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귀농인 농촌 고려사항

영농조합법인 지리산처럼의 대표 정정은 씨. (사진: 이코노믹리뷰 박지현 기자)

 

농업인재개발원의 조사(2011년)를 보면, 귀농·귀촌인 중 11.6%가 ‘이웃 주민과의 갈등’을 귀농·귀촌에서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영농기반(28%), 사업자금 조달(26.1%) 등 경제적인 요인을 제외하면 가장 높은 수치다. 한 귀농인은 “농촌 정착 초기에 지역의 기존 주민들의 텃세를 겪지 않은 귀농인이 거의 없을 정도”라고 귀띔하기도 한다. ‘텃세’를 효과적으로 가라앉히기 위해선 어떤 요령이 필요할까? 텃세 극복기를 따라가보자.

귀농·귀촌 시 주거, 땅, 재배작물 등의 선정 과정에서 오는 애로사항은 수정·보완이 가능하다. 사전(事前)적 성격의 고민들이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기댈 언덕’도 있다. 귀농 인구가 눈에 띄게 늘면서 정부·지자체 등의 관심과 지원도 늘었고,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교류하는 커뮤니티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실제 농어촌에 진입했을 때 맞닥뜨리는 애로사항은 다르다. 지역 갈등, 일명 ‘텃세’라 불리는 것이 대표적이다.

‘완벽한 귀농은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는다.’ 거주지를 도시에서 농촌으로 옮기는 것일 뿐, 마을에 완전히 녹아들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말로, 농어촌 마을의 텃세 정도를 가늠케 한다. 귀촌 6년 차의 최모 씨(52세)는 “시골에서는 법과 사회의 통념, 이치 등을 따지면서 살기 힘들다”고 한다. 그만큼 심한 문화차이를 경험했다는 것. 최 씨는 “동네 경로당이나 마을회관에 막걸리를 들고 찾아다니는 등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나아지지 않아, 이제는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시골은 배타성이 짙은 지역이다. 대부분 집성촌(集姓村·같은 성(姓)을 가진 사람이 모여 사는 촌락)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유대가 강하고, 유대를 중심으로 암묵적인 규율이나 규약도 존재한다. 대부분 고령인구가 밀집돼 있기 때문에 전반적인 사고방식도 ‘옛날’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지역사회를 이루는 구성요소에 대한 개념도 다르다. 대표적인 것이 ‘길’이다. 도시에서는 길이 공공재이자 기본 인프라지만, 시골 마을 안의 길은 대부분 ‘개인의 것’이다. 자기 땅을 내 놓아 마을 길로 사용하는 차원이다. “마을 길이 넓으면 넓을수록 마을의 인심이 좋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마을 길이 왜 이렇게 비좁냐고 했다가 사람들로부터 몇 달 동안 질타를 들어야 했다”는 한 귀농인의 말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마을을 위해 평생을 헌신해 온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그리고 그런 공동체가 만드는 분위기는 귀농·귀촌인에게 매우 큰 장벽이 된다. 개인주의로 대표되는 현대 도시 문화와 정확히 대척점에 있기 때문이다.

    

의심의 눈초리 풀면, 마을 빗장도 풀린다

노동력 품귀 현상을 빚고 있는 농촌. 도시인들이 농촌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만으로도 주민들의 환영을 받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 마을 안에서 비슷한 소득과 환경을 공유하며 공동체를 형성한 그들에게 도시에서 온 귀농·귀촌인은 그저 이방인일 뿐이다. 경기도 인근 마을의 이장을 맡고 있는 차모 씨는 “언제 다시 동네를 떠나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들이기 때문에 애초에 별로 반기는 분위기가 아니다”라면서 “농촌은 특히 이권과 관련된 부분에 예민해지는 경향이 강한데, ‘외부인으로 인해 마을이 손해를 입지 않을까’ 하는 의혹의 눈초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라고 귀띔했다.

귀농인 대부분도 “처음 대하는 기존 주민들의 시선에 ‘의심’이 배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충북 청원군의 한 귀농인은 “친환경 농업을 하려고 약을 치지 않고 풀을 일일이 다 뽑았는데, 금세 마을 전체에 ‘저렇게 일하다가는 3년도 못 버틸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면서 “주민들 사이에서 우리는 금방 떠날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생기자 마을 모임이나 공동 작업을 할 때 부르지도 않더라”고 했다. 전남 구례군의 귀농인 이모 씨는 “귀농인 대부분이 기존 주민들의 ‘선입견’을 경험했다”며 “‘어디 잘하나 보자’는 식의 감독관 같은 눈초리가 항상 따라다닌다”고 했다.

주민들이 걸어 잠근 마음의 빗장을 풀기 위해선 의심의 눈초리부터 풀어야 한다. 충북 청원군의 귀농인 김영학 씨는 “아파트에 살던 방식으로 살면 여기서는 영원한 뜨내기가 된다”며 “우리가 먼저 다가갈 수밖에 없다고 판단해 막걸리나 소주 파티 등 잔치를 자주 열어서 동네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충북 충주시 엄정면의 귀농인 연화순 씨 역시 “많이 어울리는 것이 최고”라고 했다. 나눠 먹고, 심부름도 해주고, 집으로 불러 함께 차 마시는 시간도 일부러 가져 보았다고 한다. 연 씨는 “해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해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이며 다가가니 시골 사람들도 마음이 열리는 것 같더라”고 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시골마을 사람들은 외출이나 일을 하러 갈 때 대문을 잠그지 않지만 도시에서의 보안 개념이 몸에 익은 귀농인은 대문부터 잠그고 나선다”며 “시골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싶으면 먼저 문부터 열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신의 문을 열어놓아야 상대방의 ‘개방’도 기대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무조건 베풀기만 하는 자세는 경계해야

