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운영 자금 부족을 이유로 다니던 학교가 폐교된 이후 프레야 호건(좌)과 재학생들은 새로운 학교를 찾아야 했다.


사상 최악의 경기침체 여파가 영국 교육계에도 불어닥쳤다. 자금난에 시달리는 소규모 사립학교들의 폐교가 잇따르면서 오랜 전통을 자랑하며 유명세를 떨쳐 오던 영국의 사립교육이 흔들리고 있다.

올해 16세의 영국 소녀 프레야 호건은 여름 방학을 마친 뒤 다니던 학교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프레야가 얼마 전까지 다니던 세인트 데이비즈 여학교는 방학 기간 중 갑자기 문을 닫았다.

런던 근교 애쉬포드에 위치한 세인트 데이비즈 여학교는 293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립 여학교 중 하나다.

이 학교는 지난 7월 운영자금 부족을 이유로 폐교했다. 호건과 240명의 재학생들은 졸지에 새 학교를 찾게 생겼다.

이 학교 학부모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프레야의 아버지 크리스 호건은 “학교 폐교 소식이 전해졌을 때 학생들은 눈물바다가 됐으며 부모들은 화를 참지 못했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폐교로 인해 친구들과 뿔뿔이 흩어져야 하는 소녀들이 정신적 충격을 입은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영국 사립학교연합회(ISC)의 자료에 따르면 작년 1월부터 올해 1월 새 영국 내에서만 2000개가 넘는 사립학교가 문을 닫았으며 경기가 회복세를 타기 시작한 올 들어서도 20개에 달하는 학교가 폐교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립학교들은 교원 수를 줄이는 한편, 이미 건설 중인 학교 건물의 공사를 연기하는 등 비용절감을 위한 피나는 노력을 벌이고 있다.

이튼스쿨이나 해로우스쿨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형 공립학교들의 입학을 위해서는 여전히 대기표를 들고 줄을 서야 할 정도지만 소형 사립학교의 경우, 금융 위기 이후 사정이 매우 달라졌다.

경기악화로 인해 학비를 내기 힘들어진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면서 심각한 재정 압박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수 학교 가이드》라는 책의 저자인 수 필드먼은 “사립학교들이 힘든 한 해를 보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과거 운영 자금이 부족하면 학비를 올리면 됐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경기침체 여파가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학비를 올린다는 것은 학생들을 오히려 나가라고 부추기는 것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은행권이 적극적인 대출 의지를 보여준다면 폐교 ‘도미노 현상’은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영국 정부의 대출 확대 요구에도 불구하고 은행권이 돈 풀기를 주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쉽지 않은 일.

일부 전통 있는 사립학교들은 자존심 꺾어가며 은행으로부터 억지로 돈을 빌리느니 차라리 명예롭게 스스로 학교 문을 닫는 게 낫다는 입장이다.

중산층 부모들도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고 있다. 금융위기를 겪기 이전에는 자녀들을 대형 수영장이 딸린 고급 사립학교에 보내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지만 가계를 꾸리기조차 힘든 현 상황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 돼버렸다.

은행들이 대출을 늘리더라도 학생들이 모이지 않는 한 더 많은 사립학교들이 문을 닫게 될 것은 분명하다.

영국 내 45개 사립학교를 운영 중인 코그니타의 회장 크리스토퍼 우드헤드는 “경기악화에도 불구하고 사립교육은 다시 활성화될 것이나 당분간 사립학교의 폐교는 계속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아시아경제신문 김기훈 기자 (core8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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