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매매 시장이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반면 전세 시장은 가열찬 상승세가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4.1부동산대책 발표 이후 잠시 상승세를 보였던 매매 시장은 급매물이 줄어들자 내림세로 돌아섰다. 하지만 전세 시장은 비수기로 접어든 지금도 가격이 꾸준하게 오르고 있다. 전세 오름세는 주택가격이 급상승하던 시기 저성장 기조가 지속되자 매매가를 따라갈 수 없었던 수요층이 대거 전세로 몰리면서 본격화됐다. 이후 부동산 시장이 극심한 침체를 겪으면서 주택가격은 하락세로 돌아섰지만, 전세가격 오름세는 좀처럼 그칠 줄을 몰랐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전국의 전세가격(2013년 3월 기준)은 저점이었던 2009년 2월 대비 31.5%가 상승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주택가격 하락을 우려하는 수요층의 전세 선호가 오히려 강해졌기 때문이다.

전세가격의 지속적인 상승과 매매가격 하락으로 매매 대비 전세가 비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해 아파트 기준 매매 대비 전세가 비율은 2003년 4월 이후 최고치인 64.3%를 기록했다. 6개 광역시의 매매 대비 전세가 비율은 68.9%로 거의 70%에 육박하고 있다. 전세로 사느니 주택을 구입하라는 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하지만 주부들은 여전히 전세를 더 선호하고 있다. ‘주부들의 뼈 있는 수다’에 참여한 주부들은 “지금처럼 불안한 시기에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하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정구선 주부는 “아무리 시세가 낮아졌다고 해도 무리해서 집을 구매하는 건 좋지 않다고 본다”며 “남아 있는 대출금을 다 갚은 후에 고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재 매매 시장이 극도로 침체된 만큼 대부분 전세 세입자들은 무리한 대출로 리스크를 높이기보다 주택 구입을 미루고 전세를 옮기는 방식으로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더불어 주택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선 만큼 전세가격의 상승세는 문제될 것이 없다는 의견도 있다. 최현미 주부는 “전세자금은 결국 내 돈이 되는 것이니 결국 세입자에게도 도움이 된다”며 “장기적으로 세입자의 부동산 자산 증식을 위해서라도 전셋값을 올리는 집주인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며 전세 예찬론을 펼쳤다.

집값이 떨어져 매매가 되지 않아 집을 전세로 내놓고 자녀 교육 문제나 출퇴근 등을 고려해 적당한 곳에서 전세를 구하는 경우도 많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전세가구 중 타지에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가구 수는 약 83만 가구에 달한다. 정은성 주부는 “주변에서 집값이 떨어져 매매가 안 돼 집을 전세로 내놓고 본인은 다른 전세로 사는 사람들이 많다”며 “전세로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좋은 집에서 살 수 있다”고 장점을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시장이 침체된 만큼 무리해서 주택을 구입할 필요는 없지만 현재 주택가격이 많이 떨어진 데다 전셋값은 상대적으로 크게 상승해 구입을 고려해 보는 것도 좋다고 충고한다.

