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구원투수 중 역대 최고의 전문경영인으로 꼽히는 이는 손길승 SK텔레콤 명예회장을 들 수 있다.

고 최종현 회장의 타계 이후 1998년부터 2004년까지 SK그룹 회장에 오르면서 최태원 현 회장과 함께 SK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한 단계 발전시킨 일등공신이라는 평가 때문이다.

특히 그는 다른 전문경영인 ‘구원투수’들이 단독적으로 그룹을 경영했던 것과 달리 오너가인 최 회장과 ‘쌍두마차’ 체제 속에서 최 회장이 현재와 같이 그룹 총수로 ‘홀로서기’하기까지 후견인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사실 손 회장이 1998년 9월 최태원 SK 회장의 추대를 받아 그룹 회장에 올랐을 때만 해도 주위에서는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많았다. 오너가 있는 회사의 수장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이유에서였다.

SK家 손길승…‘최태원 회장과 쌍두마차’

그러나 우려와 달리 손 회장은 내부의 잡음을 최소화시키면서 SK를 글로벌기업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많은 재벌그룹들이 IMF 외환위기에 부딪혀 마이너스 성장을 하던 시기 손 회장을 수반으로했던 SK그룹은 오히려 전성기를 구가하면서 이 시기에 재계순위를 5위에서 3위까지 끌어올렸고 내실로만 따졌을 때는 사실상 ‘재계 2위’라는 평가도 받게 했다.

SK그룹 관계자는 “SK그룹의 성장 토대가 된 워커힐호텔, 유공(현 SK), SK증권,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그리고 SK생명에 이르기까지 SK그룹의 성장은 손 회장의 머리와 손끝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전했다.

실제 손 회장은 유공을 인수하기 전 울산에 미리 석유공장을 지어 준비했고, 1991년에도 대한텔레콤을 설립해 놓고 때를 기다리다가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는 등 선견지명식 경영을 펼쳤고, 이것이 훗날 큰 성과로 이어졌다.

SK가 손 회장의 ‘역투’에 힘입어 그룹 재건에 성공했다고 한다면 삼성그룹에는 위기에 처한 이병철-이건희 부자를 대신해 그룹 전면에 나선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과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이 대표적인 ‘구원투수’로 꼽힌다.

홍진기 전 회장은 지난 1966년 한비사건 당시 이병철 창업주가 명예회장으로 물러나면서 경영일선을 떠났을 때 ‘삼성 마운드’를 안정화시켰던 인물이다.

일명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불리는 한비사건은 삼성이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요소비료 공장인 한국비료를 건설했던 1966년 발생했는데 한국비료(이하 한비) 직원이 사카린 원료를 당국 허가 없이 시중에 팔다 적발된 사건.

사카린은 값이 비싼 설탕 대신 식료품의 단맛을 내는 데 쓰이던 원료였지만 발암물질 논란이 일면서 사용이 금지됐던 터라 당시로서 삼성이 사카린을 밀수했다는 것은 엄청난 사회적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삼성家 홍진기·이수빈…위기타파 ‘선봉’

이에 이병철 회장은 준공된 지 6개월 된 한국비료의 주식 51%와 운영권을 정부에 헌납하면서 명예회장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앉았다.

50대 중반의 이 회장은 불가피하게 의욕적인 경영 행보를 접어야 했고 이때 홍 전 회장은 그룹을 대표하며 그의 공백을 메웠다. 홍 전 회장은 이병철 창업주와는 사돈(홍 회장의 큰 딸이 이건희 전 회장의 부인 홍라희 씨) 사이다.

홍 회장이 이병철 창업주의 ‘백업’역할을 했다면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은 특검의 후폭풍 속에 이건희 전 회장을 구원해 마운드에 오른 구원투수다.

지난해 4월부터 삼성그룹의 공식 대표 자리에 오른 이 회장은 삼성그룹 공채 출신으로 금호의 박찬법 회장처럼 삼성에서만 40여년간을 보낸 ‘정통 삼성맨’이다.

이 전 회장의 공백을 메워 대외적인 업무를 총괄하면서 삼성그룹이 글로벌 경제위기를 순탄하게 넘기는 데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전 회장의 사울사대부고 4년 선배이기도 한 그가 ‘구원투수’ 역할을 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6년 1월, 이 전 회장이 폐암수술 후 정밀진단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했을 당시 이 회장을 대신해 행사를 주관하는 등 그룹을 대표하는 역할을 종종 했고, 지난해 초 특별검사 수사 영향으로 그룹 시무식이 열리지 않았을 때 역시 사내 방송을 통해 이 전 회장을 대신해 신년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삼성인상 시상식에서 시상자로 나서기도 했다.

김진욱 기자 action@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