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file / 김영호 총장은 1940년생으로 경북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오사카시립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북대학교에서 경영대학원장을 지냈으며 산업자원부 산업기술발전심의회 위원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등을 거쳐 2000년 산업자원부 장관에 선임됐다. 2003년 8월부터 유한대학 총장직을 맡고 있으며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의 이사장을 겸하고 있다.

많은 학자들이 V자형 반등의 형태로 경기가 회복되리라 예상하고 있지만 김영호 유한대 총장의 견해는 조금 다르다.

유한대 총장실에 만나 본 그는 ‘번지점프 가설’을 통해 지금은 경기가 잠시 올라가고 있지만 정부가 재정지출을 줄이면 경기는 다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문제는 번지점프의 진폭이 멈추었을 때 다시 세계경제를 큰 폭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새로운 상품의 개발에 있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김 총장 역시 녹색에 주목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녹색저성장이 아닌 기술의 혁신을 동반한 진정한 녹색성장으로의 길을 모색해야 될 때라는 것이다.

김 총장은 녹색산업을 비롯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메시지도 전했다.

기업이 착한 상품을 생산하고, 소비자는 착한 소비를 통해 그러한 상품을 구매하고, 착한 금융은 소비자들의 돈을 모아 착한 기업에 투자하는 선순환을 통해 일명 ‘흥부자본주의’가 도래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추석은 주로 어떻게 보내십니까.
주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다. 아흔이 넘으신 부모님이 생존해 계신다. 그들 앞에선 나도 어린 애다. 어린 취급을 받을 수 있어서 좋다.(웃음)

민족의 대명절 앞두고 주가나 환율 등 가시적 지표들이 호전세를 보이며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습니다. 위기가 어느 정도 극복됐다고 보십니까.
나는 지금의 현상을 ‘번지점프 가설’로 설명한다. 크게 한 번 툭 떨어진 후에 오르락내리락 진폭을 반복하게 되는 데 그 와중에 잠시 올라가고 있는 기간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현재 경기가 호전된 것으로 보이는 것은 정부 재정의 힘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 정부가 돈을 풀 수는 없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면 위험하다. 그러면 다시 또 떨어질 것이다.

현재 상황에서 너무 큰 기대를 하면 안 된다는 말씀인 것 같은데, 진폭의 크기는 점점 줄어들게 되는 것 아닌가요?
그렇다. 당분간 작은 산은 있어도 큰 산은 없다. 다만 진폭이 줄어들었을 때 다시 큰 폭으로 세계경제를 끌어올릴 수 있을만한 상품을 현재로선 찾기 어렵다.

모든 시장이 포화상태라는 말씀이신지요?
자동차나 섬유, 핸드폰은 물론 모든 것이 과잉생산되는 시대다.

1929년 대공황과 비교해 보면 그때 역시 ‘번지점프 가설’로 설명할 수 있는데, 당시에는 세계경제를 끌어올릴 새로운 상품들이 출현했다.

각종 전자제품과 엔진이 개발되는 한편 석유연료를 기반으로 하는 자동차와 기차 등의 교통수단이 등장해 수송혁명을 이뤘다.

이러한 상품들이 주도한 대형경기가 60년대까지 지속됐다. 그런데 지금은 이에 필적할 만한 상품을 찾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국내외 많은 기업들이 신성장동력으로 녹색산업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아직 이 분야에서도 해법을 찾기는 힘든가요.
현재 상황은 녹색성장이 아니라 녹색저성장이다.

환경과 경제 중 한 쪽을 택하면 한 쪽이 손해보게 되는 시스템이다. 풍력이나 태양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하면 석유연료를 사용하는 것에 비해 2배에서 많게는 10배의 비용이 드니 경제적이지 않다. 쓰면 쓸수록 손해를 보는 꼴이니 녹색저성장이다.

그렇다면 녹색저성장을 녹색성장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그게 세계경제의 가장 큰 과제다. 이를 위해선 엄청난 기술 혁신이 필요한데 아직까지는 이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나 LED, 아니면 연료전지 같은 것들을 기존의 에너지보다 훨씬 더 낮은 가격에 공급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이 시급하다.

하지만 아직은 이러한 기술이 개발되기까지는 몇 년 더 기다려야 한다. 그 후에야 경제가 번지점프를 끝내고 새로운 대지 위에서 달릴 수 있다.

이번 위기의 원인이 기업이나 금융권의 무책임에 있다고 주장하신 적 있습니다. 여전히 같은 생각이신지요.

기본적으로는 정책당국자가 위기를 알고도 방치해 둔 측면이 더 크다. 실물보다 몇 배나 더 큰 금융자본 아래서 돈이 돈을 먹는 머니게임사회가 되버렸고, 돈이 실물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머니게임의 일환으로 실물이 도는 역전된 상황을 만든 것이다.

각종 파생상품을 허용하고 투기자본을 위한 카지노자본주의를 열어준 정책당국자의 책임이 우선이다.

그 과정에서 기업이나 금융자본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보십니까.
이번 위기의 직접적인 영웅들은 월가의 금융인들이다. 그들이 도를 지나쳐 자본주의가 파국으로 치달았고 죄를 물어야 할 그들을 정부가 세금으로 구제해 줬다.

이익은 사유화됐는데 피해는 공유화, 더 크게는 세계화된 셈이다. 그래서 지금의 위기는 신뢰의 위기다. 유동성 자금도 단기적인 것에만 몰리지 장기적인 쪽으로는 가지 않는다.

