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개발사업을 코레일 주도의 공공개발로 재추진하려던 방안이 결국 무산됐다. 사업시행자 드림허브는 5일 오전 이사회를 열고 1대 주주 코레일이 제안한 공공개발 형태의 사업정상화 방안을 논의했지만, 3분의 2 동의를 얻지 못해 부결됐다. 오후에 열리기로 했던 주주총회는 열리지도 못한 채 정상화 계획은 무산됐다.

‘단군 이래 최대 개발 사업’으로 불렸던 용산개발사업은 지난달 13일 자산담보부 기업어음(ABCP) 이자 52억원을 갚지 못해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졌다. 이에 코레일은 15일 2600억원 긴급 자원 지원과 출자사 기득권 포기 등을 담은 사업 정상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사업이 본궤도에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일기도 했지만, 민간 출자사들은 코레일 제안에 독소조항이 많다면 줄곧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이사회 의견수렴 결과 사업 정상화 안건은 주요 민간출자사들의 반대로 부결됐다. 10명의 이사 가운데 3분의 2가 찬성해야 가결되는 이번 정상화 안건을 두고 삼성그룹(2명), 롯데관광(2명), 푸르덴셜(1명) 측은 반대표를 던졌고, 코레일(3명), KB자산운용(1명), 미래에셋(1명) 측은 찬성했다. 당초 특별 합의서에 찬성 의사를 밝힌 출자사의 총 지분이 55.5%에 불과했기 때문에 부결은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기도 했다.

코레일은 정상화 방안이 무산된 데다 정부도 불간섭 입장을 표명한 상황에서 더 이상의 대안을 포기하고 곧바로 청산 절차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청산 절차에 따르면 코레일은 오는 8일 이사회를 통해 사업협약해제를 결의한 뒤 이튿날인 9일 토지대금을 반환하고, 30일에는 2400억원의 이행보증금을 드림허브 측에 청구할 예정이다.

향후 코레일은 철도기지창 땅을 돌려받아 해당 부지만 자체 개발한다는 입장이다. 일부 민간 출자사들은 민간 주도의 정상화 방안을 마련해 코레일에 건의한다는 방침이지만, 이미 청산 방침을 발표한 코레일 측이 이를 얼마나 긍정적으로 받아들일지 미지수다.

수많은 사람의 꿈이 담긴 사업이었던 만큼 향후 개발 무산의 책임을 놓고 법정 공방이 예상되고 있다. 6년간 재산권이 묶였던 주민들이 드림허브나 서울시 등을 상대로 집단 소송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그나마 따질 것이 남은 사람은 다행이다. 4년전 2009년 1월 20일에 용산재개발 보상대책에 반발하던 철거민 6명과 경찰관 1명은 이 재개발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용산역세권개발 계획이 입안되던 시절 코레일 사장으로 재직하던 허준영 전 경찰청장은 현재 4·24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서울 노원병 후보로 나서 자신을 ‘지역 일꾼’이라며 홍보활동에 여념이 없다.

한편 용산개발 디폴트 사태 책임을 지고 지난달 25일 사임을 표명했던 박해춘 전 용산역세권개발 회장의 사임이 5일 확인됐다. 지난 2일 사임서가 제출됐으며 5일 오전에는 사임철회 요청서가 다시 접수됐지만, 코레일 측은 “상법상 사임서 제출과 동시에 대표이사직은 사직 됐다”며 “대표이사 선임절차를 다시 밟아야 한다”고 말했다. 2010년 10월 용산역세권개발 사업의 해결사로 스카우트된 지 2년 5개월. 한 해 12억원의 연봉을 챙기면서 이번 용산역세권개발사업의 ‘유일한 수혜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던 박회장의 퇴장 아닌 퇴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