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전역, 박달재

‘칙칙폭폭, 덜컹 덜컹’ 강을 따라 산허리를 뚫고 황금들판을 가로질러 기적소리가 울린다.

멀리서 들려오는 기적소리는 무엇에 홀린 양,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특히 어릴적 시골집에라도 가는 날이면 열차를 탈 수 있다는 들뜬 마음에 잠을 설치던 기억들도 새록새록 솟아난다.

하루가 다르게 빨라지고 첨단화되어 가는 세상이지만 열차를 바라보는 느낌은 이처럼 추억과 낭만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게 한다.

또 하나, 추억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옛날 한양과 지방, 고을과 고을을 이어주던 굽이굽이 고갯길이다. 지금은 탄탄대로 고속화도로에 자리를 뺏겨 옛 영화를 내준 지 오래됐지만 고갯길만큼 가슴을 울리는 길도 없을 것이다.

충북 제천에 가면 지금은 잊혀가는 간이역과 고갯길을 만날 수 있다. 영화 <박하사탕>의 촬영지이며 충북의 오지역인 ‘공전역’과 대중가요 노랫말로 유명한 ‘박달재’ 옛길이 그곳이다.

공전역엔 어머니가 부르는 기적소리만

충북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의 공전역은 조치원과 제천을 잇는 충북선의 역이다.
충북선 가운데 동량~삼탄~공전 구간은 도로가 발달된 오늘날에도 열차가 아니면 접근하기 어려운 오지로 남아 있다.

충주 일대 평야와 남한강을 따르던 충북선 노선 중 동량역에서 삼탄역을 잇는 구간의 인등터널(4.2km)은 태백선 고한~추전 사이의 정암터널(4.5km)이 건설되기 전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철도터널이었다.

좀 지루하다 싶을 만큼 긴 터널을 지난 뒤, 짧막한 삼탄터널을 또 지나면 중원의 깊숙한 내륙에 자리한 삼탄 강변의 비경을 만날 수 있다. ‘삼탄’이란 광천여울, 소나무여울, 산천초등학교 명서분교정 앞 따개비바위 여울이 합쳐 붙여진 지명이다.

삼탄교에 서면 강이 연출하는 풍경의 파노라마를 관람하는 맛도 각별하다. 삼탄강이라 불리는 제천천은 강과 접한 산과 단애절벽을 이루어 충북의 동강이라고 불릴 정도로 절경이다.

그중에서도 공전역은 가장 한가하면서도 오 지역이다. 영화 <박하사탕>에서 배우 설경구가 기찻길을 막고 서서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외치던 곳이 바로 그곳이다.
공전역은 전형적인 시골역사의 분위기가 묻어난다.

지난해까지 상·하행선 합쳐 하루 6번을 서던 한적한 시골역이였지만 지금은 이용객들이 줄면서 열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이 되었다.

역사 옆길로 플랫폼으로 들어섰다. 플랫폼은 1980년대 한국사회의 처절하고 쓰라린 역사를 표현한 영화 <박하사탕>의 한 장면이 새록새록 되살아나는 듯 하다.

한적한 플랫폼을 걸었다면 역사 바깥으로 나가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는 들녘을 걸으며 가을풍경에 젖어보는 것도 좋다.

공전역에서 둑방길을 따라 도보로 10여분 정도 거닐면 조선 의병의 넋이 서린 자양영당을 만날 수 있다.

조선 후기 대유학자인 이항로 선생의 수제자인 성재 유중교 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친 곳으로, 의병장인 유인석이 8도 유림 600명을 모아서 의병을 일으킬 것을 발의한 곳이다.

박달과 금봉의 애절한 사랑
‘울고 넘는 박달재’

아련하게 들려오는 기적소리를 뒤로하고 공전역을 나와 박달재(朴達嶺)로 향했다.
박달재는 천등산(天登山) 박달재라고도 하며, 조선시대에는 천등산과 지등산이 연이은 마루라는 뜻에서 이등령으로 불리기도 했다.

