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런트 랜드》
-폴 브룩스 지음
-이종인 옮김
-연암서가 펴냄
-1만3000원

할리우드 배우 숀 펜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21그램〉을 보면 우리 인간에게 영혼의 존재란 무엇인지, 삶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부조리와 환희로 뒤섞인 인간사의 절묘한 타이밍과의 관계에 대해 한번 정도 깊게 생각하게 된다.

남의 심장을 이식받아 새 삶을 살게 된 남자가 그 심장을 준 남자의 아내와 사랑에 빠지고, 그 심장을 준 남자를 교통사고로 죽인 또 한 명의 남자, 그는 죄의식에 빠져 교조주의적으로 종교에 맹목적 의지를 감행하는 건달이자, 형편없지만 어쩔 수 없는 아버지의 역할로 나온다.

영화 제목인 21g은 갓 사망한 사람의 육체에서 체중이 21g 줄어든 것으로 보고된 한 고전 임상학 실험에서 따온 영혼의 무게이다.

그런데 정말 사람의 영혼의 무게가 21g일까? 그렇다면 영혼이란 반드시 물질적으로 존재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그 과학적 근거란 지금까지 발견된 바가 전혀 없다.

산 자와 산 자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살아 있는 누군가를 사랑하며, 자아와 영혼이 있는 누군가를 느끼며 살아간다.

자신이 사랑하는 누군가가 영혼 없는 좀비라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는 것이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사고하는 존재, 그게 바로 산 자의 생리다.

하지만 정말 우리에게 영혼이란 것이 존재하며, 단순한 생물학적 기제 이상의 그 무엇이 우리에게 있는 것일까?

신경심리학자로 수많은 임상 기록과 경험을 통해 폴 브룩스는 그의 저서 《사일런트 랜드》에서 인간의 육체와 정신,

영혼을 탐미적으로 과학적으로 철학적으로 관찰한다. 그리고 영혼과 자아, 자기 정체성에 대해 어떤 때는 희망적으로, 어떤 때는 회의적으로 그의 시각을 밝히고 있다.

폴 브룩스가 말하는 요점은 우리 몸에는 영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우리의 오랜 믿음이자 인간에 대한 과대망상적 존재주의일 뿐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관장하는 모든 메커니즘은 단지 뇌의 복잡한 프로세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검증적 사례로 그는 수많은 임상의 경험을 든다. 실제로 사고나 질병 혹은 정신적 충격으로 뇌를 다친 사람들은 이상 행동을 보인다.

고속도로에서 앞차로부터 자그마한 쇳덩어리가 총알처럼 날아와 차 앞 유리창을 깨고 이마를 파고들더니 왼쪽 전두엽에 깊숙이 박히는 사고를 당한 스튜어트라는 남자.

그는 의식을 잃었다가 곧 의식을 되찾고 이제 괜찮으니 집에 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전요원들이 발견한 것은 그의 머리에서 흘러나와 머리카락 사이에 엉겨 붙어 있는 뇌수였다.

외과 의사들이 그의 머릿속에 박힌 이물질을 뽑아냈지만 그 과정에서 인근 뇌세포가 함께 제거되었다.

사고 이후 스튜어트의 인성(人性) 일부가 사라졌다. 그는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분위기 등을 읽을 수는 있지만 그에 대한 정서적 반응을 하는 능력을 잃었다.

그는 그 자신을 포함해 모든 사람들에게 무관심하고, 아내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난 당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 그렇지 않아, 여보?”
뇌를 다친 또 한 남자는 자신의 뇌는 물론 오장육부가 남한테 투명하게 보인다고 생각한다. 처음 그가 투명함을 느낀 것은 화장실에서였다.

그의 눈에 자신의 두뇌는 고해상도 컴퓨터 그래픽 그대로였다. 좌우반구에 있는 쭈글쭈글한 두엽들의 표면이 선명하게 보였다.

이후 그는 모자를 쓰고 다녔다. 마치 큰 비밀이라도 생긴 것처럼…. 그가 의사를 찾아 자신의 머리를 보여주면서 상담을 받았을 때조차 그의 눈에는 여전히 뇌가 투명했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오장육부까지 투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뇌를 정밀하게 조사한 결과 그의 두뇌에는 천사의 날개 같은 거미줄이 반구에 두루 뻗쳐 있었다.

“저게 뭐죠?”
“나비형 신경교종입니다. 종양이지요.”

이 밖에도 딸의 결혼식에 분명 참석했는데도 불참한 느낌이 들어 딸에게 과도한 죄책감을 느끼는 노부인, 자신이 죽은 사람처럼 느껴지는 코타르 증후군, 목 아랫부분이 모두 마비되었는데 다음 주말에 암벽등반을 가겠다고 계획하는 남자,

교통사고로 두 다리와 오른손이 잘려나갔는데도 여전히 자신의 오른손으로 악수하겠다고 나서는 환지증, 페니스가 이상할 정도로 오랫동안 발기 상태를 유지한다든가 하는 이상 행동을 보이는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뇌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는 분명히 우리가 그토록 갈구하는 뭔가가 전혀 없다고 말한다. 모든 것은 뇌에서 시작되어 뇌에서 끝난다. 영혼이 있을 것처럼 생각되는 두뇌의 그 어느 곳에도 다채로운 색상을 보여주는 살덩어리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손이나 발이 절단됐을 때 사고 능력이 없어지거나 이상이 발생하지 않지만, 뇌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래서 뇌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는 분명히 우리가 그토록 갈구하는 뭔가가 전혀 없다고 말한다. 모든 것은 뇌에서 시작되어 뇌에서 끝난다.

영혼이 있을 것처럼 생각되는 두뇌의 그 어느 곳에도 다채로운 색상을 보여주는 살덩어리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즉 인간의 두뇌가 마음의 근원이고, 마음은 모듈 방식을 갖고 있으며, 그 모듈 방식은 두뇌의 작동에도 그대로 반영된다는 것.

하지만 저자는 한편으로 마음을 찾는 탐구를 포기하진 않는다. 안타깝게도 뇌의 그 어디를 찾아보아도 자아의 처소는 발견되지 않는다.

앞으로도 발견되기 어려울 것이다. 저자뿐만 아니라 마음-신체의 문제는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진지한 철학적 주제였다.

반면 저자는 두뇌, 영혼, 마음, 자아의 관계에 대해 임상의 구체적 사례를 들어, 컴퓨터의 비유를 가져와 두뇌를 하드웨어, 마음을 소프트웨어, 자아를 모니터 위의 텍스트라고 생각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인간의 인식, 행동, 사고, 판단의 모든 근거를 꾸러미 이론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꾸러미 이론이란 모든 것을 주관하는 주체(자아)는 없으며, 각 인생은 꾸러미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하지만 저자도 인정하는 것은 모든 개별 요소의 총합은 전체보다 작다는 것이다. 우리의 뇌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단순한 뇌의 살덩어리를 합친 것보다 크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저자는 그것이 자아일 수도, 더 복잡한 기제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아직 밝혀진 것은 없다. 저자는 앞으로도 밝혀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그것에 대한 답은 신경심리학적인 답도 포함되겠지만 개인이 각자 생각하고 얻어야 할 답일 수도 있을 것이다.

권춘오 네오넷코리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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