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 직장 여성 김 씨(32)는 요즘 걱정이 늘었다. 예전에는 기초화장품만으로 ‘꿀피부’ 소리를 듣던 그녀가 요즘은 부쩍 “어제 잠 못 잤니? 피곤하지”라는 얘기를 많이 듣기 때문이다. 물론 직장일이 바쁘기는 하다. 문제는 8시간이 넘도록 깊은 잠을 자고 개운한 기분으로 만난 친구가 ‘피곤하지 않느냐’며 걱정을 해준다는 점이다.

여태 피부가 좋다는 자신감 때문에 화장품에 대한 정보가 적은 김 씨. 뒤늦게 친구들에게 10단계가 넘는 복잡하고 오묘한 기초화장 코스를 습득하자니 눈앞이 캄캄하다. 그때 그녀가 알게 된 것이 화장품 큐레이팅 쇼핑몰이다. 해당 쇼핑몰은 월 1~2만원의 비용을 내면 고객의 뷰티 프로파일을 확인하고 매달 전문가가 선정한 5~6가지 제품을 보내주는 이른바 큐레이팅(Curating) 시스템을 표방했다. 마침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아 개인적인 시간을 낼 수 없었던 김 씨는 과감하게 6개월 회원권을 구매하고 전문가가 큐레이션한 화장품들을 사용하기로 했다.

회원제 화장품 큐레이션 쇼핑몰, 글로시박스의 상품구성. 화장품 전문가가 개별 고객을 위한 제품을 선별해 주기적으로 제안해준다.             회원제 화장품 큐레이션 쇼핑몰, 글로시박스의 상품구성. 화장품 전문가가 개별 고객을 위한 제품을 선별해 주기적으로 제안해준다 

김 씨의 경우처럼 최근 전문가가 제품을 선정, 추천해주는 큐레이션 커머스가 온라인 유통에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큐레이션 커머스는 큐레이터와 같은 쇼핑 전문가가 고객 입장에서 상품을 선별해주는 전자상거래다. 큐레이션 커머스는 2011년에 디자이너 제품을 판매하는 미국의 팹닷컴(Fab.com)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유명 디자이너의 제품부터 신진 디자이너의 제품까지 독특한 제품을 엄선해서 판매하는 팹닷컴은 오픈한 지 1년 만인 지난해 매출이 1억달러에 달했다. 오픈 당시 17만 명 정도에 불과했던 회원 수도 지난해 12월에는 1000만명 이상으로 늘었고 미국 외 유럽 지역까지 비즈니스를 확장하고 있다. 소셜 커머스의 효시인 미국의 그루폰과 성장성을 비교해보면, 그루폰은 출시 1년 후 매출이 1400만달러를 기록한 반면, 팹닷컴은 1억달러를 기록하며 전자상거래 역사상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팹닷컴의 성공으로 유사한 비즈니스 모델이 여러 나라로 확산되고 있다. 일본의 큐레이션 커머스인 쿠쿠루(9cool)는 소비자의 큐레이션에 의해 소비자들이 주제를 정해 9가지 상품을 추천해주는 사이트다. 쿠쿠루는 ‘있으면 편리한 생활 도구’ ‘출산 선물로 받으면 유용한 아기용품’ 등 이용자가 정한 여러 테마에 따라 아이템 리스트를 다른 사용자와 공유하는 구조이다. 우리나라도 지난해부터 유아용품, 디자인 제품, 친환경 농산물, 식품 등 분야별로 큐레이션 커머스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특정 타깃과 카테고리에 맞춰 전문점 형태로 운영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김 씨가 이용한 것과 같은 화장품 전문 큐레이션 쇼핑몰, 글로시박스를 위시해 전문분야를 특화한 온라인 쇼핑몰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옥션, 지마켓, 11번가도 큐레이션 서비스 런칭해

옥션, 지마켓, 11번가 등 기존 온라인 유통의 거인들도 큐레이션 서비스를 런칭하고 있다. 지난 2월 옥션이 유명 브랜드 의류에 대해 브랜드, 상품별 검색 및 상세 이미지, 모델 착용 동영상을 확인할 수 있는 큐레이션 서비스 ‘위 럽 브랜드’를 런칭한 데 이어 4월 지마켓이 매일 카테고리별 상품 담당자들이 엄선한 9가지 상품을 추천, 판매하는 큐레이션 쇼핑몰, ‘G9(지구)’를 오픈했다. 11번가는 우수 MD들이 실용적이면서 경쟁력 있는 아이템을 직접 선별해 소개하는 큐레이션 모델을 취하면서도 가격경쟁력에 집중했다.

