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모르는 명문학군 아파트, 단지 간 집값도 천지차이

주부들의 주거 관심사에서 학군을 빼 놓을 수 없다. 특히 `맹모(孟母)`에게 인기가 있는 아파트는 불황에도 집값이 강세다. 저렴한 교육비로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부모들의 관심이 높아 전세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내 집 마련을 계획 중인 수요자라면 명문학교나 혁신학교와 가까운 아파트를 눈여겨볼 만하다.

#서울 중랑구 신내동에 사는 직장인 이모(42세) 씨는 중학생 아들의 교육을 위해 강남으로 잡았던 이사 계획을 포기했다. 8학군보다 인근 혁신학교가 낫겠다는 생각에서다. 김 씨는 “혁신학교 교육여건이 강남 못지않은 것 같다”며 “비싼 비용 부담을 안고 강남으로 이사해 무리하게 공부시킬 필요도 없고 대학 진학에 유리하다고 장담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갈 아들을 둔 주부 김모(37세) 씨는 혁신학교인 상도동 상현초등학교를 배정받을 수 있는 아파트를 알아보다 깜짝 놀랐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상현초등학교 입학이 가능한 단지와 그렇지 않은 단지의 집값 격차가 2억원 가까이 났기 때문이다. 상현초를 배정받는 H아파트 109㎡형의 전셋값은 4억3000만원. 다른 초등학교를 배정받는 인근 A아파트(106㎡)는 3억4000만원 선이다.

주부들의 주거 관심사에서 학군을 빼 놓을 수 없다. 교육열이 뜨거운 '맹모'들로 좋은 학군과 교육여건을 지닌 지역은 아파트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게 형성돼 있다. 그간  강남 8학군, 대치동, 중계동, 목동 등이 학군이 좋기로 소문난 지역이다. 하지만 이들 지역의 전셋값이 주춤하고 있다. 수능이 쉬워지고 내신반영률이 높아지자 이들 지역 학교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비싼 전셋값을 들여 이들 지역에서 공부한다고 대학 진학이 유리해지는 게 아니다라는 판단에서다.

또한 이들 지역의 비싼 전셋값도 높은 진입장벽이 됐다. 지난 2년 새 평균 21% 올랐다. 전세 수요자들이 선호하는 전용 85㎡형의 전셋값이 평균 7000만~8000만원이나 뛰었다. 물론 커뮤니티, 학습 분위기, 학교 특성 등을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들 지역은 여전히 전통적인 명문학군으로 분류돼 집값을 지탱하는 기반으로 작용하고 있다.

 

혁신학교 인근 부동산 '덩실'

최근 전통적으로 좋은 학군 대신 많은 수요자가 강북과 수도권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정부 지원, 특성화 교육 등으로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자율형사립고(자사고)와 혁신학교가 많이 늘었기 때문이다. 현재 강북 지역에는 자사고가 24개교(강남 3구 3곳) 있고 수도권 혁신학교는 123곳에 달한다. 이에 따라 혁신학교 주변 부동산도 학부모를 중심으로 탄탄한 수요층이 형성되면서 들썩이고 있다. 특히 경기침체 등으로 구매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강북 지역 등이 전세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양지영 리얼투데이 팀장은 “혁신학교는 저렴한 교육비로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어 학부모들의 관심이 높아 전세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교육환경에 관심이 있거나 아이 입학을 코앞에 둔 부모들은 이들 학교 인근 아파트에도 관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혁신학교에 입학이 가능한 단지와 그렇지 않은 단지의 집값 격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강동구 상일동의 혁신학교인 강명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강일2지구는 근처 1지구에 비해 전세는 평균 3000만~4000만원, 시세는 평균 5000만원가량 비싼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현상은 수도권도 마찬가지다. 경기도 성남시 판교신도시 보평초등학교 인근 아파트 전셋값이 꾸준히 오르고 있다. 지난 2009년 9월 혁신학교로 지정된 보평초등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키려는 부모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 보평초등학교에 배정받을 수 있는 봇들마을 7~9단지 아파트는 84㎡ 매매가가 7억5000만~7억8000만원으로 이 학교에 배정받지 못하는 봇들마을4단지 아파트와 비교하면 집값이 1억7000만~2억원가량 차이가 난다. 양 팀장은 “최근 분양 중인 동탄2신도시나 송도, 세종시 등에서도 학군 수혜 단지들이 등장하고 있다”며 “이들 지역이 어느 정도 관심을 끌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어떤 이웃'이냐도 중요

