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하늘이 눈을 뜨기 시작하는 초저녁
나는 자식놈을 데불고 고향의 들길을 걷고 있었다.

아빠 아빠 우리는 고추로 쉬하는데 여자들은 엉덩이로 하지?

이제 갓 네 살 먹은 아이가 하는 말을 어이없이 듣고 나서
나는 야릇한 예감이 들어 주위를 한번 쓰윽 훑어보았다. 저만큼 고추밭에서
아낙 셋이 하얗게 엉덩이를 까놓고 천연덕스럽게 뒤를 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이 들어서 그랬는지
산마루에 걸린 초승달이 입에 귀밑까지 째지도록 웃고 있었다.

-김남주 <추석무렵>

놀이동산에 가서 청룡열차를 탔다고 하자. 처음에는 ‘과연 저 열차를 타도 괜찮을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한다. 그러다가 실제 타보니 중간중간 비명을 지를 만큼 무섭고 두려웠지만 청룡열차에서 내리는 순간, 무서움과 두려움이 사라지면서 ‘재미있다’는 느낌이 다가온다.

이때의 재미가 청룡열차 타는 즐거움을 발견한 것이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아이들도 ‘나도 청룡열차를 타고 싶다’는 ‘호기심’이 발동해 마침내 청룡열차를 타게 된다.

자신은 무서워서 못 탈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다른 아이가 타는 모습에서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결과는 역시 즐거움의 발견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무엇을 알게 되는 발견은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깨달음이라는 단어에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깨달음이라고 선승들이 도를 얻는 터득만 말하는 게 아니다. 생활 속에서 자신이 알지 못하던 것을 알았을 때 느끼는 감정이 깨달음이다.

어떤 일에 대해 이해하고 그 원리를 터득한 후 나타나는 심리작용이 깨달음의 정의다.

그러니 학생들이 수학문제를 풀다가 해결방법을 찾았을 때도 깨달음이고, 이기적 삶을 살다 어느 날 갑자기 옆의 사람이 보이면서 남을 위해 봉사를 하는 것도 깨달음의 결과다.

UCC(User Created Contents)는 사람들의 깨달음이 영역을 확장한 대표적인 경우에 속한다. 원래 영상은 전문가가 만든다. 촬영자와 편집자가 그들이다. 때문에 방송국에도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이 별도로 있다.

영상에 필요한 주변기기가 발달하고 대중화하자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간단하게 영상을 만들게 됐다.

이 과정에는 ‘나도 과연 할 수 있을까’, ‘이런 기기로 영상을 만들 수도 있을까’, ‘이런 기기도 소용될까’ 하는 ‘호기심’, 그리고 ‘나도 영상을 만들고 싶다’는 ‘호기심’이 합쳐지면서 주변기기들의 활용을 시작했고, 편집해 컴퓨터에 올렸다.

이것이 ‘나도 할 수 있다’는 발견과 깨달음을 주면서 재미를 얻게 됐다.

이처럼 UCC 역시 호기심에서 시작해 깨달음을 얻게 해준 사례가 된다. 이런 사례에서 보듯 호기심은 없던 것을 세상에 존재하게 만들어주는 창조의 촉매제 역할을 한다.

김남주 시인의 <추석무렵>이라는 시를 보라. 아이는 여자들의 오줌 누는 방법을 궁금해한다. 그러자 시인이 호기심이 발동해 주변을 둘러본다. 아이의 궁금증이 시인의 호기심을 부른 것이다. 그래서 주변을 돌아보니 영락없이 ‘아낙 셋이 엉덩이를 까고’ 쉬를 하고 있었다. 발견이다.

그 모습을 보고 초승달까지 입이 귀밑까지 찢어지며 즐거워한다. 초승달이 웃어? 그것도 모자라 입이 귀밑까지 찢어져? 깨달음이다. 물론 시인의 마음이야 초승달보다 더하지 않았을까. 얼마나 즐겁고 재미있었을까.

1994년 2월에 세상을 떠난 김남주는 서슬이 시퍼렇던 군부 독재에 맞서 ‘조국은 하나다’라고 부르짖었던 시사(詩史)에 남는 민족 시인이었다.

부조리한 사회에 저항하는 수많은 시가 그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시인이기에 이처럼 서정성 있고 깨달음의 재미를 얻는 시를 쓰기도 했다.

황인원 시인·문학경영연구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