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에도
‘패밀리가 떴다’
기업들, 가족마케팅으로 닫힌 지갑 열어

“패밀리가 떴다!”
TV 오락 프로그램 얘기가 아니다. 불황 시대 우리 기업들이 선택하고 있는 ‘가족마케팅’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전통적으로 가족은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소홀할 수 없는 존재’로 여겨진다.
때문에 제 아무리 경기침체 상황의 소비자들이라도 가족을 위한 소비에는 지갑을 열 수밖에 없는 게 현실. 이런 가족의 의미 때문인지 최근 들어 ‘가족’을 마케팅의 화두로 내세우며 위기에서 기회로 반전을 시도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물론 이들 기업의 제품들도 ‘상한가’ 국면이다.

‘가족애’ 담은 제품 불티…Wii·가족포인트 등 인기
‘엄마가 먼저 신체를 인식하는 게임보드 위에 올라선다. 그리고 나서 TV 모니터를 보고 좌우로 몸을 비틀며 가상의 스키를 탄다. 다음 차례는 딸이다. TV 화면상 골키퍼인 그녀는 상대선수가 날리는 강슛을 머리와 손을 이용해 막아낸다. 그리고 막내딸은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게임업체 닌텐도의 신제품 ‘Wii Fit’이 표현한 TV CF의 한 장면이다. ‘밸런스 보드’라는 별도 장치에 올라타서 놀이를 하듯 요가는 물론 유산소 운동, 근력 운동, 밸런스 게임 등 40가지 이상의 트레이닝으로 신체를 단련할 수 있다는 게 이 게임의 특성이다.
그런데 최근 이 제품은 광고가 전파를 탄 지 얼마 되지 않아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히트상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광고의 콘셉트인 ‘가족’이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먹힌’ 덕분이다.
이처럼 최근 기업시장에는 ‘가족애’를 담거나 가족을 대상으로 한 제품들이 봇물처럼 나오고 있다. 범위는 특정 업종에 편중되지 않고 광범위할 정도다.
“집에 엄마가 없으면 집이 텅 빈 것 같아”라는 CF로 주목받고 있는 삼성물산은 자사의 아파트 브랜드인 래미안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집은 엄마다’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며 가족마케팅을 전면에 내세워 성공한 케이스다.
과거 아파트 브랜드 시대가 열린 이래 빅스타급 모델을 내세워 상류사회의 생활여건을 집중 부각시켰던 기존 아파트 광고에서 180도 달라진 콘셉트인 셈이다.
대한항공의 저가항공인 진에어도 가족마케팅을 ‘포인트 서비스’로 승화시켰다. 국내 항공업계에서 처음으로 ‘가족 운임’제도를 도입한 것.
‘가족 운임’은 직계가족 3인 이상이 진에어의 동일·동편을 예매 시 일반 운임(할인 운임 제외)에서 10%를 할인해 주는 것으로 4인 가족의 경우 성수기 왕복 기준으로 6만1600원까지 할인받을 수 있도록 한 다소 파격적인 서비스다.
통신시장에서는 SK텔레콤의 ‘T끼리 온가족 할인 제도’가 눈에 띈다. 본인과 배우자의 직계존비속 및 형제 자매까지 최소 2명에서 최대 5명까지 등록만 하면 최대 50%까지 기본료를 할인해 주는 이 제도는 가족마케팅의 효과를 보며 최근 순 가입자가 200만명을 돌파했다.
금융업계마저 가족 단위 상품들이 속속 출시되는 분위기다.

