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넛지: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
- 리처드 탈러 외 지음
- 안진환 옮김
- 리더스북 펴냄
- 1만5500원

공공시설의 화장실은 어느 나라든 지저분하기 일쑤다. 바닥에는 지린 오줌이 흥건하고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찌른다.

하지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스키폴 공항의 남자 화장실은 다르다. 이 공항 화장실의 남자용 소변기에는 중앙 부분에 검정색 파리가 그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소변을 볼 때 정확한 조준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지만, 이렇게 중앙 부분에 파리가 그려져 있는 경우 파리에 조준하여 볼일을 본다.

눈앞의 목표물에 자연스럽게 집중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방법은 ‘경이로운’ 효과를 가져왔다.

이 간단한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의 양이 80%나 감소했기 때문이다. 소변기 중앙 부분에 그려진 것이 바로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 즉 넛지인 것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파리 그림’이라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사람을 ‘선택 설계자’로 부른다.

이들은 사람들이 결정을 내리는 배경이 되는 정황이나 맥락을 만든다. 실제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무수히 많은 선택 설계자들이 존재한다.

선거 투표 용지를 디자인하는 디자이너, 환자에게 선택 가능한 다양한 치료법을 설명하는 의사, 회사의 의료보험 플랜에 등록할 때 작성하는 서류양식을 만드는 사람뿐만 아니라 자녀에게 선택 가능한 교육 방식을 설명해 주는 부모 역시 모두 선택 설계자이다.

건축가가 어떤 특정 형태와 설계로서 건물을 올리듯 선택 설계자는 특정한 방식을 부여하여 사람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이것이 바로 선택 설계자가 사용하는 부드러운 힘, ‘넛지(Nudge)’이다.


세계에서 가장 경치가 수려하다는 시카고 레이크쇼어 도로(Lake Shore Drive)를 보자. 미시간 호수를 끼고 펼쳐진 이 도로를 달리는 운전자는 시카고의 장엄한 스카이라인을 구경할 수 있다.

다만 이 도로에는 S자 커브가 연달아 이어져 있는 매우 위험한 구간이 있다. 시속 40km로 감속하라는 표지를 보지 못하고 사고를 당하는 운전자들도 상당히 많기 때문에 최근 시카고 시당국은 감속을 유도하는 새로운 방법을 도입했다.

운전자들이 위험한 커브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도로에 그려진 감속 경고표시를 보고 곧이어 도로 위에 그려진 하얀 선들과 마주치게 한 것.

이 선들은 운전자들에게 어떤 시각적인 신호를 전달하는데, 앞쪽의 선들은 간격이 고르지만 가장 위험한 커브 구간부터는 간격이 더 좁아진다.

따라서 운전자들에게 속도가 증가하는 느낌을 주고 이 선을 기준으로 운전자들은 본능적으로 속도를 줄이게 된다. 강제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넛지를 가하여 운전자들이 속도를 스스로 낮추게 만든 것이다.

넛지는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매출이나 구매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용될 수 있다. 휴대폰이나 자동차 같은 특정 제품의 구매율을 높이는 것이 목표라고 가정해 보자.
전국 각지에서 4만명 이상의 사람들을 표본으로 선정하여 조사를 실시한 결과, “향후 6개월 안에 새 차를 구매할 의사가 있습니까?”라는 간단한 질문만으로도 구매율을 35%나 높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의향을 물어 넛지를 가하는 경우, 언제 그리고 어떻게 할 계획인지 등의 구체적인 질문을 추가함으로써 그 영향력을 보강할 수도 있다.


1965년 예일대 4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그 방증이다. 당시 연구자들은 파상풍의 위협과 보건소에서의 예방 접종에 대한 교육을 학생들에게 실시한 뒤, 이들 중 몇 명이 보건소에 가서 실제로 파상풍 주사를 맞았는지 조사했다.

결과는 불과 3%에 그쳤다. 반면 교육을 시키고 보건소 위치에 동그라미가 쳐진 교내 지도를 한 부씩 제공하고 주간계획표를 보고 언제 가서 주사를 맞을 것인지 계획한 다음 지도를 보고 어떤 경로를 택할 것인지 결정하라는 요청을 한 뒤의 결과는 어땠을까? 학생들의 28%가 보건소에 가서 파상풍 예방 주사를 맞았다.

이는 심리학자 쿠르트 레빈(Kurt Lewin)이 ‘경로 요인(Channel factor)’으로 붙인 범주에 속하는데, 경로 요인이란 특정한 행동들을 촉진하거나 방해할 수 있는 작은 영향력들을 의미한다. ‘경로’는 봄눈이 녹은 후 강에 생겨나는 통로와 흡사하다.

이 경우, 통로는 주변 환경의 아주 사소한 변화로 보이는 것들에 의해 결정될 수도 있다. 레빈은 이와 유사한 작은 요인들이 사람들이 ‘취하고자 하는’ 행동에 대해 놀랍도록 강력한 억제제를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종종 사람들을 특정한 방향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모종의 작은 장애물을 제거함으로써 보다 수월하게 바람직한 행동을 독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우리가 넛지를 이용해야 하는 이유로 “인간이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호모이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라 하지만 현실에서는 타성에 빠지거나 디폴트 옵션(Default option, 따로 지정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선택되는 옵션)을 따르는 성향으로 최선의 선택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이럴 때 작용하는 부드러운 자극은 금지나 인센티브 이상의 성과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어떤 선택을 금지하거나 누군가의 경제적 인센티브를 훼손하지 않고도,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행동을 변화시키는 개념과 그 구체적 사례를 제공하고 있는 이 책은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여름 휴가를 가기 전에 청와대 직원들과 출입기자들에게 선물함으로써 더 관심을 끌고 있다.

사실 ‘넛지’라는 것은 ‘세심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배려’라 할 수 있다. 그러한 배려는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많은 것을 이뤄나갈 수 있는 긍정적이고 따뜻한 힘이다.

최근까지 우리 사회가 너무 눈에 보이는 강제와 규칙, 원칙과 명령에 의존하면서 분열과 갈등이 심해진 점을 고려하면, 이제부터라도 통합과 화해를 위해 이러한 넛지, 즉 배려를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권춘오 네오넷코리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