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물 선택 사례 ② 김영학·박숙 ‘도라지 세상’

사진: 이코노믹리뷰 이미화 기자

    

‘작물 좀 안다’는 사람들에게 도라지는 기피작물이다. 농약을 치면 재배하기 쉬운데, 친환경으로 기르려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김영학·박숙 부부는 이 도라지 하나로 연매출 3억원을 올린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돌이켜 보면 그렇게 무모할 수가 없었다. 집도, 땅도 구하지 않은 채 귀농을 결심했다. 그 흔한 ‘귀농 교육’ 한 번 듣지 않았다. 작물 선택? 그런 것도 고민하지 않았다. ‘시골로 가야겠다’는 일념뿐이었다. 커튼 가게, 커튼 공장, 편의점 등을 운영하면서 365일 쉬는 날 없이 보냈다. 매일같이 쪽잠을 잤고, 일터로 나가면 버는 돈만큼의 스트레스를 받았다. 몸에서 보낸 이상신호. 그게 계기였다. ‘사업을 다 접자. 다 접고 시골로 가자.’ 앞뒤 일은 일단 생각을  미루기로 했다.

가장 먼저, 어디로 가야 할까 싶었다. “집사람 고향인 전라도로 갈 것인가, 내 고향인 강원도로 가야 할까를 놓고 고민하기 시작한 거죠.” 결국 중간 지점인 충청도에 자리를 잡았다. 무작정 충청도에 가서 땅을 구입하기 위해 발품을 팔았다. 부지 선정에만 6개월을 보냈다. 한 번은 청원군으로 가보자 해서 갔더니 ‘운보의 집’이라는 곳이 눈에 띄었다. 아주 추운 겨울이었는데, 인연이 되려고 그랬는지 왠지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었단다. 망설임 없이 인근에 부지를 마련하고, 조그만 집도 지었다.

집 근처 30년 묵은 사과 과수원도 임대했다. 황무지를 개간하듯 사과나무를 베어내고 뿌리를 캐냈다. 잡초들도 다 뽑았다. 그렇게 약 5000평의 밭을 만들었다. 집도 있고, 밭도 만들었다. 이제부터가 문제였다. ‘뭘 길러야 하나….’ 작물 선택이 가장 큰 문제였다.

“건강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농사는 친환경으로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던 터였습니다. 몸도 살리고, 땅도 살리니까요.” 생각 끝에 ‘도라지’를 떠올렸다. 초보 농사꾼들 사이에서, “도라지는 풀만 잘 뽑아 주면 된다. 기관지와 폐에도 좋다. 그리고 꽃도 예쁘다”라는 말이 들려왔다. 그 길로 도라지 씨를 구해서 밭에 뿌렸다. 수확하면 곧 목돈을 벌 거라는 ‘환상’을 갖고. “그야말로 환상이었죠. 풀만 잘 뽑으면 된다고 했는데…. 그 말은 맞아요. 근데 그 풀이 보통이 아닙니다. 도라지 밭을 아주 잔디구장으로 만들어 버리더라고요. 죽기 살기로 뽑았는데, 어찌나 잘 자라던지 한 번만 뽑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비 오는 날, 우비를 입고 5000평의 풀을 다 뽑고 뒤돌아서면 한 뼘씩 자란 풀이 비웃고 있었다. 뽑아버린 풀을 그냥 둔 탓이었다. 다시 뿌리를 내리지 않게 자루에 싸서 내다 버렸다. ‘풀’과의 싸움에서 점차 노하우가 생겼다.

“도라지는 풀보다 싹이 늦게 트거든요. 도라지 싹이 다치지 않게 제초하는 게 중요해요. 그래서 풀뿌리와 줄기 경계를 잘라낼 수 있는 ‘가위 제초’를 고안했습니다. 또 깊이갈이를 하고 두둑(논이나 밭 가장자리에 경계를 이룰 수 있도록 두두룩하게 만든 것)을 배로 높여 배수와 수확을 용이하게 하고 헛골에 피복을 해 지금의 재배법을 터득하기까지 시행착오와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런 김 씨 농가를 보고 마을에서는 “3년도 못 돼서 나갈 거라고 수군거렸다. ‘제초제를 치면 될 것을’ 이라며 훈수 두는 사람도 많았지만 굴하지 않았다.

그렇게 3년 만에 수확한 도라지. 3년간 산통을 겪고 출산한 산모의 환희가 이런 걸까. 한 아름 도라지를 안고 기뻐하는 것도 잠시. 수확하긴 했는데, 어떻게 팔아야 할지 막막했다. 박숙 씨는 “농사만 지어 놓으면 누가 와서 사 가는 줄 알았다”고 했다. 도라지를 들고 서울 아파트 단지로 가서 팔기도 해 봤지만, 다시 들고 돌아올 때가 더 많았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도라지를 소비자가 더 쉽게 접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구상했다. 고민 끝에 지금의 ‘도라지즙’을 생산하게 됐다. 밭에 딸린 15평 창고를 개조해 소형 중탕기 2대와 포장기 1대로 가공을 시작했다. 즙을 짜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도라지가 기침이나 천식 등에 도움을 준다는 데 착안, 이왕이면 목 건강을 돕는 건강음료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2년근 국산 도라지에 배, 대추, 생강, 은행, 진피, 모과, 유근피, 감초 등 9가지 국산 재료를 더했다. 2008년 처음 즙을 짰고, 지역 ‘한살림’을 통해 유통구조를 확보했다. 2011년 7월부터는 전국 한살림으로 그 범위를 넓혔다.

박숙 씨는 농사를 짓는 것만큼 ‘판로 개척’ 또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귀농하게 되면 판로는 발로 뛰어서 그야말로 ‘처절하게’ 따내야 합니다. 농협을 통해 개통 출하를 한다든지, 도매시장을 주거래처로 한다든지, 한살림, 생협과 거래를 한다든지 해서요. 시골에서는 될 수 있으면 공동체 협력을 하는 게 좋아요. 작목반, 영농조합법인 등에서 멘토링을 받으면 저희 같은 시행착오는 겪지 않겠죠.” 김영학 씨는 “가능하면 지역 내 협동조합에 들어가서 1년 동안 경험해 보고 귀농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