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해보라.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때 각 단원이 각자 맡은 바에 따라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지만, 보는 악보는 같아야 아름다운 화음이 나오지 않는가. 다양한 구성원들이 각자 다른 역할을 수행하지만, 같은 가치와 행동강령을 가지도록 하는 게 바로 리더의 역할이다.

얼마 전 걸그룹 멤버 중 J양의 실언이 파문을 일으켰다. 한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서 “저희는 개성을 존중하는 팀이라 민주화시키지 않아요”라고 말했던 것. 민주화가 여기서 무슨 뜻으로 쓰였는지 이해되는가. 여기에서 민주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의미가 아니었다. 요즘 극우 보수성향 인터넷 사이트에선 ‘민주화’가 ‘다른 소수를 집단으로 폭행하거나 언어폭력을 일삼는 것’을 일컫는 은어다. J양에게 ‘민주화’는 그런 의미였다. 나중에 사과를 하는 것으로 수습했지만 ‘같은 단어’를 사용했다고 해서 같은 ‘의미’로 쓰이지 않음을 극명하게 보여준 경우다.

국가 아젠다에서도 마찬가지다. 대선 때는 '경제민주화'의 의미를 놓고 여야가 설왕설래했다. 현재 박근혜 정부에서는 '창조경제'의 의미를 놓고 각자 다른 풀이를 내놓고 있다.

이처럼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같은 단어인데도 각자 임의대로 해석해 제각각 다른 뜻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다. 의미 통일이 안 되면 사공이 많아져 배가 산으로 간다. 의사불통이 되고 갈등이 발생해 소통손실(Loss)이 발생한다.

공자는 일찍이 자신이 정치를 하게 된다면 제일 먼저 '정명(正名)'부터 챙기겠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신임 리더의 급선무는 정명이란 뜻이다. 정명에서 명(名)이란 명칭, 명분, 더 나아가 역할과 책임(R&R. Role and Responsibility)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명이란 조직의 명칭과 명분, 역할과 책임을 바로 세우겠다는 뜻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어느 날 제자 자로가 공자에게 여쭌다.

“선생님, 위나라 군주가 선생님을 모셔 정치를 하려고 하는데 무엇을 제일 먼저 하시겠습니까? 이에 공자는 “반드시 정명(正名)부터 하겠다”고 말한다. 자로는 “선생님, 너무 현실과 거리가 멉니다. 그렇게 해서 어느 세월에 어떻게 바로잡으시겠습니까?”라고 대응한다. 그러자 공자는 “자로야, 너는 비속하구나. 군자는 알지 못하면 차라리 말하지 않는 법이란다. 명칭이 바르지 못하면 말이 이치를 따르지 못한다. 말이 이치에 따르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형벌이 제대로 세워지지 못하니 백성들이 제대로 행동을 할 바를 알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군자가 정명을 해야 백성들이 비로소 행할 바를 알게 된다.”

공자와 자로의 이 같은 대화 장면을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드는가.

마치 공자가 2500년을 넘어 타임머신을 타고 우리 시대로 날아온 것 같은 착각이 들지는 않는가. 자로는 오늘날 말로 '조폭' 출신인데 공자의 가르침을 듣고 감동받아 열혈제자로 변신한 인물이다. 열광도 잘하지만 치받기도 잘하는 다혈질 제자였다. 그런 자로가 스승의 교과서적 대답만으론 만족스럽지 않았던 모양이다. 스승의 말이 끝나자마자 돌직구를 날린다. ‘정명(正名)이란 말로는 그럴 듯해도 현실적으로 과연 성과를 낼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주의적 이야기를 하니 세상에서 쓰이지 못하는 것 아니냐. 한가한 이야기하지 말고 현실적이 되라”는 약간의 힐난까지 담은 자로의 울끈불끈한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공자가 살던 춘추시대 말기는 어떤 시대인가. ‘약육강식의 성과주의가 판치는 시대였다.

시쳇말로 ‘명분 바로 세우기, 역할 제대로 정해 주기가 밥을 먹여주나'는 현실적 반문이기도 하다. 자로의 질문은 바로 오늘날 우리의 마음을 대변한다. 공자는 '비속하다'고 야단을 치지만 다시 자로의 눈높이에 맞춰 '정명'을 하지 않을 경우의 결과를 지적한다.