유상오 그린코리아컨설팅 대표는 자신의 저서 <귀촌 창업 부자들>에서 귀농인이 절대 금기시해야 할 ‘3척’으로 ‘아는 척하지 말기’, ‘있는 척하지 말기’, ‘잘난 척하지 말기’를 강조했다. 나를 낮춰야 지역민과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전북 순창의 한 귀농인은  “처음 귀농했을 당시 여동생이 중학생이었는데, 동생이 유명 브랜드 가방을 가지고 다닌다고 동네 아이들에게 따돌림까지 당했다”며 “그 가방 대신 이곳의 아이들이 가지고 다니는 것을 들기 시작했더니 사이가 회복되더라”고 했다.

시골에 사는 ‘도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은 귀농·귀촌인이 가장 경계해야 할 모양새다. 특히 가르치려 드는 자세는 융화의 ‘주적’이다. 도시에서 최고의 가치로 치는 효율성이나 합리성이 시골에서는 그만큼의 가치를 지니지 않을 수도 있다. 한 귀농인은 “어떤 대학 교수가 귀농을 했는데, 오자마자 농민들에게 (농산물을) 중간상인을 거치지 말고 직거래로 팔아야 이윤을 더 많이 남길 수 있다는 내용을 역설하고 다녔다”면서 “맞는 말이었지만 주민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그 교수는 끝내 주민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마을을 떠났다”고 회상했다.

이은주 전국귀농운동본부 간사는 “주민들이 보기에 귀농인들은 도시에서 모은 여유 자금을 가지고 우리 마을에서 그들만의 세상을 꾸리려고 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며 “텃세가 부동산과 관련해서 많이 발생하는 것도 땅이 가지고 있는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 돈만으로 해결하려는 귀농인들의 태도를 기존 주민들이 못마땅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간사는 이어 “귀농은 도시 사람이 농촌에서 농업을 사업 아이템 삼아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삶의 터전을 농촌으로 바꾸고 농민이 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을의 정서를 이해하고 먼저 다가가는 것이 ‘무조건적인 희생’으로 해석돼서는 곤란하다. 귀농·귀촌은 당사자가 자신의 삶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선택하는 수단이다. 마을에 적응한다는 목적으로 기존 주민들의 눈치 보기에만 급급한 생활을 한다면, 이는 주객이 전도되는 형국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마을의 기에 눌려 너무 저자세로 일관하면 시골 주민들은 귀농인을 ‘도시에서 망해서 시골로 왔다’고 생각하며 무시하기 십상이다”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귀농인에게 우리 지역사회에 무언가 기여를 해야 한다는 기대심리를 가진 주민도 많기 때문에 주민들 사이에서 귀농인들이 베푸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5년 차의 한 귀농인은 “초반에 적응하기 위해 마을에 너무 휘달리다 보니 몇 개월간 머슴 아닌 머슴 생활을 해야 했다”며 “주민으로서 마을 일에 참여하는 것과 마을에 휘둘리는 것 사이에 상식적인 선을 긋는 데 1년이 넘게 걸렸다”고 털어놨다. 충북 청원군의 귀농인 박모 씨는 “무조건적인 도움을 주다 보면, 남의 일을 돕다가 정작 내 일을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며 “주민들이 원하는 것이 뭔지 잘 파악해서 융통성 있게 다가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정휘 (주)천보내츄럴푸드 대표는 귀농 당시 ‘10년 간 도시의 친구를 보지 않겠다’는 각오로 귀농 공부에 매달렸다. (사진: 이코노믹리뷰 이미화 기자)

 

초반 적응이 향후 농촌생활 만족도 좌우한다

지난 2011년 농업인재개발원이 실시한 귀농·귀촌인의 생활 만족도 조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귀농·귀촌 후 농어촌에 거주한 기간에 따라 응답자를 구분했는데, 거주기간이 1년이 되지 않은 응답자 중에서는 19.2% 정도만이 ‘매우 만족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만족도는 높아졌다. (거주기간) 1~2년은 21.9%가, 2~5년은 28.4%가, 5년 이상은 응답자의 절반인 50%가 ‘매우 만족한다’는 답을 내놓았다. 정착 초기가 가장 힘들다는 방증이며, 이 시기를 잘 이겨내면 ‘매우 만족한’ 귀농생활을 영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귀농인이 정착 초기에 겪는 텃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관련법 발효 후 사회적인 관심이 급증되고 있는 ‘협동조합’을 활용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전남 강진군의 ‘다올협동조합’은 귀농인 50여 명으로 탄생한 협동조합으로, 복합판매장, 농산물가공 사업단, 공동영농경작단, 생태주거복지사업단, 생활청자사업단 등을 조직해 체계적인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귀농의 장애요소로 여겨지는 ‘텃세 문제’와 ‘농촌 일자리 문제’의 통합적인 해법인 셈이다. 제주도의 ‘월평도시골협동조합’ 역시 귀농 청년들과 마을 주민들이 결성한 협동조합으로 게스트하우스 사업, 휴게음식점 운영, 한라봉·감귤·백합 판매 등을 공동으로 진행하며 지역 간 벽을 허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