금융·온라인쇼핑몰시장 가족마케팅 ‘홍수’
삼성생명은 여러 보험상품을 하나로 묶어 가족이 함께 가입할 수 있도록 한 통합형 보험상품을 선보였고, 현대카드도 가족이 이용하는 학원이나 병원, 주유소 등에서 할인 혜택을 주는 ‘현대카드 H’를 내놓았다. 이 카드로는 가족 회원의 통합 사용실적이 30만원이 넘으면 병원이나 약국에서 5%를, 60만원 이상이면 10%를 각각 깎아준다.
무엇보다 ‘가족마케팅’ 열기가 가장 뜨거운 곳은 온라인쇼핑몰 업계다.
인터파크는 최근 아이나 가족사진을 올려 당선된 고객에게 디지털카메라, 닌텐도Wii 풀세트 등 경품을 제공하는 ‘패밀리 포토 콘테스트’를 진행했고, 롯데닷컴도 가족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쿠킹클래스를 매달 개최 중이다. H몰 역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공연 이벤트를 준비해 고객추첨을 통해 연극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 관람 티켓을 증정하기도 했다. 이 밖에 디앤샵은 패밀리룩 기획전을 열고 가족끼리 맞춰 입을 수 있는 티셔츠와 점퍼 등을 선보였고, G마켓도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서울랜드 자유이용권과 눈썰매장 이용권을 패키지로 특가 판매한 바 있다.
‘가족마케팅’은 이처럼 사례가 많은 만큼 해당 제품들의 매출성장 속도 또한 가파르다.
삼성전자가 내놓은 디지털 액자의 경우 가족의 소중함을 중시하는 트렌드와 맞물려 지난해 연말 판매량이 3분기에 비해 2배 이상 급증했고 전년도 연말 대비로는 400% 이상이나 성장했다. 또 H몰에서는 가족용 미니 당구대(4만5000원)가 작년 12월 판매량이 전월보다 15% 증가했고, 일본 구매대행 사이트 도쿄홀릭에서는 DIY(Do It Yourself) 학용품세트의 경우 지난해보다 매출이 50% 늘었다.

IMF에서 시작된 감성마케팅의 일종
‘소재와 타깃’
현재 다양한 형태로 이 같은 가족마케팅이 펼쳐지고 있지만 큰 카테고리로 분류해 보면 가족을 소재로 한 마케팅과 가족을 타깃으로 한 마케팅으로 나눌 수 있다.
우선 가족을 광고의 한 소재로 활용하는 것으로, 가족의 가치를 전달해 브랜드 선호도를 올리고 소비자의 구매를 자극하는 방법이다. 신한카드의 ‘약속’ 편이나 박카스의 ‘음식점 엄마와 배달부 딸’편이 대표적이다. 이는 단순히 가족을 모델로 가족의 얘기를 다루는 것에서 벗어나 가족 간의 사랑이나 배려 등 가족의 가치를 광고나 마케팅의 중심으로 삼고 있는 경우다.
다음으로 마케팅 타깃의 변화 등을 통해 가족 수요를 공략하는 것인데 닌텐도가 취하는 전략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DS, Wii 등으로 가면 경쟁사인 소니나 마이크로소프트와 차별화를 강조하고 있다. 즉 경쟁사가 게임을 즐기는 20~30대의 남성을 주 타깃으로 삼은 반면 닌텐도는 어린이와 여성, 즉 가족구성원 모두를 게임 유저로 끌어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가족마케팅의 시초는 언제부터였을까.
최근에 불고 있는 일련의 ‘가족마케팅’에 대해 마케팅 전문가들은 ‘IMF 위기 때의 리플레이’ 작품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10년 전 IMF 외환위기 역시 실물경기가 급속히 악화하는 가운데 ‘어렵고 힘들 때는 역시 가족뿐’이라는 인식이 많았고 당시 적지 않은 가족마케팅이 성공을 거둔 것이 지금의 효시가 됐다는 분석이다.
제일기획의 허원구 국장은 “가족마케팅의 효시를 명확히 구분할 수는 없으나 대략 IMF 시절 가족마케팅에 대한 시장 접근이 구체화됐다고 보여진다”면서 “그러나 당시에는 가족마케팅이라기보다는 ‘감성마케팅’의 일환으로 접근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에 비해 최근의 가족마케팅은 좀 더 구체화되고 소비자들에게 제품 구매로 이어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면이 적지 않다”고 해석했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어려울 때 믿을 것은 가족밖에 없다’는 측면에서 ‘아빠 힘내세요’와 같은 가장에 대한 응원류의 광고가 주류를 이뤘지만 최근의 가족마케팅은 ‘가족이 험한 세상의 유일한 안식처’로 전면에 등장하면서 가족 구성원을 겨냥한 상품이 구체화를 띠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런데 불황기에 접어들수록 이 같은 가족 마케팅은 왜 부각되는 것일까. 바로 가족은 위기상황에서도 ‘최후의 보루’이며 불안감에 대한 방어벽이어서 개인소비는 줄이더라도 가족을 위한 소비는 줄이지 않겠다는 소비자들의 보편적인 심리가 작용한 때문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실제 제일기획의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불황엔 개인 소비에 부담을 느낀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86%를 차지한 반면, ‘가족을 위한 소비는 유지하겠다’는 입장은 75%인 것으로 나타났다(3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조사).
신한카드의 여동근 브랜드전략팀 부부장은 “아무리 어려워도 가족을 위한 소비는 최대한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는 데다 불황기엔 기업들이 광고를 통해 상품정보 이상의 것을 제공해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의식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존 켈치 하버드대 교수 역시 최근 ‘불황 극복’ 전략과 관련해 “마케팅의 초점은 ‘가족’에 맞춰야 한다”고 가족마케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불황으로 소득이 줄어들면 소비가 감소하게 되는 반면 적은 비용으로 만족을 느낄 수 있는 가족 중심 지출이 늘어난다”고 밝힌 바 있다.
김진욱 기자 (action@ermedia.net)

