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최신원 회장은 SK(주) 보유주식 중 1000주를 장내매도해 지분율을 0.01%로 낮췄고 같은 날 SK가스 지분도 0.01%를 팔아 ‘지분율 0’ 상태로 만들었다. 이보다 앞선 지난달 30일 역시 SK가스 보유주식 중 200주를, SK에너지는 1000주를 각각 장내매도했다. 반면 최 회장은 SKC와 SK증권의 지분에 대해서는 속속 매입하고 나섰다.

SKC의 경우 지난 7월10일 5000주를 장내매수한 데 이어 6일에는 5000주, 7일 1만주, 이보다 앞선 6월26일에도 5000주를 사들이는 등 올해에만 9차례에 걸쳐 SKC 주식을 매입한 것. SK증권 역시 그의 두 자녀와 형수를 통해 지분확대를 꾀하고 있는 상황이다.

계열분리 위한 새 결집?…“책임경영 일환일 뿐”

이 같은 정황으로 최신원 회장의 최근 행보를 바라보는 재계의 시선은 ‘계열분리설’에 모아지고 있다.

SK그룹 창업주이자 선친인 고 최종건 회장의 차남인 최신원 회장은 그동안 사촌동생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서포터’를 자처하며 자신이 직접 계열사를 경영하면서도 SK그룹의 통합을 위해 개별 목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계열사 간 ‘지분 정리’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동생인 최창원 부회장도 알짜 계열사인 SK건설 매각 등을 통해 최대 8000억원대의 자금을 확보한 만큼 최 회장의 행보가 ‘한 지붕 두 SK’의 진원지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해석이다.

이에 따라 SK그룹과 별개로 최신원 회장 계열인 SKC-SK텔레시스-SK케미칼-SK증권으로 이어지는 사촌 간 계열분리 시나리오가 대두되고 있다. 현재 최신원 회장은 SKC와 SK텔레시스, 최창원 부회장은 SK케미칼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상황.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최신원 회장이 SK증권 개인지분을 늘린다면 신원-창원 형제는 화학과 증권 부문을, 태원-재원 형제는 에너지와 통신 분야 계열사를 경영하는 것으로 교통정리될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고 진단했다.

재계 한 관계자도 “SK그룹이 사촌 간 계열사 정리를 해놓지 않으면 나중에 문제가 일어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최 회장이 지금 단계에서 계열분리를 염두에 둔 조치였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하지만 정작 SKC 측은 ‘계열분리=확대해석’이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SKC 주식은 예전부터 회장님이 매입하겠다는 의사를 줄곧 밝혀온 것이고, SK증권 주식 매입 건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최근의 주식매입은 대주주로서의 책임경영 차원에 따른 활동”이라고 설명했다.

최 회장의 주식변동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계열분리’까지 생각하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이다. 이 관계자는 또 “계열분리를 논할 만큼 각 사의 지분구도에 영향을 미치지도, 의미를 갖게 하지도 않는 낮은 지분율에 불과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SK그룹 전 임원 역시 “(계열분리가) 필요하면 하겠지만 SK는 일찍부터 책임경영의 문화가 유지되어 온 만큼 형제간에 쉽게 갈라서는 모습은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현실적으로도 최태원 그룹 회장의 동의 없이 최신원 회장 측이 단독으로 계열분리를 감행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SKC만 놓고 봐도 SK(주)가 42.5%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최태원 회장의 지원이나 동의가 없다면 경영권 분리는 사실상 불가능해서다.

14일 현재 최신원 회장의 SK그룹 주요 계열사 보유지분은 SKC 3.3%, SK(주) 0.01%, SK증권 0.09%, SK에너지 4500주(0%), SK텔레콤 500주(0%), SK네트웍스 0.01%, SK케미칼 0.03% 등이다.

금호 ‘형제분쟁’과 오버랩?…“확대해석 금물”

한편 이번 ‘계열분리설’이 주목받는 데에는 최근 ‘형제분쟁’으로 내홍을 겪고 있는 금호아시아나그룹과 ‘오버랩’ 되고 있는 점도 크다. 동일 지분을 유지해 오던 박삼구-박찬구 형제일가가 박찬구 부자의 지분 매입이 조금씩 이뤄진 후 결국 ‘형제의 난’으로 치달았다는 점에서 같은 형제경영을 추구해 온 SK그룹 역시 최근 최신원 회장의 행보가 ‘복사판’으로 볼 수 있다는 시각이다.

재계 관계자는 “금호그룹의 형제분쟁이 발발한 뒤로 SK그룹의 사촌 간 지분구도도 분명한 관심거리다. 특히 최신원 회장의 최근 행보가 박찬구 회장과 비슷한 면이 있어 보여서 더 그렇다”고 평가했다.

SK그룹은 두산그룹, 금호그룹과 마찬가지로 ‘형제경영’의 대표적인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창업주인 고 최종건 회장이 타계한 이후 바로 밑 동생인 고 최종현 회장에게 경영권이 넘어간 게 시초다.

