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말이 있다. 방어에만 치중하다 보면 능동적인 승리를 이끌어낼 수 없는 게 게임의 법칙이다. 기업경영의 측면도 마찬가지다.

위기에서 빛을 발하는 기업들을 찾아보면 하나같이 공격경영으로 성과를 일궈낸 경우가 많다.

글로벌 경제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지금에 기업들의 공격경영이 주목받는 것도 이런 이유다.

이 같은 맥락에서 올 들어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기업을 찾아본다면 웅진그룹이 제1순위로 꼽힐 만하다.

그도 그럴 것이 2005년 1조8000억원이던 그룹 매출액이 지난해 4조6000억원으로 3년 만에 2배 넘게 늘었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이 몰아친 작년 가을 이후 오히려 매월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신기록을 경신했으며, 올 상반기만 하더라도 그룹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작년 상반기 대비 51%나 늘었다.

어느덧 8월 현재 14개 계열사를 둔, 자산 기준 재계 34위의 중견그룹으로까지 성장했다. 도대체 웅진의 ‘빠른 진화’는 어떻게 해서 가능해진 걸까.

정답은 그룹 CEO인 윤석금 회장의 ‘긍정과 도전’ 리더십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최근 그는 30여년의 경영행보를 담은 자서전 《긍정이 걸작을 만든다》를 펴내며 숨겨진 경영노하우를 공개하기도 했다.

300명의 피인수 노조원들과의 맨투맨식 면담
웅진을 초고속 성장가도에 올려놓은 계기로는 우선 윤 회장의 감동경영이 회자된다.

지난해 1월 웅진이 웅진케미칼(옛 새한)을 인수할 당시 구미공장 노조의 반대는 극심했다. 이때 윤 회장은 구미로 내려가 노조원들을 설득하겠다며 본사 직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직접 구미로 향했다.

당연히 노조원들이 그를 환영했을 리는 만무했다. 처음에는 악수조차 거부했던 노조원들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300명에 달하는 노조원들과의 대화는 시작부터 살벌했다. 웅진으로의 인수에 따른 감원을 걱정해서였다.

하지만 윤 회장은 3시간 동안 직접 노조원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변하며 설득에 설득을 거듭했고 그 같은 정성을 다하자 과격했던 노조원들도 조금씩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결국 헤어질 때 노조는 윤 회장의 손을 잡았고 다음번 구미공장을 방문했을 때 공장 입구에는 환영 플래카드가 내걸었다고 한다.

윤 회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기술적인 노하우가 따로 있지도 않다. 그러나 감동은 진실한 마음이 전해져 마음과 마음이 만나면 비로소 일어난다”고 회고했다.

감동과 함께 윤 회장은 긍정의 마인드로 웅진의 기초를 다졌다. 그를 들어 ‘세일즈맨의 신화’라고 평가하는 부분도 긍정적인 마인드 하나로 오늘의 웅진을 세웠기 때문이다.

윤 회장은 27세 때 세일즈맨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부산 광복동 농협빌딩에 입주해 있던 브리태니커 한국지사에 무작정 찾아간 것이 그 시작이다.

당시 27만원이나 하던 백과사전 한 세트를 판매하느라 초보 세일즈맨이었던 윤 회장은 수도 없이 퇴짜를 당했다.

그러나 이틀을 굶은 후 연이어 10건의 계약을 성사시켰고 그 달 전국 500명의 판매사원 중 최고 계약을 올린 `내셔널맨`으로 뽑혔다.

이어 이듬해에는 미국 본사에서 전 세계 54개국 세일즈맨 중 최고 실적을 올린 이에게 주는 `벤튼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윤 회장은 “남들 다 노는 명절에도 쉬지 않고 세일즈를 했다”며 “세일즈를 하며 얻은 긍정적인 사고와 적극적인 태도는 기업을 경영하고 인생을 꾸려가는 데 있어 나를 지탱하는 큰 힘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때의 작은 경험은 훗날 웅진의 주력 계열사 중 하나인 웅진씽크빅으로 ‘환생’했다. 국내 어린이책 대부분이 외국 서적을 모방하던 1980년대 윤 회장은 무려 3년간 제작비 8억원을 들여 36권으로 구성된 `어린이마을`을 출간했고 이 책은 출판계에서 지금까지도 전무후무한 판매 기록으로 남고 있다.

렌털과 코디도 IMF 위기에서 탄생한 아이템
위기일수록 ‘공격경영’을 서슴지 않는 게 윤 회장의 스타일인 만큼 위기에서 ‘창조경영’을 펼친 것도 그룹 성장의 한 축을 담당했다. 간혹 윤 회장에게 ‘역발상의 마법사’란 수식어가 따라다니기도 한다.

윤 회장은 외환위기 시절 소비시장이 얼어붙었을 때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이 시기 최고의 정수기 업체로 발돋움시킨 ‘렌털’과 ‘코디’를 짜냈다. 당시만 해도 웅진코웨이의 정수기 매출이 절반으로 줄어들 때였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그는 ‘정수기를 팔지 않고 빌려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가진 끝에 ‘렌털’의 개념을 도입했다고 한다.

여기에 윤 회장은 서비스의 질을 오히려 높였다. 고객에게 걸려온 전화 응대에는 일일이 점수를 매겼다. 목소리의 느낌이나 통화가 연결되기까지의 벨소리 횟수까지 체크했을 정도다.

이 같은 대소비자 우선 전략으로 인해 웅진은 놀랄 만한 성장을 이뤄내고 있다. 지난해 웅진코웨이의 매출만 1조3000억원을 넘었다.

하나금융그룹의 김승유 회장은 당시를 회상해 “그때 우리 경제는 급격한 소비위축과 금융시장 경색으로 많은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던 시기였으며 웅진도 주력 제품인 정수기 매출이 현저하게 감소해 큰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윤석금 회장이 이끄는 웅진은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삼아 정수기 렌털 제도라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시행함으로써 더욱 큰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창조적인 아이디어는 창조적인 직원들의 머리에서 나온다. 그런 점에서 윤 회장은 직원들 간 서로 사랑하자는 독특한 기업문화도 선보이고 있다.

이른 바 ‘또또사랑’이 그것이다.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또 사랑하자’는 웅진의 기업문화는 사람을 변화시키고 조직을 혁신시킬 수 있을 것으로 그는 믿는다.

따라서 윤 회장은 직원들이 자부심과 긍지를 느낄 수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경영자들이 잊지 말아야할 인재관이라고 역설한다.

김진욱 기자 action@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