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는 화가로 더 유명해진 강석진 CEO컨설팅그룹 회장. 그는 GE코리아 회장 재직 시절 미국 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예술가와 CEO의 공통점을 피력해 박수갈채를 받은 경험이 있다. 당시 그가 말한 예술가와 CEO의 공통점은 ‘열정, 창의성, 프로의식’ 세 가지였다.

강의실에선 진지하게 수업에 임하는 CEO들 (위)도 공연 관람 후에는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아래).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고철로 된 폐유조선을 동원해 서산 간척지사업을 마무리한 것을 두고 사람들은 ‘뚝심경영’이 통했다고만 기억한다. 하지만 예술과 경영의 공통점을 간파한 사람들은 정 명예회장을 예술가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그만큼 ‘정주영 공법’은 창의적이었고, 이는 열정과 프로의식이 동반되지 않았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CEO에게 필요한 것은 과학자의 두뇌보다는 예술가의 직관이라는 말은 전부터 있어왔다. 지난 15년간 3M이나 록히드마틴 등 세계적인 기업들에게 창조 컨설팅을 해온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교수 역시 창조경영의 출발점으로 예술을 제시한다.

몇 해 전 한국을 찾았던 그는 강연을 통해 “시와 음악, 미술, 공연 등의 예술은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여기서 바로 창의력이 나온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창조성이라는 게 일부의 천재들이 타고나는 게 아니라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창조성이란 모든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태어나는 것이다.

우리 모두 생각의 도구를 이용하면 자기 안에 있는 창조성을 자연스럽게 발현할 수 있다”며, 직원들에게 보다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창조경영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면서 예술가를 꿈꾸는 CEO들도 늘고 있다. CEO를 대상으로 하는 문화·예술 최고위과정들엔 이미 자리가 없을 정도이며, 단순한 취미 차원을 넘어 직접 예술에 빠진 CEO들도 있다.

직접 그림을 그리는 CEO는 강석진 회장 말고도 이청승 세종문화회관 사장이 있으며, 이서형 전 금호건설 사장은 경영을 접고 아예 대학 회화과에 입학하기도 했다.

3수 끝에 입학한 경영자도

2003년 개설된 한국예술종합학교의 CAP(Culture & Arts Program for CEO)과정은 국내 최초 문화예술 최고경영자과정으로 감성경영과 창조경영이라는 새로운 경영 트렌드를 전파한 곳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과정이 8기로 지금까지 약 350여명의 CEO와 정·재계 인사들이 이 과정을 거쳐갔다.

이 과정에 대한 인기는 입소문을 타고 전해져 이제는 원우 선발 시 서류전형과 함께 때에 따라선 면접을 병행할 정도다. 시간이 갈수록 응시자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지난 기수에는 세계적 경제위기가 찾아왔지만 학교 측의 걱정과는 달리 3 대 1의 높은 경쟁률이 유지됐다. 응시자가 많아 3수 끝에 입학한 원우가 있을 정도다.

이 과정의 성기숙 주임교수는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응시자가 줄지 않은 상황에 대해 “경제위기가 반복되고 불확실성의 시대가 지속될수록 창조경영과 감성경영의 트렌드는 더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세종문화회관이 진행하는 ‘세종르네상스’과정의 입학 경쟁률도 만만치 않다. 이제 3기째를 맞이하는 과정이지만 지난 두 차례의 경쟁률은 3 대 1에 달해 CEO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높은 열기를 엿볼 수 있었다.

CEO들을 상대하는 과정인만큼 강사진 역시 해당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참여해 눈길을 끈다.

CAP과정에는 황지우 한국예술종합대학 전 총장(시인),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이종상 화가, 안숙선, 김덕수(이상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황병기 이화여대 명예교수, 김남윤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 이창동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와 함께 김훈, 신경숙 등의 소설가도 함께한다.

세종르네상스과정의 강사진도 화려하다.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관장, 이주헌 미술평론가, 차승재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임평용 서울시국악관현악단 단장, 김정택 SBS예술단 단장, 이재환 중앙대 음악대학 교수, 유형종 음악·무용 칼럼니스트, 유희성 서울시뮤지컬단장, 임이조 서울시무용단장 등이 CEO들에게 예술적 감수성을 불어넣고 있다.

예술적 감성, 경영 도입 늘어나

CAP과정의 경우 일반 강좌에 비해 체험강좌의 비중이 훨씬 높고, ‘특별활동반’이 활성화돼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별활동반’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진들이 전담교수를 맡아 지도하는 것으로 도예, 연극, 사진, 타악기반 등으로 구성돼 있다. 수료 시에는 전시나 공연형태의 발표회를 갖기도 한다.

성기숙 주임교수는 “처음엔 단순히 예술에 대한 관심 정도로 접근했던 CEO들도 과정을 들으며 점점 더 예술에 심취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세종르네상스과정은 문화와 예술에 대한 이해를 통해 경영과 예술, 인문학의 통섭을 추구하는 것이 목표다.

차세대 리더를 위한 무료강좌도 이 강좌의 특징. 수강생들의 추천을 받아 장학생을 선발해, 차세대 리더를 위한 특강에 초대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얻은 예술적 감수성을 회사로 가져가는 CEO들도 늘고 있다. 성기숙 교수는 “과정 수강을 통해 얻은 예술적 영감을 경영에 접목하려는 시도도 눈에 띈다”며, 이번 8기 수강생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IT업체의 대표인 수강생은 프레젠테이션을 뮤지컬 형식으로 구상해 큰 호응을 얻은 것.

딱딱한 사무실을 개조해 직원들의 상상력을 높이려는 사례도 있다. 미술작품을 전시하거나 영상감상실의 도입 등을 통해 직원들의 예술적 감수성을 높이려는 시도가 대표적이다.

이재훈 기자 huny@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