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10월31일. 이날 코스피는 역사상 최고점(2064.85포인트)을 기록한다. 같은 해 봄·여름 미국에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업체가 하나둘씩 무너지며 경제위기 경고등을 켜고 있었지만 주가 상승에 흥분한 국내 투자자들은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고 펀드투자에 달려들고 있었다.

펀드투자를 안 하면 말 그대로 왕따가 되었고 모 증권사 객장에는 번호표를 받아서 펀드에 가입해야 하는 상황마저 벌어졌다. 지수가 3000선까지 간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러나 파티는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해 한 시대를 풍미하던 미국 월가 투자은행들이 줄줄이 파산하며 금융패닉을 맞게 된 것.

코스피는 추락을 거듭했고 급기야 2008년 10월 1000선마저 붕괴된다. 이런 여파로 국내 투자자들은 1년이 채 못 되어서 번호표를 받고 가입한 펀드가 반토막으로 잘려나가는 시련을 맞게 된다.

‘위기예감’…2~3년 전 부동산도 팔아 현금화
그렇다면 강남부자도 펀드투자로 손해를 봤을까? 물론 그렇다. 강남부자들은 굉장히 감각적이고 발이 빠르다.

지난 2003년 세계 경제가 상승곡선을 그리는 것을 확인하면서부터 그들은 해외 증시에 눈을 돌렸다.

그러나 글로벌 경제 호황 과정에서 갑작스레 터진 미증유의 경제위기에서 강남부자들도 자유롭긴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다른 얘기가 가능하다. 수백억 원대 정도의 어설픈(?) 부자가 아니라 1000억원대 이상 이른바, 진짜 강남부자들은 다른 행보를 보였다는 것.

일단 돈이 있는 곳에 정보가 모인다는 극히 상식적인 공식을 떠올려 보라. 진짜 강남부자들은 많은 고급정보를 다수 갖고있다.

그들이 찾지 않아도 자연스레 정보가 그쪽으로 흘러든다. 이때 강남부자들은 뛰어난 육감을 발휘한다.

실제로 어설픈 강남 부자들이 펀드에 뛰어들던 2~3년 전부터 이들은 현금보유량을 크게 늘렸다고 한다. 부동산도 팔아치워 현금을 움켜쥔 부자들도 있었다고.

2007년 美 상공부 친구 따라 펀드 죄다 팔기도
강남부자 소릴 듣는 여익동(가명·42) 씨가 그간 갖고있던 펀드를 모두 해약해 버린 것은 지난 2007년 10월.

여 씨는 미국 상공부에 근무하는 초등학교 친구를 만나 “서브프라임 사태가 심상치 않다.

한국 시장도 위험해질 테니 증시에 투자하고 있는 돈이 있으면 얼른 안전자산으로 돌려놔라”라는 조언을 듣게 된 것도 바로 그 즈음의 일.

친구는 이자 높게 주는 저축은행에 가서 돈을 묻어두는 게 지금은 득이 될 것이라는 투자지침까지 덧댄다.

뭔가 낌새를 알아챈 여 씨는 월스트리트 금융권에 근무하는 또 다른 친구 등 여러 루트를 통해 사실관계 확인에 들어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실행이 발 빠른 강남부자답게 빠르게 포트폴리오 리모델링에 착수한다.

100억원 정도 보유하고 있던 펀드를 모두 믿을 만하고 이자율이 괜찮은 저축은행에 1년만기 예금으로 넣어뒀다.

그리고 나서 1년간 그의 판단이 정확했다는 것이 여실히 증명된 것. 지난해 10월 만기를 연장해 오는 10월 두번째 만기를 앞두고 있는 그는 이제 슬슬 펀드 매수 타이밍을 잡을 자세다.

메릴린치 등 해외 현지은행 담당 PB 정보 접수
강남부자들은 말 그대로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 그래서 실제 국내 첫 사망자 발생으로 다시 한번 위기단계를 높이고 있는 신종인플루엔자(AI) 국내 확산 가능성을 점치고 펀드를 해지한 거액 자산가가 있을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특히 강남 비즈니스맨들은 잦은 해외 출장을 통해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투자 판단을 내리는 사례가 많다.

이들에게 국내은행 담당 PB는 투자를 결정하기 전 가부만 판단하는 의례절차에 불과하다.

아버지 알짜기업을 물려받을 예정인 벤처기업 CEO 한기준(가명·38) 씨도 그런 케이스 중 하나. 상당한 재력가로 해외 예금도 상당량 보유하고 있는 그는 지난 2월 미국 출장 중 월가에서 미국 기업 임원들이 자사주를 매입하고 있다는 정보를 얻는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 등 미국 현지은행 담당 PB들이 귀띔해 줬단다. 그간 준비해 둔 실탄을 국내외 주식에 쏟아부었다.

실제로 주가가 급등해 쏠쏠한 재미를 본 한 씨는 최근 다시 자사주를 팔아치운다는 얘기를 듣고는 요즘 차익실현에 나서고 있다.

내부정보 꿰찬 수백억 회계사…손대는 종목마다 대박
그러면 국내 증시 투자정보는 어디서 얻을까? 강남부자들의 직업적 특성을 보면 뭔가 단초를 찾아낼 수 있다. 일단 이들 가운데선 전문직종이 많다.

그렇다고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업만으로 진짜 강남부자라고 할 수는 없다. 아버지가 기업 CEO이거나 거액 자산가들로 물려받았거나 받을 재산이 최소 수백억 원대는 되어야 어느정도 현금을 가지고 돈을 굴릴 수 있기 때문.

이 가운데서도 회계사들의 정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들은 펀드도 잘 만지지 않는다. 펀드매니저에 맡겨둬 봤자 여기저기 분산투자한다는 핑계로 손해만 보기 때문.

정확하고 확실한 정보로 직접 투자만 하는 게 특징이다. 재무제표는 물론, 회사에 직접 들어가보니 CEO부터 재무담당 임원까지 관계가 긴밀할 수밖에 없는 노릇. 이러니 듣는 정보의 농도부터 틀려진다.

A증권사 강남구 한 지점 오유진 PB(가명·38)가 소개한 회계사들 투자 사례를 들어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오 씨에 따르면 지난해 11월경 한 회계사 고객이 국내 유명 그룹 주식을 싸게 사달라고 주문을 넣어왔다.

금액으로는 10억원 정도. 당시 분할매수로 작년 11~12월에 걸쳐서 주식을 사들였고 지난 4~5월 매도까지 400%에 육박하는 수익률을 올렸다. 대형주만 건드리지 않는다.

회사 내용을 파악하고 난 뒤 정보를 들으면 바로 투자에 나선다. 지난해 말에도 한 코스닥 업체 주식을 사서 6개월 만에 3배로 돈을 불렸다. 이렇게 손대는 종목마다 대박을 치니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것.

지금은 10억원이 넘는 돈을 게임관련 주식에 묻어두고 있다. 오 PB는 “투자하고 나면 회사가 알려지고 대박을 치더라. (고객을) 따라서 주식을 사지 않은 게 후회될 뿐”이라고 말했다.

김성배 기자 sbkim@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