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 사기꾼인가, 금융위기 피해자인가
풀리지 않는
매도프 미스터리 3

“폰지 사기(Ponzi Scheme)라고 생각지 못했다. 수익률이 이상하다고 했지만 버나드 매도프를 믿었다. 나도 투자했다 피해를 입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미국 펀드오브헤지펀드 펀드매니저의 말이다. 그 이후 그와의 연락은 끊겼다. 측근에게 물어본 결과, 해당 펀드오브헤지펀드도 버나드 매도프가 운용하는 펀드에게 투자했다가 막심한 피해를 입어 투자자들을 피해 연락이 두절된 상황이라고 한다.
이처럼 버나드 매도프 사태는 역사상 최대 규모이자 희대의 금융사기로 일파만파 퍼졌다. 전 나스닥 증권거래소 위원장이자 펀드매니저로 유명한 그였지만, 사기꾼으로 전락하는 신세가 돼버렸다.
그를 둘러싼 미스터리 중 풀리지 않은 것들이 많다. 왜 유명인사인 그가 폰지 사기를 저질렀는지, 투자자들은 정말 몰랐는지, 미국보다 해외 금융업체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는지 등 많은 의문들이 있다.
그 중 시선을 집중시키는 의문은 몇몇 제보자들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매도프LLC는 폰지사기”라고 수차례 신고했지만 번번이 기각됐다는 것이다. 미국 헤지펀드 관계자는 “많은 제보가 있었지만 왠일인지 이제까지 걸려들지 않았다”며 “이제부터 SEC에 대해 본격적인 조사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스터리 1. SEC는 왜 신고를 외면했을까
버나드 매도프 스캔들과 관련해 의문이 증폭되는 부분은 SEC의 행동이다. SEC는 구체적이고 믿을 만한 제보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의 폰지 사기가 걸리지 않은 것이 신기하다고 말하는 제보자가 있을 정도였다. 미국 사모펀드(PEF) 스칼라 어드바이저 제이크 리 펀드매니저는 “버나드 매도프는 7~8년 전부터 폰지 사기라는 의견이 많았다”며 “개인적으로는 SEC가 그동안 잠자코 있었던 것이 가장 의문”이라고 언급했다.
덧붙여 그는 “수익율을 보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미국 현지에서 주식형 펀드가 20% 이상 수익을 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비상식적인 투자수익률을 고정적으로 보장한다는 것만으로도 SEC가 충분히 조사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SEC가 왜 조사를 착수하지 않았는지는 아직 명확히 밝혀진 것은 없지만, 이 스캔들에 전 SEC 감찰본부 에릭 스완슨 변호사가 개입됐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에릭 변호사는 SEC에 근무하면서 매도프 회사에 대해 조사를 맡았으며, SEC를 퇴직하고 2007년에 버나드 매도프의 조카인 사나 매도프와 결혼했다. 1999년부터 제보가 있었고 2005년에서야 겨우 조사에 들어갔지만, SEC 조사본부에서는 자금운용을 조사한 결과에 대해 불법 행위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2005년도에 감찰본부에서 일했던 에릭 변호사인 만큼, 버나드 매도프와 공모하지 않았겠냐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 헤지펀드들이나 투자자문사들이 편법을 많이 활용하기 때문에 규제법망을 피해갔을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제이크 펀드매니저는 “그들이 편법(loop hole)으로 규제를 피해나가는 것을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라며 “밑바닥까지 조사하지 않는 이상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미스터리 2. 매도프는 정말 폰지 사기 수법을 썼나
버나드 매도프의 투자방식은 일반적으로 폰지 사기, 즉 금융다단계 수법으로 알려져 있다. 기존 투자자의 수익을 신규 투자자들의 원금으로 보장하는 방법인데, 이 투자 전략(?)에 대해 월가의 의견이 분분하다. 폰지 사기라는 부정적인 의견과 함께 혁신적인 투자전략이라는 긍정적인 시각도 있다.
헤지펀드 사리스(SSARIS) 정삼영 아시아태평양 지역담당 디렉터는 “2007년 버나드 매도프가 욕심만 부리지 않았더라면 폰지 사기가 아닌 혁신적인 투자전략으로 남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래 버나드 매도프는 폰지 사기를 계획한 것이 아니라, 안정적으로 많은 수익률을 제공하는 것에 연구를 많이 했다는 것이다.