이후 손길승 회장의 전문경영인 체제를 거쳐 고 최종현 회장의 아들인 최태원 회장이 이끌고 있지만 올 초 최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 부회장이 형의 측근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제2의 형제경영’이 시작됐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이에 대해 SK그룹 관계자는 “금호그룹과 SK그룹은 상황이 다르다. 금호의 경우 대우건설 인수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경영권 분쟁이 시작된 반면 SK는 그룹 분위기상 책임경영이 계열사별로 잘 형성돼 있어 형제간 분쟁과는 거리가 멀다”고 일축했다.

어찌됐든 최신원 회장의 이번 계열사 지분 매입 중심에는 “SK증권 지분 15% 확대”라는 목표가 크게 자리하고 있다. 실제 지난 2월 말부터 장내에서 최 회장은 SK증권 5만주를 매입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수차례에 걸쳐 이 회사 주식을 사들였다.

특히 최근에는 자녀와 형수 등 자신의 친인척 3명을 일시에 SK증권 특별관계자에 추가하기도 하는 등 다른 계열사에 비해 유독 SK증권 지분 매입에 대해 강한 애착을 보이고 있다.

최유진(딸) 1만주, 최성환(아들) 1만3800주, 김채헌(형수·고 최윤원 SK케미칼 회장 부인) 5000주를 사들인 것이다. 비록 모두 합쳐봐야 0.02%에 불과한 소량 지분이지만 그래도 최태원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 부회장을 제외한 SK증권의 특별관계인 5인이 모두 최신원 회장 측근으로 구성됐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왜 하필 SK증권인가…자통법·출총제·금산법 염두

그렇다면 왜 최 회장은 유독 SK증권 지분율 높이기에 주력하고 있는 걸까.
혹시라도 모를 최태원 회장 측과의 ‘지분경쟁’ 시 중심축을 이룬다는 점도 있겠지만 증권가에서는 최신원 회장이 자본시장통합법 시행과 출자총액제한 폐지, 그리고 금산분리법 완화 등의 수혜주로 SK증권이 부각되고 있는 점을 염두에 뒀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재 SK증권은 그룹 내에서 유일한 금융계열사로 일반 지주사의 금융자회사 소유가 허용될 경우, SK증권이 가장 큰 수혜를 입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최태원 회장 역시 올 들어 SK증권에 대해 큰 관심을 표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최 회장은 지난 3월 근래에는 보기 드물게 SK증권을 방문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최 회장이 SK증권 사무실을 찾아 관계자들을 직접 격려했다는 것도 이례적이거니와, SK그룹 차원에서 금융계열사인 SK증권을 전략으로 키우는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은 이유에서다. 당시 SK증권은 최태원 회장이 방문한다는 소식에 다른 증권주들이 약세를 보였던 가운데서도 상승세를 보여 증권가의 ‘뉴스’를 장식했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SK그룹 내에서 증권사의 포지션이 좀 모호한 감이 있었는데 주변 여건을 감안할 때 그룹 회장의 증권사 방문을 단순하게만 해석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최신원 회장이 SK증권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해석했다.

이 같은 관점에서라면 향후 SK증권을 둘러싸고 최태원 회장과 최신원 회장 간 ‘줄다리기’가 이어질 가능성도 적지는 않다.

일각에선 최신원 회장이 SKC보다 SK증권 지분 매입에 의욕을 갖고 있는 배경으로, 창업의지 계승 측면에서 SKC가 적통성을 갖고 있어 SK증권을 SKC 인수를 위한 ‘지렛대’로 활용한다는 분석도 있다. SKC의 주당 가격이 2만원대지만 SK증권은 3000원대에 불과해 상대적으로 적은 돈으로 지분 확보가 가능해 SK증권 주식을 매입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신원 회장의 한 측근은 “최 회장의 SK증권 매입의지는 저평가된 주식을 사들여 그룹 차원의 책임경영을 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고 밝혔다.

‘15% 지분 매입’ 현실성은…동생 ‘실탄’ 지원하면 가능

일단 최신원 회장이 “SKC와 SK증권 지분율을 15%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힌 만큼 관심거리는 ‘지분 15%’의 현실가능성 여부로 넘어갔다. 그만한 자금을 최 회장이 보유하고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분 15%’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최근 시세 기준으로 SKC는 1000억원가량, SK증권도 대략 1400억원 이상은 필요한데, 이는 최 회장이 보유한 다른 SK그룹 계열사 지분을 팔더라도 턱 없이 부족한 수준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동생인 최창원 부회장의 ‘협조’만 이뤄진다면 충분히 목표 달성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SK건설 매각대금 등을 통해 마련한 8000억원가량의 종잣돈을 최창원 부회장이 확보하고 있는데 따른 분석이다.

최 부회장은 SK건설을 SK(주)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4000억원을, 그리고 SK케미칼의 수원공장 부지 매각대금 4000억원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진욱 기자 action@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