김연화 기업은행 부동산 팀장은 “양도차익을 우선으로 하는 투자 수요자라면 모를까 거주를 주목적으로 하는 실수요자라면 시세동향을 파악한 후 매매에 나서도 늦지 않다”며 “다만, 전세가 상승의 압박과 2년마다 움직여야 하는 불편함이 부담스럽다면 단지별 지역성향과 선호도를 파악한 후 금융권의 저리 대출이나 4.1대책의 한시적 세제 감면 혜택을 활용하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안민석 FR인베스트먼트 연구원은 “부동산 경기 위축이 장기화하면서 전세선호현상이 어느 정도 대세가 됐다”며 “새 정부가 추진 중인 목돈 안 드는 전세제도나 각종 전세자금 대출은 자칫 전셋값을 지금보다 더 올리는 결과를 나을 수도 있어 전세가격이 지속적으로 오르는 기미가 보일 경우 어느 시점에 매매로 돌아설지, 혹은 옮길지에 대한 기준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태희 부동산써브 팀장은 “결국 선택의 문제”라며 “직업이 프리랜서이거나 자녀가 없어 정착할 필요가 없는 가구라면 새로 입주자를 찾는 단지를 골라 새 아파트로만 이사를 다니면서 평생 새 아파트에서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2년마다 전세금을 올려줘야 하는데 보통 적게는 2000만원에서 많게는 5000만원까지 올려줘야 하는 만큼 부담이 크다”며 “특히 수요가 몰리는 지역은 이사나 전세자금 대출을 반복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합수 KB국민은행 부동산 팀장은 “전세만으로도 주거 만족도를 채울 수 있지만, 주택을 단순 거주수단으로 생각해야 하고, 올라가는 전세금을 충당하고도 남을 정도의 자금력이 있어야 한다”며 “전세금은 인플레이션에 대한 헤지(Hedge: 투자자가 보유하고 있거나 앞으로 보유하려는 자산의 가격이 변함에 따라 발생하는 위험을 없애려는 시도) 기능이 없는 현금과 유사한 개념이므로 이에 대한 대비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박 팀장은 “거주자 대부분이 2년 이상 한 지역에 거주하면 익숙해지기 때문에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며 “이사를 반복하게 될 경우 정주 성향에 익숙한 한국인의 정서와 맞지 않아 정신적인 안정감을 찾기 어렵고 주변사람과의 커뮤니티 형성이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전세 선호 국면에서의 부동산 팁

정태희 부동산써브 팀장

“입주 아파트를 선점하는 것이 좋다. 입주 아파트는 입주 초기에 전세 물건이 한꺼번에 나오기 때문에 가격이 저렴하다. 그러나 저렴한 전세 물건은 꼼꼼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담보대출로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는 전세 물건이 저렴한데 입주 아파트(특히 수도권 신도시) 전세 물건 상당수가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다.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는 전세 물건이 저렴하지만 이런 주택에 전세를 들어가면 담보대출이 세입자의 보증금보다 선순위이기 때문에 집이 경매로 넘어갔을 때 보증금을 다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

김광석 리얼투데이 리서치&컨설팅 실장

“아파트 가격 대비 전세가 비율이 60% 이하인 경우에는 전세로 사는 것이 유리하다. 보금자리주택 요건에 해당하는 사람이라면 청약을 통해 주변 시세보다 낮은 금액으로 공공분양주택을 마련하거나 공공임대, 전세임대 등 임대주택을 마련할 수도 있다. 비용 절감과 주거 안정 면에서 큰 이익이다.  소액보증금 제도를 활용하거나 확정일자를 받아두는 등 만약의 사태에 전세보증금을 보장할 수 있는 안전장치는 기본이다.”

안민석 FR인베트스트먼트 연구원

“마음에 맞는 전세 물건은 구하기 힘들고 반전세로 몰릴 바에야 기반시설이 잘 갖춰진 뉴타운 지역 혹은 판교, 송도 등 학군이 받쳐주는 신도시를 눈여겨보는 것도 좋다. 특히 전세가율이 65%를 넘어가는 변곡점이 전세에서 집을 구입하는 쪽으로 선회하는 시점으로 적합하다.”

박합수 KB국민은행 부동산팀 팀장

“유목민처럼 옮겨 다니는 것도 젊었을 때 이야기다. 나이가 들면 힘들어지게 마련이다. 전세를 옮기면서 살더라도 향후 5~10년 후 정주할 계획을 잡는 것이 좋다. 가령 재건축아파트를 매입하고 전세를 구하는 방법도 있다.”

김연화 기업은행 부동산팀 팀장

“전세가 상승이 압박요인이다. 2년마다 움직여야 하는 불편함이 부담된다면 단지별 지역성향과 선호도를 파악해 금융권 저리대출, 4.1대책으로 한시적으로 감면되고 있는 세제 등을 적용받아 매매에 나서는 것도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