해발 453m, 길이 500m. 예로부터 제천에서 서울에 이르는 관행길이 나 있으나, 첩첩산중으로 크고 작은 연봉이 4면을 에워싸고 있어 험준한 계곡을 이룬다.

지금이야 차로 10분이면 재를 넘을 수 있지만 옛날에는 박달재를 넘으려면 걸어서 며칠이 걸렸다고 한다. 청운의 꿈을 지닌 선비, 봇짐을 진 상인들이 가파른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오른 뒤 으레 곤한 몸을 추스린 곳이 박달재다.

그러나 2001년 충주~제천을 잇는 박달재 터널이 뚫려 사실상 교통 기능을 상실하면서 한적한 곳으로 변했다. 굽이굽이길을 돌아 정상에 오르면 휴게소에선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으로 시작하는 대중가요 ‘울고 넘는 박달재’가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정상에는 물레방아,분수,옛길 등이 조성되어 있고 박달재를 상징하는 200여점의 조각 작품이 있어 고갯길을 찾은 사람들에게 옛길을 떠올리게 만든다. 산길을 5분여 올라 전망대에 서면 드높은 산세에 봉우리마다 구름이 걸쳐 있는 천등산과 구학산이 눈앞에 펼쳐지는 장관을 맛볼 수 있다.

전망대 아래 박달재공원에는 조선시대 복장을 한 남녀 한쌍이 애틋한 자태로 먼 산을 바라보고 있다. 이들이 바로 ‘울고 넘는 박달재’ 노래의 주인공인 박달 도령과 금봉 낭자다. 잠시 전설 속으로 들어가 보자. 조선 중엽 영남의 선비 박달이 과거를 보러 가던 중 박달재의 한 농가에서 금봉을 보고 첫눈에 반하고, 둘은 장래를 약속하고 헤어진다.

그러나 금의환향을 약속한 박달이 과거에서 낙방한 뒤 미안한 마음에 금봉을 찾지 못한 사이 석 달 열흘 날마다 박달을 그리며 기도하던 금봉은 숨을 그둔다.

금봉이 그리워 뒤늦게 마을을 찾은 박달도 금봉의 죽음에 넋을 잃고 산속을 헤매다 숨지고 만다. 이런 일이 있은 뒤부터 사람들은 이 고개를 박달재라 부르게 되었다.

현재 박달재 정상에는 슬픈 연인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1997년에 세운 성황당이 길손들을 기다리고 있다.

전설을 뒤로하고 정상에서 충주 방향으로 조금 내려서면 오른편으로 절경을 만날 수 있다. 수령 150년 이상의 소나무들과 기암괴석들에 둘러싸인 경은사의 모습은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

박달재를 내려와 38번 도로와 이어지는 길에서 우회전해 터널을 앞에서 좌회전하면 경은사로 들어갈 수 있다. 자잘한 들꽃이 나붓하게 엎드린, 자연석으로 만든 계단을 한 층 한 층 밟아 오르면 마침내 경은사 앞마당이다.

앞마당에 서서 둘러보는 주변 풍광 또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저 멀리 산중턱으로 보이는 박달재길과 터널이 아스라이 시야에 들어온다.


여행메모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제천IC를 나와 충주 방향 38번 국도를 타고 가다 봉양 연박2리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철길과 터널을 따라 10km의 시골길을 달리면 공전역이다. 박달재는 공전역에서 다시 나와 삼거리에서 좌회전해서 충주 쪽으로 10여분 가면 박달재 터널 지나기전 옛길로 올라서는 길이 보인다.

볼거리… 베론성지를 빼놓을 수 없다. 1801년 신유박해 때 황사영이 백서를 쓴 곳으로 많은 천주교인들이 이곳에 숨어 옹기장사를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가을이면 성지를 감싸는 단풍이 아름다워 산책코스로도 그만이다.

또 맑은 물에 갓끈을 씻고 흐린 물에 발을 씻는다해서 이름을 따온 탁사정이 자영영당 인근에 있다.

제천=글ㆍ사진 아시아경제신문 조용준 기자 (jun21@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