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펴냄
- 2007년

얼마 전 친구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친했던 다른 친구가 간암으로 투병을 하고 있다는 내용의 전화였습니다.

이런저런 일로 바쁜 일상을 제쳐두고 찾아가보려고 채비를 할 즈음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그 친구가 이미 세상을 달리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순간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변하더군요. 망연자실한 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시인의 <죽음>이라는 시가 생각났습니다.

“사람일 슬픔 중에 헤어짐이 제일이라/ 네 가고 내 가면 슬픔은 없겠다만/ 네 가고 나만 남으니 그 아니 슬플까.

愛別離苦 그 큰 고통 마음에 가득 차고/ 눈가에 떨구는 가느다란 이슬방울/ 인생사 살고 죽음이 어찌 허무치 아니하리.

사는 것은 한 조각 구름의 일어남이요/ 죽는 것은 한 조각 구름의 사라짐이요/ 이제사 가는 저 길은 長短이 무얼꼬.

하늘이 저러히도 슬프게 우는 고요/ 人生世間 가는 길엔 차고 이짊이 없을 진대/ 그대여 고이 가나니 저승에서 만나리다.”

친구의 부인과 가족에 대한 걱정만큼이나 막연히 슬프다는 생각,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착잡한 기분은 쉬이 사라지지 않더군요. 아무리 살고 죽는 것이 구름의 일어남과 사라짐이라 해도 초연하기란 어려운 법인가 봅니다.

그 친구는 서울에서 IT 관련 사업을 했었습니다. 시기가 안 좋아서 그랬는지 운이 나빠서인지 시장 진입을 못하고 그만 사업을 접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로 내려가 살았습니다.

물리적인 거리도 있고 먹고살기에도 급급했고, 그래서 서로 자주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전화를 통해 혹은 메신저를 통해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친구는 제법 낭만적인 구석이 있는 친구였습니다. 그 친구가 올해 초 보내온 글이 생각납니다. 마르틴 그레이의 《살아야 한다 나는 살아야 한다》에서 따온 글이었습니다.

“그 수용소에는 출입구가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사람들이 사라져가는 ‘하늘 가는 길’이었고 하나는 나치 친위대들이 사용하는 정식 출입구였다.

하루를 그렇게 보내고 나면 밤이 오곤 했다. 내가 의지할 건 내게 계속 말을 거는 방법뿐이었다. 나는 반드시 살아야 한다. 내가 사랑한 사람들을 위해 살아야 한다.”

그때는 단순히 멋진 글을 보내줘서 고맙다는 생각만 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자신의 처지와 심정을 담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좀 더 영민했더라면 그의 상태를 알았을 텐데,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텐데, 외롭지 않게 했을 텐데. 아쉽고, 안타깝고, 서글픕니다.

그 친구가 종종 하던 말이 생각납니다. “이보게 친구! 저녁에 한라산을 바라보는 맛이 더없이 좋아.

비라도 오는 날이면 자네와 나누던 소주 한잔이 간절하다네. 자연과 벗하며 한잔 나누어 보지 않을 텐가? 그렇게 사는 것이 행복 아니던가?”

그가 즐겨 읽던, 그리고 자주 인용하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의 한 대목을 옮기면서 오늘은 그를 깊이 추억해 봅니다.

나는 행복했고,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행복을 체험하면서 그것을 의식하기란 쉽지 않다. 행복한 순간이 과거로 지나가고, 그것을 되돌아보면서 우리는 갑자기(이따금 놀라면서) 그 순간이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깨닫는 것이다. -《그리스인 조르바》 77쪽

이현 지식·정보 디자이너, 오딕&어소시에이츠 대표 (rheeyhyu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