI’. 지난 5월 14일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4380만달러(약 480억원)에 낙찰됐다는 그림이다. '어떤 그림이기에' 싶겠지만 캔버스에 세로선 하나 그어 놓은 게 전부다.

반대편에 걸린 TV에서는 2013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중계방송했다. 진, 선, 미를 뽑고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선을 2명씩 뽑는다. 두 명의 선은 상금 1000만원과 왕관을 받아들고 행복해했다. 선발대회가 끝나자 뉴스가 흘러나왔다. “서울 낮 최고기온이 평년보다 4~5도가량 높은 30.8도까지 오르는 등 기습적인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형마트 매장도 한여름 장사 분위기가 한 달가량 일찍 연출되고 있는데요,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벌써부터 해수욕장에 인파가 몰리면서 관련 용품의 매출도 급증세를 띠고 있습니다. 예년 같았으면 7월 말부터 매출이 뛰기 시작하는 선크림은 52.8%, 선캡은 11.7%….”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조금 늦을 것 같단다. 둘러보니 혼자 앉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휴대전화를 들고 있다. 국내 휴대전화 보급률은 2010년 이미 100%를 넘어섰다. 2012년 무선통신서비스 시장 매출액은 20조7095억원, 유선통신서비스 시장 매출액은 15조5263억원이었다. 무선시장은 전년 대비 1.9% 성장한 반면, 유선시장은 2012년 전년 대비 3.2% 감소했다. 무선이 유선을 앞지른 건 2007년부터다.

그가 왔다. 선글라스를 낀 모습이다. 7000억~8000억원대로 추산되는 국내 선글라스 시장의 약 70%는 해외 명품 선글라스가 차지하고 있다. 초저가 선글라스와 중저가 선글라스는 각각 약 20%와 10%를 차지한다. 15세기, 법정에서 판관들의 눈을 가리기 위해 사용된 어두운 렌즈가 선글라스의 효시다. 감정이 동요되는 게 들킬까봐. 혹시 이 사람도…? 아니나 다를까. 그가 나에게 ‘선빵’을 날렸다. 헤어지자고.

우리는 선봐서 만났다. 결혼산업이 막 커지던 2000년 중반께, 한 업체를 통해서다. 2000년대 초 500억원 규모로 성장한 결혼정보 시장은 지난해 그 규모가 1000억원까지 커졌다. 결혼정보업체 수는 지난해 기준 1193개이며 업체를 이용하고 있는 회원 수는 11만 명으로 추산된다. 업체 대부분은 영세한 규모다. 듀오, 가연, 닥스클럽, 선우 등 상위 6개 업체의 시장점유율이 전체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모양새다. 관계자에 따르면, 지금처럼 매년 평균 15%씩 성장한다면 2015년께에는 1700억원대 시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선을 보자마자, 그는 나의 선한 인상에 반했다고 했다. 건축업계에 종사하는 그는 기본적으로 ‘선’의 가치를 알고 있다. 그는 한때, “너는 나의 선이며, 나는 너의 점이다. 나는 너의 시작과 끝이다”라고 했던 사람이다. ‘선’의 본질이자 핵심이 되고 싶다며 나에게 그렇게 고백했었다. 모두 옛날 얘기다.

서로 간 침묵이 몇 분쯤 흘렀을까. 테이블 위에 가는 실선 하나가 보였다. 정확히 우리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올해는 정전협정 60주년이다. 2011년 기준, 남한의 무역총액은 1조796억달러, GNI은 1240조원이다. 북한에 비해 각각 171배, 38배에 이르는 수치다. 미국 워싱턴 D.C.에 본부를 둔 ‘평화재단(Fund for Peace)’에서 발표한 2012년 국가실패지수에서 남한은 177국 가운데 156위로 ‘매우 안정적’이라는 결과를 받았다. 반면 북한은 22위로 ‘경고’ 수준이었다. 테이블 위 실선을 두고 하나는 울고, 다른 하나는 태연했던 우리 모습처럼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양쪽은 전혀 다른 나라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