버나드 매도프의 투자는 세계 증시, 특히 이머징마켓보다는 안정적인 선진국에 집중했다고 정 디렉터는 말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버나드 매도프는 헤지펀드의 롱숏전략을 구사하면서 주식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옵션을 추가해 안정적인 수익률을 내는 전략을 구사했다. 연 수익률 20% 이상을 기록해 미국 내 헤지펀드 수익률 Top 5에 자리 잡을 정도였다고도 전해진다.
버나드 매도프가 폰지 사기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2006년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지기 직전인 2005년부터였다고 정 디렉터는 전한다. 시장 상황이 힘들어지면서 500억달러 규모의 펀드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게 되자, 수익률을 맞추기 위해 폰지 사기를 감행했다. 시장 상황이 좋아지면 폰지 사기로 막았던 자금들을 어느 정도 되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정 디렉터는 “2005년 버나드 매도프가 솔직하게 시장 상황이 나쁘다고 고백을 했다면 좋았겠지만, 그러기에는 펀드 규모가 워낙 컸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유령은행을 만들어 그곳의 어음을 결제하는 방식이나 있지도 않은 상품에 투자한다고 이야기하는 등 비상식적인 방법도 있었다고 미국 헤지펀드 관계자들은 전한다. 수익률 하락을 막기 위해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동원했다는 것이다. 제이크 펀드매니저는 “그의 투자전략이 혁신적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투자자들의 수익을 편법으로 제공하는 것이 혁신적인 것인지 되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미스터리 3. 미국보다 해외 금융기관 피해가 많은 이유는
미국에서 일어난 금융사기 스캔들이지만, 미국보다 유로계 은행들과 아시아 금융기관들의 피해가 컸다. 네덜란드 포르티스은행은 버나드 매도프가 운영하는 펀드에 투자하지는 않았지만, 매도프와 연결된 헤지펀드에 원금보증을 해줬다가 최대 10억유로가 물릴지 모르는 상황까지 와 있다. 크레디트스위스도 10억달러의 손실을 입었으며, 스페인 방코 산탄데르의 경우에는 추정 손실액이 현재까지 손실 입은 금융회사들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직접적으로 버나드 매도프에 물린 돈은 230만달러에 불과하지만, 방코 산탄데르의 헤지펀드 ‘옵티말’이 약 30억달러를 버나드 매도프 펀드에 투자한 탓에 투자자들의 손실이 우려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대한생명이 5000억원 정도 투자했으며, 한국투자운용과 하나UBS자산운용, 삼성투신, 한화투신, 산은투신 등도 많은 손실을 봤다.
이처럼 미국 금융기관보다 해외 금융기관의 피해가 컸던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헤지펀드 관계자들은 공통적으로 충분한 확인 작업이 없이 과거의 실적만 보고 투자했던 것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이는 미국 내 투자자들도 마찬가지인데, 미국 내 상황에 대해 잘 파악하기 어려운 해외 투자자들은 보다 신중하게 확인 작업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제이크 펀드매니저는 “버나드 매도프의 경우, 미국의 유태계 공동체와 해외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했다”며 “해외 투자자들도 적법성과 구체적인 투자방식 등을 알아보기가 미국 내에서 더 힘들다”고 말했다.
계약서류상에 ‘원금의 이자를 준다’는 조항이 명시돼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 폰지 사기 대부분은 이 조항을 무시하고 있다. 제이크 펀드매니저는 “버나드 매도프의 경우에는 친분을 이용해 운용해온 것으로 보아 이 조항을 무시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전략의 차이로 인해 해외 투자자들의 피해가 컸다는 의견도 있다. 펀드가 이상하다고 제보한 이들은 대부분 숏텀 전략 투자자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단기간으로 계산한 수익률과 버나드 매도프가 공시하는 수익률이 차이를 보이자 제보하기 시작했다.
반대로 롱텀 투자자(대부분 해외 금융기관들이었다고 전한다)들은 버나드 매도프의 수익률을 믿고 그대로 방치했다. 정 디렉터는 “버나드 매도프가 펀드투자에 실패한 것은 폰지 사기로 막은 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라며 “해외 투자자들은 정기적으로 투자한 펀드 수익률을 분석했어야 했지만 버나드 매도프만 믿고 이를 방치했다”고 지적했다.
김현희 기자 (wooang13@ermedia.net)

김현희 기자 wooang13@ermedi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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