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기업 탐방 ③ [중계동 청구3차 아파트 청구EM환경]

아파트 주민끼리도 마을기업을 만들 수 있다. 서울 중계 청구3차 아파트 주민들은 단지 내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골치였다. 주민들이 합심해, 냄새를 없앴고 수익모델까지 개발했다.

현관문을 닫으면 걸어 잠그기 바쁘다.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이웃들과는 마주칠 일이 별로 없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겸연쩍어 피한다. 층간 소음으로 살인까지 나는 시대니, 더 말해야 뭣하나. 그야말로 삭막한 공간. 도심 속 아파트의 풍경이다.

한번 가정해 보자. 자정이 가까운 시각, 살고 있는 아파트 맞은편에서 심한 부부싸움이 났다고. 던지고 부수고 난리다.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자주 그렇다면 어떻게 할 터인지. 중계동 청구 3차 아파트에 그런 집이 있었다. 민원을 몇 번 넣어도 소용이 없더란다. 반상회를 열어, 주민들이 머리를 맞댔다. 그리고 얼마 후 부부싸움은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아파트 주민 중,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 몇 분이 그 집을 찾아가서 남편을 타이르기로 했어요. 마치 집안 큰형들처럼요.” 심상숙 부녀회 부회장은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다시 그러긴 힘들 것”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이 아파트에는 여느 곳과는 다른 점이 많다. 엘리베이터를 탔더니, 게시판이 눈에 띄었다. 주민들이 포스트잇에다 하고 싶은 말을 적어 붙여 놓은 곳이다. “반갑습니다, 엊그제 이사 온 301호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사방에는 “환영합니다”라는 메모가 가득하다. “소통이 되는 아파트예요. 문제가 생기면, 대화로 해결하죠. 단순히 아줌마들이 모여 수다 떠는 것 같지만 그런 게 아니랍니다.” 심 부회장의 말이다. 틀린 말이 아니다. 아줌마들이 수다를 떨자, 주민들이 뭉치고, 돈까지 벌기 시작했으니.

 

주민 정주율 높고, 학생 자녀 많다

아파트는 노원구 중계 1동과 중계본동의 경계인 ‘은행사거리’에 있다. 은행사거리는 학원 밀집 거리다. 때문에 교육열 높다하는 엄마들이 많이 산다. 총 780세대가 입주해 있으며 그 중 75%가 초중고등학생 자녀를 가진 세대다. 또, 70%이상이 자가 소유주다. 주민 정주율이 높다는 사실은 공동체 활동을 하기에 적합하다는 의미.

변영수 동대표는 이 같은 현황을 일찍이 파악했다. 그리고 더 좋은 아파트를 위해 주민들의 힘을 모을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구상했다. ‘학생 자녀가 많다라…’. 우선은 독서실을 만들기로 했다. 관리사무소의 빈 공간을 활용하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바로 안건을 제안했고 입주민들 중 현직 중, 고등교사, 부녀회원, 입주민 학부모 등으로 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주민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모범 독서실을 견학했다. 그 결과 주민 82% 동의와 390세대의 참여를 끌어냈고, 총 83석의 독서실이 탄생했다. “오전 9시 30분부터 새벽 2시까지 운영하고, 총무는 부녀회에서 돌아가면서 보고 있어요. 엄마들이 감독하는 셈이죠.” 살림을 끝낸 엄마들은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고, 아이들은 인근 사설 독서실의 반에 불과한 비용으로 공부할 수 있게 됐다.

독서실은 또 다른 시설을 불렀다. ‘도서관’이다. “학교에서 초, 중, 고등학생들 필독서 목록을 나눠주거든요. 그 책들을 각 가정에서 사면 낭비잖아요. 아파트 도서관에 비치해 놓으면 다 같이 공유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부녀회에서 창고로 쓰던 공간은 ‘작고 행복한 도서관’으로 변했다. 주민들에게 기증받은 책과 관리기금으로 구매한 책 등 모두 5000여권을 볼 수 있다. 교복 나눠입기도 한다. 입던 교복을 한 벌 가져오면 비누를 선물해 주고, 되팔 때는 드라이클리닝 비용 정도만 받는다. 그 밖에도 바둑, 요가, 보드게임, 도자기 공예 등 문화교실도 열리는데, 이는 모두 관리 사무실 공간에서 치러진다.

