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의 공격적인 양적완화 발표 이후 2차 엔저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아베 정권은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는 만큼 정책적으로 엔저 기조 조성을 당분간 지속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또한 달러화 강세나 엔 캐리 트레이드도 엔화 약세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엔화 약세가 일본 경기 회복에 단초가 되기보다는 자산시장에 버블만 키울 가능성이 높다.

엔화를 둘러싼 논란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그 논란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우선 엔화가 1차 약세에 이어 또다시 약세를 보일지 여부다. 시장을 놀라게 한 구로다 신임총재의 양적완화 행보로 100엔 수준에 근접하고 있는 엔달러 환율이 추가로 상승할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두 번째 논란은 엔화 약세가 과연 일본 경제를 부활시킬 수 있을지다. 아베노믹스가 실시된 이후 일본 니케이지수가 지난해 10월 이후 약 60%가량 상승하자 일각에서는 이를 일본 경제 부활의 예고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가와 달리 실물지표의 개선은 뚜렷하지 않아 자산버블만 촉발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마지막은 엔화 약세가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다. 국내 1분기 GDP성장률이 직전분기대비 0.9%를 기록하는 등 아직 엔화 약세에 따른 부정적 영향은 크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정부나 한국은행이 재차 밝혔듯이 2분기 이후 엔화 약세 영향이 본격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국내 제조업의 경쟁력 제고 등을 고려할 때 엔화 약세 영향이 예전처럼 크지 않을 것이란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엔화가 약세일 수밖에 없는 세 가지 이유

엔화와 관련된 논란 중 추가 엔화 약세 가능성에 대해서는 시장의 우려만큼 약세가 장기간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당분간은 100엔 수준에 안착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내 요인들이 추가 엔화 약세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 정권은 최소한 참의원 선거가 예정된 7월까지는 엔 추가 약세 유도를 통한 경기 및 자산시장 회복에 정책적 조첨을 맞출 것으로 기대된다. 아베 정권은 참의원 선거 승리를 발판으로 평화헌법 9조(2차 세계대전 패배 이후 연합군 측의 요구에 따라 전쟁 포기, 교전권 불인정 등을 골자로 하는 내용)의 개헌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시 말해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당분간 엔화 약세를 통한 분위기 조성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미국과 일본 간의 통화정책 강도를 통해서도 엔화의 추가 약세를 예상할 수 있다. 일본은행(BOJ)은 2014년 말까지 본원통화 규모를 현재보다 2배로 확대할 것임을 밝힌 바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현재 시행하고 있는 양적완화 정책 규모가 올 하반기부터 축소될 경우 일본과 미국 간 통화량 확대량이 역전될 수 있다. 이는 엔화의 추가 약세 압력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일본 경제의 취약한 펀더멘털도 엔화 추가 약세 압력이다.

글로벌 위기가 불거질 때마다 엔화가 안전자산으로 각광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일본 경제의 펀더멘털이 크게 훼손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대지진 이후 만성적인 무역수지 적자에 시달리고 있고 경기부양을 위한 무리한 재정 및 통화확대 정책은 일본 경제의 신인도를 악화시켰다. 엔화 자산이 안전자산으로 인기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확대되고 있는 엔 캐리 트레이드로 인한 엔달러 환율 오버슈팅 가능성을 통해서도 추가 엔화 약세를 예상할 수 있다. 엔화의 추가 약세 기대감이 확산될수록 엔 캐리 트레이드 수요가 확대되면서 추가적 엔화 약세를 촉발시킬 수 있다.

물론 아직 일본 내 자금들이 해외에 유출되는 현상이 본격화되지 않았지만 점차 엔화 약세를 등지고 일본 자금의 해외투자가 확대될 것이다. 이러한 엔 캐리 트레이드 확대로 엔화의 추가 약세 압력은 커질 것이다.

달러화 강세도 엔화 약세 기조 이끈다

대외적 여건도 엔화 추가 약세 압력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달러화 흐름이 심상치 않다. 그동안 달러화는 미국발 금융위기와 이에 대응한 미국 연준의 달러 풀기로 약세 흐름을 이어왔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흐름이 전환되는 분위기다.

오히려 달러화가 추세적 강세국면에 진입할 여지가 높아졌다. 대표적인 근거로 미국의 통화정책을 들 수 있다. 역사적으로  달러화가 약세국면을 마무리하고 강세국면으로 진입할 시그널은 정책금리 인상 사이클이었다.

현재는 제로금리 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미국의 정책금리 인상 사이클이 나타날 여지가 높지 않다. 하지만 금리보다는 양적완화 중단 사이클이 빠르면 2014년부터 가시화될 수 있어 또 다른 측면에서 달러화 강세를 지지할 전망이다.