공자는 정명(正名)을 하지 않으면 ① 사람마다 같은 말을 쓰면서 의도하는 뜻이 달라진다.② 명칭과 명분이 각자 달라 혼란스러울 때면 어떤 일도 성립되지 않는다. ③ 일이 성립되지 않으면 예절과 음악이 일어나지 못하고 ④ 상벌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며 ⑤ 공정을 잃게 된다. 즉 구성원들마다 명칭, 명분, 역할과 책임에 대해 중구난방 각각 달리 쓰게 되면 조직의 기강이 무너진다는 이야기다.

상상해보라.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때 각 단원이 각자 맡은 바에 따라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지만, 보는 악보는 같아야 아름다운 화음이 나오지 않는가. 다양한 구성원들이 각자 다른 역할을 수행하지만, 같은 가치와 행동강령을 가지도록 하는 게 바로 리더의 역할이다. 이게 공자가 말한 정명(正名)이다.

실제로 세계적으로 ‘성과를 내는 기업’들의 비전 선언에는 일상적으로 쓰이는 단어 하나를 쓰더라도 결코 허투루 넘어가는 법이 없다. 세계적 스포츠 기업인 아디다스의 비전 선언은 정명의 좋은 사례이다. 아디다스의 핵심단어는 최고, 스포츠, 브랜드, 글로벌 등 총 4개다. 아디다스는 이들 4개 핵심단어의 의미를 각각 정교하게 정의하고 있다. 직원, 회사, 고객의 입장 등 역할에 따라, 그리고 각각의 행동 항목에서 이들 단어가 가진 의미와 행동에 대해 꼼꼼히 의미를 규정한다. 또한 사전적 정의뿐만 아니라 잘못된 해석을 대조해 ‘오해’에 대한 대비까지 한다.

예를 들어 '세계 최고가 된다는 말'을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최고란, 동종 업계에 있는 다른 모든 기업을 능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반드시 규모가 가장 큰 기업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의 목표는 고객과 업계가 ‘진정한 운동선수는 최고의 기량을 펼치기 위해 아디다스를 입는다’는 것을 믿도록 만드는 것이다. 업계 최고의 기업이 되면 규모는 저절로 커질 것이다. 진정한 운동선수들이 최고의 기량을 뽐내기 위해 아디다스 운동화를 선택할 때 비로소 우리가 최고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 성능, 기술, 디자인, 품질, 고객 만족, 가치, 의사소통, 능력과 기회 등에서 최고가 되어야 진짜 최고임을 부연설명하고 있다. ‘짬밥과 눈치로 때려잡아 알아서 해석하라’는 여지는 전혀 없다. 신입사원에서 경영자까지 일사불란하게 같은 선언을 같은 내용으로 이해하고 있다.

한 주식 애널리스트가 “향후 어느 회사의 주가가 오를지 안 오를지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회사의 의미공유를 전사적으로 같이하느냐 여부를 알아보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 기업에서 강조하는 핵심 키워드의 의미에 관해 경영자로부터 일선 직원에 이르기까지 각자 써보게 했을 때 얼마나 일치하느냐 알아보면 된다는 설명이었다. 적어도 70% 이상 의미가 공유돼 있어야 동상동몽(同床同夢)조직이라 할 수 있다.

공자가 정명(正名)을 시급하고도 중요하게 생각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상동몽 조직은 의미가 공유돼 명분과 실정이 서로 들어맞으니, 역할과 책임이 분명하다. 즉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 명백하다. 그러니 상벌을 예측할 수 있고, 기강과 규율이 선 질서 있는 조직이 되는 것이다. 리더 여러분의 조직은 어떤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의미는 얼마나 공유되고 있는가. 그 구체적 의미를 직원들과 대조해보라. 차제에 여러분의 조직을 위한 정명사전(조직 공통 핵심 용어 사전)을 만들어보면 어떻겠는가.

김성회 리더십 칼럼니스트

연세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으며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계일보>에서 활동한 기자 출신의 리더십 전문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