심상숙 부회장은 “엄마 입장에서 아파트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게 뭘까, 고심하다 보니 말 그대로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만 챙기게 되더라고요. 실제로 반응도 좋고요.”

 

아파트의 골칫거리, 음식물쓰레기 자원화해 수익창출

청구 3차 아파트는 2011년 6월 마을기업이 됐다. 음식물쓰레기 자원화 사업을 하면서 부터다. 동대표와 부녀회에서 출자했고 주민들은 모두 기업 구성원이다. “처음부터 마을기업을 만들자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어요. 우리 아파트를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여기에까지 이르게 된 거지요.”

‘살기 좋은 곳’이 되려면 편의시설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해가 되는 요인을 없애는 것도 중요했다. 사실 단지 내에는 오래된 ‘애물단지’가 있었다. 바로 음식물쓰레기다. 수백세대가 동시에 배출하면 그 악취는 말도 못했다. 쓰레기장 ‘님비’로 주민 간 분쟁도 잦았다. 해결이 시급했다.

우선은 냄새부터 어떻게 해야겠다 싶었다. 변영수 대표는 “음식물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EM’을 알게 됐다”고 했다. EM은 유용한 미생물(Effective Micro-organisms)이라는 뜻의 친환경 미생물이다. EM 활용법을 배우기 위해 제주도 EM환경센터를 수 십 차례 왔다 갔다 하던 변 대표는 여기에 물, 설탕, 쌀겨를 넣고 발효시키면 음식물 쓰레기를 없애주는 ‘EM 발효액’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냄새를 없애려고 발효액을 넣어놨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일정시간이 지나니 쓰레기가 아주 좋은 퇴비로 변하더라고요.” 음식물 쓰레기가 퇴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직접 목격한 건 처음이었다. 그 때 결심했다. ‘우리가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는 스스로 해결하자’고. “생각해 보세요. 구청에서 음식물쓰레기를 수거하는 데 세대마다 1500원씩을 냈어요. 쓰레기 버리는 데 돈을 내고, 수거한 쪽에서는 2차폐기물(종량제 봉투)을 또 처리해야 하니 얼마나 낭비입니까.”

780세대가 배출하는 쓰레기를 모두 퇴비로 만들려면 발효액이 여간 필요한 게 아닐 터. 그래서 아파트 지하실 기관실에 아예 자그마한 공장을 차렸다. 기관실 온도는 늘 20~30℃를 유지해 EM이 활성화되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공장을 차리는 데는 마을기업 지원금을 활용해 별도 비용은 들지 않았다. 이를 위해 상시근로자 1명도 채용했다.

전 세대의 쓰레기를 퇴비로 활용하자, 우선 쓰레기 처리를 위해 매달 지출했던 비용 117만원(1500원*780세대)이 절약됐다. 만들어진 퇴비는 자체적으로 활용하거나 구청 및 영농법인에 기증하고 있다. 수익금은 EM 발표액 판매로 얻는다. 발효액을 노원구청에 납품하고 연 평균 1500만~2000만원 정도의 수익을 낸다. 일반인에게도 판매 한다. 병당 1000원이다. 이 중 병 값과 뚜껑 값이 500원이다. 거의 원가 그대로 판매하는 셈이다. 반응이 좋아 멀리 지방에서도 주문을 한단다.

“보시다시피 월 매출액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어요. 아직까지는 수익 규모를 언급하기에는 이르죠. 마을기업이 되려면 우선은 공동체가 형성돼야 하잖아요. 일단 끈끈한 공동체는 확보했다는 차원이죠. 이제는 사업 아이템도 확실해졌고요.” 변 대표는 “현재는 투자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이렇다할 수익을 내지는 않지만 향후 사업 전망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심상숙 부회장은 아파트 주민들이 마을기업을 꾸미려면 “자투리 공간을 활용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아파트 단지에 자투리 공간은 어디에나 있잖아요. 그 곳에 텃밭을 가꾼다거나, 하는 식으로 접근이 쉬운 것부터 시작해보세요. 남는 공간에 주민들이 모여 같은 일을 하면서 공통의 문제를 논의하고, 또 서로 이해하며 공동체 의식을 확립하면 구성원들끼리의 사업구상은 시간문제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