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엔저의 공습

사진=이미화 기자

90엔대로 끝날 것 같던 엔저 공습이 일본은행의 무제한 양적완화 정책 발표로 다시 시작됐다. 급기야 국내 주식시장에서 빠져나간 외국인 자금이 낮아진 엔화 가치에 투자매력이 높아진 일본 증시로 유입되고 있다. 이어지는 엔화 가치 하락에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문정희 KB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100엔을 미국이 엔저를 용인할 수 있는 마지노선으로 진단했다.

바야흐로 100엔 시대다. 당초 기대와 달리 엔화 약세 강도는 좀처럼 수그러들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10월 80엔을 밑돌았던 엔달러 환율은 연말에 86엔대까지 오르더니 최근에는 100엔에 근접하며 오히려 상승세에 속도가 붙고 있는 추세다. 현재의 엔달러 환율은 전년 동월과 비교할 경우 24%가량 오른 수준이다.

엔달러 환율이 이처런 가파른 상승세를 유지할 수 있는 요인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아베노믹스의 시장에 대한 기대다. 아베노믹스는 신임 총리로 임명된 아베 신조의 경제관을 의미하는데, 아베 총리는 당선 이전부터 일본 경제의 부흥을 정책 목표로 내세웠다. 그리고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양적완화를 펼치겠다고 주장했으며, 실제로 이를 실행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신정부 경제정책이 외환시장에 영향을 미치면서 엔화 약세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일본중앙은행(BOJ)의 정책 변화다. BOJ는 지난 1월 통화정책회의에서 소비자물가 목표치를 1%에서 2%로 상향 조정한데 이어 2014년 무제한 양적완화 시행 계획을 발표했다. 게다가 4월 통화정책회의에서는 매월 7조엔의 자산매입과 2015년 말까지 본원통화를 2배 증액시키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본원통화 1단위 증가가 시중 유동성 10단위 증가로 확대될 것이라는 점에서 일본은행의 대규모 통화량 방출이 시작됐고, 결국 엔화 가치 하락과 함께 엔화 약세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의 엔저 용인이다. 지난 2월 11일 미국의 고위 차관급에서 아베노믹스 지지를 공언한데 이어 4월 BOJ 회의 이후 IMF의 르가르드 총재 역시 일본의 양적완화 확대를 지지하고 나섰다. 2월과 4월 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담에서도 일본은행의 양적완화 확대 조치가 디플레이션 타개를 위한 조치이지 엔저 유도 조치가 아니라고 발표해 실질적으로 선진국들이 엔화 약세를 용인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엔화 10% 절하시 국내 수출 2.5% 감소

G20 재무장관 회담에서도 언급했듯이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의 적극적 재정 및 통화정책이 일본 경제의 회생, 즉 디플레이션을 타개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임은 분명하다. 일본 경제 역시 회복돼야 글로벌 경제가 원활하게 회복할 수 있음도 인정해야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엔화의 가파른 약세가 지속됨으로써 주변국의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점이 문제다. 더욱이 가장 인접한 국내 경제의 경우 일본의 엔화 약세로 인해 대외 수출 경기가 악화될 수밖에 없고, 금융시장에서도 외국인 자금이 국내 금융시장에서 이탈해 일본 금융시장으로 유입되고 있어 국내 금융시장에서의 수급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2010년 1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엔달러 환율과 국내 수출의 연관성을 살펴보면 엔화가 달러화 대비 10% 절하될 때 국내 수출은 약 2.5%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와 같은 상황이 이어질 경우 올해 평균 엔달러 환율은 약 98엔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전년대비 약 24% 절하된 수준이다.

이를 국내 수출 경기에 대입하면 연간 수출 감소폭은 약 6%에 이를 전망이다. 아울러 국내 GDP 대비 수출 규모가 약 52%에 이르고 수출의 성장률 민감도를 감안하면 엔화 약세와 그에 따른 수출 감소는 전체 성장률을 약 0.3%p 하향시킬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수출 산업에서는 일본과의 수출 경합도가 높은 자동차 산업의 엔저 피해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금융시장에서도 엔화 약세와 그에 따른 일본 증시의 호황은 글로벌 자금의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외국인 매도의 원인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국내에서 빠져나간 외국인 자금은 일본 증시로 들어가고 있다. 최근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 증시로 해외 자금이 약 600억 달러가 유입됐으며, 일본 증시에는 이보다 많은 900억 달러가 들어왔다. 다시 말해 아시아 전 지역으로 유입된 해외 자금보다 일본 증시로 유입된 자금이 1.5배가 더 많았다. 이에 니케이 지수는 지난해 말 대비 26% 가량 상승한 반면 국내 코스피지수는 2.3% 하락하고 있어 상대 수익률은 약 30%에 이른다.

미국 엔저 용인 100엔까지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엔화 환율의 고점이다. 통상 적정 환율을 고려할 때 양 국가의 내외 금리차이와 경상수지, 실질실효환율 등을 비교해 추산한다. 엔달러 환율 역시 이러한 미국과 일본의 경제 펀드멘털 비교를 통해 적정 환율 수준을 추산해야 하지만 사실상 경제지표를 이용한 펀드멘털 비교는 쉽지 않다. 우선 내외 금리차이의 경우 양 국가 모두 기준금리가 제로금리에 있으며, 장기채권인 10년물 국채 금리도 미국, 일본의 중앙은행에서 장기채권을 의도적으로 매입하고 있어 이 지표 역시 환율 수준을 보여주는데 한계가 있다.

이에 양 국가의 재정수지 격차를 이용해 펀드멘털 측면에서의 환율 수준을 추산해 보았다. IMF의 전망치를 이용해 지난해 기준으로 미국과 일본의 재정수지 격차는 대략 2%p 내외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를 엔달러 환율 수준과 비교할 경우 적정 환율은 약 100엔 수준인 것으로 사료된다. 이는 미국이 일본의 양적완화 및 엔화 약세 지속에 대해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이 약 100엔 수준이라는 뜻이다.

또한 엔달러 환율이 100엔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엔화 방출이 글로벌 금융시장에 흡수돼야 하는데, 100엔을 넘어서 110엔, 120엔 등으로 치솟을 경우 이 잉여 엔화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해소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과거 사례를 통해 반추해 볼 수 있다. 2007년 엔달러 환율이 125엔대까지 치솟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잉여 엔화, 즉 캐리 트레이드가 글로벌 경기 호황과 신흥국 수요 등으로 가능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글로벌 경기와 금융시장, 신흥국 수요 등을 감안하면 100엔 이상의 엔화 방출 자금이 다른 금융시장으로 유입되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블룸버그에서 이코노미스트 60여 명을 대상으로 엔달러 환율 전망치를 조사해 발표했는데 최근 컨센서스는 현 시점에서 98엔 수준, 3분기 100엔, 4분기 101엔 등 거의 움직임이 없을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까지 100엔에 근접하는 수준은 아베노믹스나 일본은행의 공격적인 양적완화 조치, 대외적으로는 선진국 등의 엔화 약세 묵인 등으로 가능했으나 100엔대를 쉽게 넘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글로벌 경기, 금융시장, 엔화 수요 등이 상당히 제한적인 수준에서 정체돼 있기 때문이다.

 

 

문정희 KB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