11번가가 새로 런칭한 ‘쇼킹딜’은 동일 상품을 다른 곳에서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판매하는 사례가 발견되면 판매가의 110%를 고객에게 돌려준다는 ‘최저가 보상제’, 해당 상품이 위조품으로 판명되면 판매가격의 110%를 보상하는 ‘위조품 보상제’, 그리고 고객실수에 의한 파손도 회사 측이 보상하는 ‘고객실수보상제’ 등으로 소셜 커머스를 정면 겨냥하고 있다.

소셜 커머스는 2011년 500억원 규모로 시작해 1년 만에 1조원을 웃도는 수준으로 성장하면서 30조 규모의 온라인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특정 분야의 제품을 선정, 추천하는 형식의 소셜 커머스는 큐레이션 커머스가 본격화되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는 큐레이션 커머스가 시장의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이들 소셜 커머스 업체와 기존 온라인 업체들의 큐레이션 서비스가 본격적인 경쟁을 벌일 것”이라며 “이들의 성패는 큐레이션 커머스의 제품 선정이 얼마나 소비자들의 입맛을 만족하게 하는가에 달렸다”고 전망했다.

 

미니인터뷰 ㅣ 이혜영 지마켓 G9 전략사업실 사이트 운영팀 이혜영 팀장

"색다른 경험 제공해 고객만족 노린다"

기존 온라인 쇼핑몰과 G9의 가장 큰 차이점은?

기존 쇼핑몰이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는 것과 달리, G9는 미술관의 큐레이터가 좋은 작품을 엄선해 전시하듯, 쇼핑 큐레이터가 독특하고 트렌디한 아이템을 선별해 한정 판매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각 상품의 특징을 살려 매일 다른 테마를 적용한 상품을 선보인다. 소개되는 제품 대부분은 마니아층이 형성되어 있는 특화 제품들이거나 이제 막 관심을 받기 시작하는 트렌디한 제품이다.

친구 초대를 기반으로 운영해 제한된 회원들에게 특별 혜택을 제공한다는 점도 G9의 특징이다. 일반회원(외계인)이 특별회원인 ‘지구인’의 초대장을 받아야만 ‘지구인’이 될 수 있는데, ‘지구인’이 되면 기존 할인 판매가에서 추가 할인혜택이 더해진 ‘지구인 전용가’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어떻게 큐레이팅 대상을 선정하나?

상품을 선별하기 약 3주 전에 모든 큐레이터(CM)들이 모여 테마를 결정한다. 어린이날 선물 등 각 시즌에 맞는 테마를 선정하기도 하고, 많은 고객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이색 테마를 선정하기도 한다. 테마가 결정되면 각 카테고리 전문 큐레이터들이 테마에 맞는 독특하고 트렌디한 제품을 물색하고, 회의를 거쳐 최종 판매할 제품을 선정한다.

가장 좋은 반응이 있었던 제품은 무엇이었나?

지난 4월 18일 선보였던 ‘슐라이히 피규어 교육세트+워크북’은 부담이 되는 가격인데도 준비한 물량이 완판됐다. 어린이날을 겨냥해 판매했던 ‘브루더 벤츠 소방차’ 상품도 몇 시간 만에 모두 팔렸다. 고객들의 요청이 많아 앙코르전까지 진행했다. 이 외에도 ‘SCOTT 3D홈시어터 스피커’, ‘스컬캔디 버전2.0 Aviator헤드폰’, '비 맞으면 벚꽃이 나타나는 우산’과 같은 독특한 상품들의 반응이 좋았다.

큐레이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메인 타깃인 20~30대 고객들에게 새롭고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만족감까지 충족시켜줄 수 있는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G9에서 쇼핑하는 것만으로도 새롭고 다양한 곳을 여행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때문에 콘셉트에 맞는 독특하고 트렌디한 제품을 선별하는 작업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한, 이렇게 선정된 상품을 사이트에서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많다. G9는 제품정보를 보다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상세보기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진 속 상품이 좌우 180도로 회전해 상품의 외형을 더 쉽고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VR서비스와 상품의 원하는 부분을 확대해서 볼 수 있는 ZOOM서비스 등을 제공해 온라인 구매 시 불편함을 최소화했다.

큐레이팅 과정에서 어려운 부분은?

기존의 일반 쇼핑몰과 차별화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인터넷 등을 통해 쇼핑정보를 접하기 쉬워지면서, 고객들의 눈높이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단순히 많이 팔리는 제품이 아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독특한 제품, 또한 어디서든 팔리는 흔한 제품이 아닌 특별한 제품을 선별하는 일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