인터뷰 | 허원구 제일기획 광고담당 총괄 국장

“‘핵가족 마케팅’으로 블루오션 찾아라”

가족마케팅, 왜 부각되나. 불황기의 소비자 심리는 한마디로 ‘불확실성의 증대에 따른 불안감의 증폭’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방어벽이며 특히 어려울 때일수록 믿을 건 가족밖에 없다는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불황기 개인용도의 소비는 줄이더라도 가족을 위한 소비는 쉽게 줄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도 한 이유다.
굳이 불황기가 아니어도 가족마케팅은 기업 입장에서는 항상 효과가 있을 것 같은데. 맞다. 가족이란 게 마케팅의 새로운 화두는 결코 아니다. 하지만 이번 불황에 가족마케팅의 효율성이 더 높아질 거라고 예상되는 이유는 국가나 기업집단보다 ‘가족’이라는 집단에 대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IMF 때만 해도 금 모으기, 바이코리아, 벤처열풍 등 국가나 기업 차원에서 불황극복을 주도했지만 지금은 불황극복의 주도체가 ‘가족’이 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 가족마케팅을 활용하기 위한 팁을 제안한다면. 가족마케팅 관점을 다양하게 넓혀야 한다. 지금 대부분의 ‘가족마케팅’에서 소구하는 것이 ‘효도’나 ‘자식사랑’ 등 전통적인 가족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핵가족 대 대가족의 전통적인 가족 형태는 의미가 없다. 이미 1인 가구가 500만가구를 돌파 ‘1인 가족도 가족이다’라는 식의 가족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으로 본다. 즉, 새로운 가족에 대한 가치에 부합된 마케팅을 펼친다면 그것이 곧 ‘블루오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족마케팅은 전 세계적으로도 붐을 이루고 있는가. 우리처럼 뜨겁다고는 할 수 없지만 곳곳에서 열기가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Dodge Grand Caravan’ 광고의 경우 “제각각 살고 있지만 함께 닷지를 타면 모두가 하나 되어 즐겁다”라는 것을 문구로 사용했고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한 조사 결과에서도 10대의 85%가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나타난 바 있다.
가족마케팅 말고도 2009년에 주목할 만한 마케팅 트렌드가 있다면. ‘역발상’ 마케팅이다. 여러 번의 불황을 겪으면서 소비자들도 경험에 의한 학습을 했다. 따라서 불황일수록 더 적극적인 마케팅을 해야 한다.

김진욱 기자 action@ermedia.net


키워드

#트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