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부른 투자 결정 금물

최근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손꼽히던 금을 비롯해 주요 원자재 가격이 하락세를 타고 있다. 특히 금, 은 가격의 하락폭이 크다. 구리가격 역시 지지부진하다. 미국 경제가 원만한 회복세를 유지해 시장의 예상대로 양적완화 규모를 축소할 경우 상품가격 하락폭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지금을 저가 매수 시점으로 보기보다는 관망세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난 4월 19일 뉴욕상품거래소(NYMEX, New York Mercantile Exchange)에 상장된 금(Gold) 선물은 9% 이상 하락했다. 은(Silver)의 하락폭은 11%로 금보다 더 컸다. 금, 은 가격이 고점을 찍은 4월 9일 가격을 고려할 경우 불과 일주일 만에 대표적인 두 귀금속 가치의 15%가 사라져 버렸다. ‘폭락’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이런 급작스런 금과 은의 가격 하락은 상품(Commodity)시장 전반의 부진을 예고하는 불길한 징조로 받아들여졌다.

수요 증가에도 하락하는 상품가격

최근 들어 상품시장의 하락이 눈에 띄게 커지면서 시장의 관심이 쏠렸지만 사실 시장의 열기가 식은 지는 상당히 오래됐다. 전체 상품 가격을 지수화한 RJ/CRB 지수(Thomson Reuters/Jefferies CRB Commodity Index)는 2011년 4월 말 370pt에서 최근 309pt까지, 약 16.4% 하락했다. 한창 남유럽 국가들의 부채 문제가 심각했던 2012년 중반에는 260pt까지 떨어졌다. 닥터 쿠퍼(Dr. Copper)로 불릴 만큼 글로벌 경기를 잘 나타낸다는 구리가격 역시  지난해 9월 톤(t)당 8400달러를 고점으로 현재 7000달러를 조금 상회할 뿐이다.

금 가격은 한때, 온스당 2000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됐고, 유가 또한 순식간에 배럴당 200달러로 상승할 것 같던 시기가 있었다. 사실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상품 랠리는 금융 위기 직전인 2008년 중반에 절정에 이르렀고, 위기 이후에도 중앙은행들의 유동성 공급으로 상품은 훌륭한 투자 대상으로서 각광받았다.

이러한 상품가격의 강세 뒤에는 항상 중국이 있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2011년 공식적인 중국 인구는 13억4700만 명이다. 하지만 산아제한정책 등의 이유로 인구가 과소하게 집계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경우 실제 인구는 15억 명 이상일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단순히 인구만 놓고 비교한다면 이웃나라인 인도도 12억 명으로 중국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상품 수요 증가를 이야기할 때 인도가 아닌 중국만을 근거로 드는 이유는 개혁 및 개방을 시작한 1970년대 후반부터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중국의 산업화와 도시화 때문이다.

도시화는 필연적으로 구리와 같은 산업용 금속과 철광석, 에너지 수요를 증가시킨다. 또한 도시로 몰려드는 인구의 대부분은 생산 가능 인구이자 소비성향이 높은 15~64세다. 이 연령층이 차지하는 비중은 총 중국 인구의 75% 수준인 10억 명이다. 게다가 얼마 전 공식 출범한 시진핑, 리커창 체제의 주요 과제 중 하나가 ‘도시화’이기 때문에 상품 수요는 앞으로 더욱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수요 증가가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상품가격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단순히 수요와 공급만으로 현재의 상품 시장을, 그리고 미래의 가격을 예측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과거 사례를 살펴보면 2007~2008년, 2009~2011년 중반에 있었던 두 차례의 상품 시장 랠리에는 항상 금융의 측면 지원이 동반됐다.

금융 위기 직전에는 민간 금융 시장의 유동성 확대가, 금융 위기 이후에는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이, 상품 가격 상승을 이끌었다. 흔히 말하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던 것이다. 현대 금융 시장에서 유동성이란 거칠게 표현하면 ‘실제 가치가 불확실한 돈’이다. 따라서 금융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현재도 여전히 시행 중인 ‘유동성 공급’은 화폐 가치를 하락시키고, 이에 대한 적절한 대응은 실물, 즉 상품을 사는 것이다. 현재 1만원인 가방을 1년 후 또는 10년 후 동일한 가격으로 살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면 지금 사는 것이 최선의 선택인 것처럼 말이다.

美 양적완화 축소시 상품 가격 하락폭 커질 듯

그런데 최근 금융 시장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미국 연방준비은행을 비롯한 중앙은행들의 유동성 공급은 지속되고 있지만, 그 강도나 영향력은 현격히 줄었다. 게다가 가장 큰 변화는 대다수 시장 참가자들이 이러한 유동성 공급이 머잖아 중단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감안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미국은 2.2% 성장했고, 올해 성장률은 그보다 나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업률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지만 점점 낮아지고 있어 현재 추세로 진행된다면 결국 미국 연방준비은행의 양적 완화 규모는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달러로 대표되는 화폐 가치 상승이 예상되고 이는 상품가격 상승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실제로 미국 경제 회복은 짧게는 지난 2월부터 달러 가치 상승을 이끌었고, 더 길게 보면 2011년 후반부터 달러는 반등하기 시작했다. 상품시장의 부진이 시작된 시점과 정확히 일치한다.

실물 측면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몇 년 전만 해도 공급 감소와 생산 단가 상승으로 지속 상승할 것으로 예상됐던 유가는 미국 내 원유 생산량 증가로 상승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 셰일오일과 셰일가스 생산이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철금속도 공식적으로 창고에 쌓인 재고는 사상 최대 수준이다. 수요도 증가했지만 10년 이상 동안 진행된 상품가격 상승은 공급 능력 또한 확대시켰다.

최근 상품가격 하락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긴 시간을 놓고 살펴봤을 때, 현재의 상품가격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몇십 년 전과 현재를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마찬가지로 금융과 실물 부문의 변화가 실제로 진행되는 시점에서 단 몇 개월 전 가격과 비교해 ‘저가매수’를 주장하는 것도 리스크가 있는 선택이다. 여러 변수가 있지만, 당분간 전반적인 상품시장에는 보수적인 관점을 가지고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이다. 그럼에도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자 한다면 달러 가치와 높은 음(-)의 상관관계를 갖는 비철금속, 에너지와 같은 분야보다는 이미 낮은 가격으로 하락해 있는 곡물 및 소프트 부문에 주목할 것을 권한다.

 

 

 

오동석 이트레이드증권 리서치본부 투자전략팀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