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종탑, 담이 없어 외부로 열려 있는 성당. 수원에 위치한 지동성당은 빗장을 걸어 잠가야만 안심이 되는 세상과는 다른 시계로 움직인다. 최석렬 지동성당 신부는 “종교적 냄새 없이 자연스럽게 다가가는 것이 최근 종교의 트렌드”라면서 “신앙인이 믿는 가치를 직접 실천함으로써 행복이 온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신앙의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러한 진리를 주변 지역민들도 느낄 수 있도록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하면서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처음 부임했을 때 지동성당은 40여년된 매우 낡은 건물이었습니다. 하나님 성전이 너무 초라한 것 같아 리모델링을 계획했는데 가장 중점을 뒀던 부분이 성당을 ‘오아시스’로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 무작정 외치기보다는 성당에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꾸미고 싶었죠. 그리고 이것이 종교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0여년 전 신자들이 양말을 팔아 벽돌 한 장 한 장 쌓아올렸던 지동성당이 지역 안의 오아시스로 탈바꿈했다. 최석렬 신부는 회색도시 사람들에게 잃어버렸던 자연을 선물하고 신자들뿐 아니라 비신자들도 이곳을 통해 지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신앙과 접할 수 있도록 했다.

그는 우리가 믿고 있는 신앙을 어떤 형태로든지 공유해 보편적으로 알게 하고 느끼게 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석렬 신부가 지동성당에 부임한 지 5년, 마치 할렘가를 연상시키듯 깨진 소주병과 담배꽁초가 나뒹굴던 ‘지동’은 이제 나무 가득한 녹색환경으로 변신했다.

최석렬 신부는 지역주민들과 신자들에게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4년여의 준비 끝에 작년 12월, 지동성당 리모델링을 끝마쳤다.

종교는 세상을 향해 무조건 외치기보다 스스로 찾아 아름다움을 느끼도록 해야

지동이 낙후된 지역이기에 형편이 어려운 신자들에게 빚을 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4년여 동안 자금을 모은 후 시작한 공사이다.

40여년 전 신도들이 양말을 팔아 어렵게 지은 성당을 부수면 안 된다며 리모델링에 그쳤다. 옛 신자들의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도 여러 개로 쪼개 어려운 교회와 주변 성빈센트병원에 나누어주기도 했다.

공사 당시 신자들 중에는 현재의 주차장 부지에 주차타워를 세워 수익사업으로 활용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최 신부는 교회는 돈 버는 곳이 아니라며 현재의 모습으로 밀어붙였다.

반대하던 이들 중에는 얼마나 잘하나 보자라는 시각도 있었다고. 하지만 성당 사람들만 보면 90도로 인사하는 주민들과 주변과 멋들어지게 어우러진 녹색환경을 보면서 우려의 목소리는 사라졌다.

담배 피우던 학생들 초 들고 와 기도
풀 한 포기 없던 동네에 나무들이 들어서자 새들이 날아들기 시작했고, 학생들은 성당에 와서 담배를 피우는 대신에 초를 켜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으며 주민들은 나무가 둘러져 있는 주차장을 공원 삼아 운동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어려운 이웃들을 살피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움직이는 최 신부 덕분에 수녀들도 덩달아 그들을 챙기기에 바빠 한시도 성당에 앉아 있지 못할 정도다.

앞으로는 신자가 아니어도 거동이 불편한 노인, 자식이 있어도 형편이 안 돼 돌볼 수 없는 노인, 독거노인들이 와서 쉴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만들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돌볼 수 있도록 ‘데이케어’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할 계획이다.

“종교가 더 이상 폐쇄적이어서는 안 되며 사회의 숙제도 교회가 함께 나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성당의 지역사회에서의 역할은 사회의 요소와 당면하게 만나는 꼭지점이어야 하고요. 이에 참다운 경영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진정한 종교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지동성당에는 흔히 성당이라면 떠올려봄 직한 십자가와 종탑이 없다. 또한 담이 없고 좌우로 뚫려 있어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면 성당을 지나야 한다.

이곳에서는 종교라는 편견에서 벗어나 푸르름을 통해 육신의 편안함을 먼저 느끼라는 것이다.