신뢰의 회복을 위해서 사회책임 자본주의, 스스로 ‘흥부자본주의’라 명명하신 모델을 내세우셨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위기 극복의 열쇠가 있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시게 되었는지요.
이 학교의 설립자인 유일한 박사가 남긴 말이 있다. “네 머리로 남의 행복을 설계하라” 지금까지 이 말을 지키지 못하고 살았는데 이 말에 희망이 있다.

산자부장관으로 있던 시절에 외국 기업에서 찾아 온 적이 있다. 그들은 “한국경제의 성장을 위해 우리가 이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가 한국 시장을 먹으러 왔다”고 말하지 않았다. “Your success is my business”라는 의식이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그 기업을 환영하지 않겠는가.

환영뿐만 아니라 적극 지원하게 된다. 이제 이타적인 것이 돈 버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이타적인 것이 돈을 번다는 의견은 참신하게 들립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아탈리가 이미 한 말이다. 그는 <21세의 역사>라는 책에서 21세기는 이타적인 사람이 돈을 버는 시대라고 전망하고 있다.

그것을 기업의 차원으로 바꾸면 21세기는 사회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돈을 버는 시대라는 말이 된다. 돈 버는 것에만 집중하는 회사는 이제 시장에 퇴출될 수밖에 없다.

노동자와 소비자, 지역주민과 금융업자 등 모든 이해 관계자들을 만족시키는 사회책임 기업이 돈도 더 잘 벌게 된다.

하지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경영자들 입장에선 사회책임을 다하라는 말을 당장에 귀담아듣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요.
사회책임 기업들에 투자하는 SRI펀드(Socially Responsible Investment fund)의 세계적 자금규모는 이미 헤지펀드의 두 배에 달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은행상품 대신 SRI펀드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소비자는 사회책임 기업의 제품을 사고, SRI펀드는 사회책임 기업에 투자를 한다.

이러한 현상은 유럽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시대적 흐름이다. 우리가 이 흐름을 외면하면 결국 이 흐름이 우리를 외면하게 될 것이다.

아직 국내 기업들은 그러한 인식이 낮은 편인 것 같습니다.
SRI펀드의 투자를 받는 국내 기업이 몇 있긴 하지만 아직 인식 수준이 낮은 편이다. 때로는 투자를 하러 왔다가 사회책임 지수가 낮다고 판단해 가버린 사례도 있었다.

이번 위기를 겪으며 케인즈주의가 다시 부활하고 케인시언들이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사회책임 자본주의는 케인시언들의 주장과도 어울릴 수 있나요.
케인즈의 후계자 중 가장 주목받는 사람이 오바마 대통령의 측근에 있다. 제임스 토빈이라는 경제학자인데 각종 규제 강화를 통해 정부역할을 확대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한 정부 아래서 사회책임 기업들을 지원할 수 있는 강력한 지원책 등을 동원할 수도 있다. 이런 정책의 시행을 통해 정부도 사회책임 정부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고 본다.

경영자들은 이러한 사회책임 자본주의 시대에 대비해 어떤 의식을 가져야 할까요.
최근 가장 유행하는 말이 ‘지속가능성’이다. 그런데 최근 한 심포지엄에 갔더니 위기 극복을 위해선 지속가능성보다 생존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하더라.

하지만 나는 위기 속에서 생존을 고민하는 게 아니라 위기 속에서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보다는 '레질리언스'(Resilience, 사전적 의미로는 탄성, 복원력이라는 뜻이지만 아직 국내에는 통용되는 번역어가 없다.

김 총장은 ‘보다 건강한 상태로의 회복’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라는 용어가 보편화될 것이라고 본다.

‘레질리언스’의 개념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있을까요?
덴마크를 보면 놀랍다. 그 작은 나라가 전 세계 풍력에너지의 3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덴마크가 풍력에너지에 뛰어든 것은 대규모 석유 위기를 겪던 때였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그 전보다 더 좋은 상태로 회복한 것이다.

총장님 개인적으로도 위기를 보다 나은 상태로 전환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3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졌었다. 그런데 이때 지속가능성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면 쓰러진 채로 목숨을 유지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바랄 사람은 없다.

뇌졸중을 치료하기 위해 운동을 열심히 하게 되었고 지금은 쓰러지기 전보다 혈압도 낮아지고 기초체력도 더 좋아졌다.

마지막으로 현장에 있는 경영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스웨덴의 교육부 국장이 한국인인데 그가 해준 말이 있다. 한국의 교육당국자들이 자신을 찾아와서는 “어떻게 하면 우리 학교를 일류 학교로 만들 수 있냐”고 묻곤 하는데, 그때마다 그 국장은 “스웨덴의 교육은 일류를 만드는 교육이 아니다.

사회적 낙오자들을 정상의 궤도로 올려주는 것이 목표다. 경쟁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협동을 가르친다”고 말했다고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세 가지를 잃어버린 채 살고 있다. 경쟁의식의 만연으로 인해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고, 자신의 옆 사람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 둘이 만들어낼 수 있는 시너지를 잃어버렸다. 이 세 가지만 있다면 대한민국에도 활력이 넘칠 것이라 믿는다. 경영자들도 지나친 경쟁에만 치중하기 보다는 주위를 둘러보고 서로 협동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생각해 보는 추석이 되면 좋겠다.

이재훈 기자 huny@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