경기 사이클 역시 달러화 강세를 지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일본 간 GDP성장률 격차와 미국, 독일(=EU) 간 GDP성장률 격차는 역사적으로 달러화 추이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 역할을 해왔다. 문제는 일본 경제의 회복이 불투명하고 EU경제는 장기 침체국면에 빠져 있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향후 몇 년간 미국, 일본 혹은 미국, 독일(=EU) 간 성장격차가 현재보다 확대될 가능성도 높다.

금리(=통화정책) 사이클과 더불어 성장률로 대변되는 펀더멘털 격차가 추세적으로 달러화의 강세 흐름을 지지할 수 있음은 과거와 유사한 역사의 반복이 나타날 여지를 높이고 있다.

달러화의 추세적 강세기에 나타났던 또 다른 특징들로는 미국 경제가 신산업 등을 중심으로 글로벌 경기 주도권을 회복하는 동시에 미국 무역수지 적자폭 축소 등으로 글로벌 불균형(Imbalance)을 개선한 점을 들 수 있다. 시퀘스터로 상징되는 미국의 재정지출 축소와 이에 따른 재정수지 적자 축소도 달러화 강세를 지지할 전망이다.

역사는 반복한다는 말이 있다. 과거 1차 달러 강세기(1978~1984년 말) 및 2차 달러 강세국면(1995~2000년) 당시에 나타났던 대내외 특징이 최근 미국 경제를 중심으로 재연되고 있다. 달러화의 추세적 강세 기조는 엔화의 추가 약세 압력을 높이면서 엔달러 환율의 100엔 안착으로 이어질 것이다.

자산버블만 초래할 가능성 높다

그럼 이러한 엔화의 추세적 약세 기조가 일본 경제 부활을 이끌 단초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많은 경제학자들의 의견이 갈린다. 현재로서는 불확실하다는 대답이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현재 상황만 놓고 판단할 경우 엔화 약세 기조가 경기회복보다는 자산시장 버블만을 초래할 것이란 데 무게가 실린다. 일본의 경제구조 때문이다.

일본의 GDP대비 수출비중을 살펴보면 지난해 기준 14% 수준이다. 한국의 수출비중이 50%에 육박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렇게 일본 경제는 수출보다는 내수 중심의 경제구조라 한국과 달리 엔화 약세를 통한 경기회복이 제한적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물론 2000년대 중반 일본 경제가 엔화 약세를 바탕으로 한 수출회복을 통해 일본 경기가 반짝 회복했던 사례가 있지만 현재와 당시를 비교하기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당시 일본 수출의 회복에는 글로벌 경기, 특히 중국 경기의 역할이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현재는 글로벌 경기회복이 미진하고 일본 수출을 견인했던 중국 수출 역시 과거처럼 기여를 하기 힘든 여건이다.

실제로 일부 지표를 제외한 일본 각종 경제지표는 회복을 논하기 어려운 개선세를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으로 제조업 생산의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으며, 가동률도 하락세다. 설비투자와 관련된 핵심지인의 기계수주 역시 둔화기조가 지속되고 있다. 여기에 부동산 경기는 물론 일본은행이 중점을 두고 있는 물가지표도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강력한 유동성 확대를 바탕으로 엔화 약세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실물지표의 개선세가 미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에 엔화 약세가 일본 경기 부활로 이어지기보다는 자산버블만 확대시킬 리스크를 높일 것으로 판단된다.

엔화 약세 기조의 지속이 예상되는 만큼 국내 경제가 받을 영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수출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상대인 일본 제품의 수출경쟁력을 높여주는 엔화 약세는 분명히 국내 수출 및 경제에 위협요인이다. 그리고 아직 엔화 약세 영향이 제한적이지만 시차를 두고 국내 수출경쟁력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다만 국내 제조업의 해외생산 확대 등으로 환율 영향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더불어 국내 스마트폰으로 대변되는 기술 및 브랜드 등 비가격경쟁력 제고는 과거에 비해 엔화의 영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엔화의 약세 영향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지만 엔화 약세 영향이 업종별로 차별화되면서 국내 경제에 미치는 엔화 약세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시킬 것이다.

결국 엔화 약세가 국내 수출이나 경제회복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물로는 작용하지 않을 것이다. 국내 경제의 회복은 세계(특히 중국) 경제의 회복 속도에 달렸다. 중국 경제가 살아나면 환율 문제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소득탄력성(세계 경제 성장)이 가격탄력성(환율 효과)보다 크기 때문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