최 신부는 외부 환경처럼 성당도 푸르름을 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건물을 통해, 환경을 통해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 신부가 부임한 뒤 지난 5년 동안 4000여명이던 신자가 5000여명으로 늘어 1000여명의 신자들이 그를 통해 세례를 받았다.

주변 주민들이 성당에 자연스럽게 불편함 없이 접근할 수 있어야 그들이 믿는 가치를 무리 없이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의 생각이 적중했던 것이다.

십자가, 종탑 없애고 세상을 품으니 성당도 부흥되고 지역사회도 변해

“성전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십자가를 직접 보여주면서 존재감을 느끼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먼저 존재감을 느끼게 하고 이것이 십자가구나 하고 떠올리게끔 하는 방법도 있죠.
주변에는 종교에 대한 편견이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도 감싸안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동성당에 종탑과 십자가가 없는 것은 이곳은 종교적 냄새가 별로 없구나, 다른 메시지를 말하는구나, 편안하구나란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것이 최근 종교의 트렌드이기도 하고요.”

“처음 사제 일을 선택한 것은 단지 믿음이 좋았기 때문은 아닙니다. 제가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춘기 시절 삶의 의미를 고민하던 시기에 가장 근사하게 보였던 것이 사제직이었고 제 삶을 완성할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어린 시절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힘들었다는 최 신부는 자라면서 고통을 당하는 이들을 위한 삶을 살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됐는데 그것이 자연스럽게 사제직과 연결됐다고 말했다. 그 후 사제 일을 하다 보니 신앙이 더 구체적으로 와닿고 깊어졌다고.

최 신부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믿는 신앙과 세상살이가 구분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믿는 사람들이 자기가 사는 곳에서 어떤 형태로든 이타적인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가 정말 행복해질 수 있는지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한 것.

이에 스스로 자립할 수 없는 이들에 대한 배려를 조직적으로 하고 있다. 어려운 이들의 생활을 돕는 것은 국가가 해야 하지만 국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는 종교가 케어하자는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반대도 많았다. 하지만 당신이 믿는 가치를 행함으로써 당신이 행복해지면 당신이 돕는 그 사람도 행복해지지 않겠느냐, 당신이 사는 곳에서 믿는 바를 실천하지 못하면 그것은 신앙의 의미가 아니지 않겠느냐고 설득도 했고 강제도 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삶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의 존재감을 느끼게 하고 이러한 가치를 그리스도인들이 삶을 통해 증명해 다른 이들을 초대하는 것이 신앙이 아닐까란 생각을 한 거죠. 그리고 이 부분을 함께 소통하고 싶은 겁니다.”

그는 또 “신앙을 통한 치유는 보디케어와 소울케어가 있다”면서 “성당이 편안하고 부담스럽지 않게 쉴 수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보디케어이고, 이타적으로 행동할 때 행복이 온다는 의미를 알아가는 것이 소울케어의 시작”이라고 덧붙였다.

흔히 물질과 건강에 부족함이 없고 근심이 없는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해 조금이라도 만족하지 못하면 불행하다고 느낀다.

즉,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자신에게 이로움이 있을 때 행복이 온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자살이나 우울증도 이러한 조화가 깨져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가지면 가질수록 갈증을 느끼기 때문이다.

“행복은 이타적 행동에서 오는 것”
최 신부는 “행복은 이타적 행동에서 오며 이것을 외치는 것이 종교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마더 테레사 신부, 성철 스님 등 많은 이들이 이타적 행동이 얼마나 큰 행복을 가져다주는지를 보여줬다”면서 “이것이 신앙이 가르쳐주는 행복이고 지향점이며 그렇게 해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신앙이 보편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믿는 진리가 진리일 수 있기 위해서는 믿는 사람들이 그 진리를 몸소 실천함으로써 아름다움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올바른 삶이냐에 대해 방황하고 헤맬 때 신앙이 지표와 오아시스의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이에 이것이 신앙이라는 이름이 아닌 보편적인 가치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세상 사람들에게 맞는 언어로 이야기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삶에 녹아들 수 있을 때 참다운 가치를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오희나 기자 hnoh@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