아파트가 투자 목적에서 실수요 위주로 재편되면서 아파트를 고르는 수요자들의 기준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기존 교통, 학군뿐만 아니라 단지 내 입주민 구성, 커뮤니티 시설, 주변 녹지 등 쾌적한 주거 환경에 필요한 요소들이 중요한 가치로 떠오른 것이다. 특히 입주민들의 생활수준과 교육 수준 등 단지 인적 네트워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마포구 서교동에 사는 A씨는 “아무래도 생활수준이 비슷한 사람끼리 있는 것이 교육열,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여유도 상대적으로 비슷하기 때문에 학교 학부모 모임과 체육모임 등을 활성화하기 쉽다”며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도 다수의 입주자가 마포 일대의 변호사나 의사 혹은 전문직 종사자들이다”고 말했다. 실제 마포구의 한 모델하우스에는 30~40대 고소득 전문직들이 대거 입주한다는 입소문이 타면서 생활수준이 비슷한 수요층이 크게 늘었다. 분양 관계자는 “분양 상담을 신청한 고객 대부분이 이미 분양을 받은 계약자들의 소개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비슷한 수준의 생활 환경을 가진 수요자끼리 계약을 한다”고 전한다.

 

혁신학교란지방자치단체 교육청이 낙후된 지역의 교육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지정한 학교다. 한 학급당 학생 수가 25명 이내고 영어ㆍ예체능ㆍ과학 등 특화교육을 한다. 기존 학교 운영 방식과 달리 60~80분 단위로 수업을 진행하는 블록 수업제, 분기 단위로 학기가 열리는 등 교육과정이 다양하고 소수 인원을 대상으로 교육이 진행된다. 정부 지원금도 있어 공립학교 교육비로 사립학교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부각되면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의 말말말

학군과 관련한 선호도를 어떻게 생각하나?

"일반적으로 학군 하면 강남8학군, 대치동, 중계동, 목동 등을 의미하는 개념은 많이 퇴색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광역학군제, 수능 난이도 하향 조정, 인터넷 강의 활성화 등 교육 여건이 많이 변화하면서 학군 수요도 점차 줄어드는 양상이죠. 다만 지역별, 거주지별 선호하는 학교는 여전히 있기 마련이고 최근에는 학부모들이 중ㆍ고등학교보다는 초등학교에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육 환경 때문에 꼭 강남으로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커뮤니티, 학습 분위기, 학교 특성 등을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에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 인근의 교육 여건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태희 부동산써브 팀장

잘 알려지지 않은 유력 학군을 추천한다면?

“강남권에서는 도곡, 대치, 개포동 일대가 교육 벨트를 형성하고 있지만 주거 노후도가 심한 편이고 반전세가 늘어 거래가 예전만 못한 상황입니다. 강북에서는 마포지역과 용산 일대가 새롭게 떠오르는 선호지인데, 주상복합 등 고급 아파트가 밀집해 고소득 계층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도권에서는 판교와 송도를 들 수 있는데, 판교는 기존의 분당에서 넘어온 입주민이 많고 송도는 외국인학교 등이 학군을 받쳐줄 것으로 예상됩니다.”

안민석 FR인베스트먼트 연구원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학군 지역은?

“강남 대치동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지역입니다. 또한 학원가의 위력이 센 강북 노원, 서초동과 반포 삼성래미안퍼스티지,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빼 놓을 수 없습니다. 목동지역과 잠실, 올림픽선수촌 등도 여전히 강세입니다. 전통적인 학군 선호도가 높고 그 추세는 아직 유지되는 상황이라고 판단됩니다.”

박합수 KB국민은행 부동산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