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1000억원대 자산을 보유한 강남 큰손 남상범(42·가명)씨. 남 씨는 요즘 자산사업가로 변신, 교육·복지사업에 열심이다. 그가 처음부터 자산사업을 시작한 것은 물론 아니다.

2004년 당시만해도 그는 IT업계에서 ‘잘 나간다’ 소리 듣는 코스닥 대표이사였다.
몇 번의 오르막 내리막이 있었지만 2000억원 규모로 회사 덩치가 커져 있었다.

외국계 기업이 남 씨 회사에 군침을 흘린 것도 이맘때다. 돈은 벌 만큼 벌었다고 판단한 그는 미련 없이 회사를 팔아치운다.

본래 남을 돕는 일을 해보고 싶기도 했다. 팔고 나서 안고 있던 빚과 세금을 내고나니 손에 쥔 돈은 1200억원.

일단 아이들부터 챙겨주고 복지사업을 벌이려고 했지만 딱 걸리는 것이 상속·증여세. 30억원이 넘으면 50%의 증여세를 내야 하니 단순계산으로도 600억원을 고스란히 헌납해야 했다.

그것 만큼은 용납할 수 없었던 남 씨. 그는 머리를 짜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법인을 세우는 일이었다.

개인이 법인에게 돈을 빌려주면 이자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과세 원리를 착안한 것. 이는 개인과 법인간 거래에서는 법인이 유리하도록 해석되는 탓이다.

빌딩법인에 1000억원대 무상대여
일단 부동산 임대법인(자본금 5000만원)을 세워 어린 자식 3명 공동명의로 지분을 나눠줬다. 지분은 큰아들(당시 5세) 40%, 둘째 딸(3세) 30%, 셋째 아들(1세) 30%로 쪼개뒀다. 그 뒤 남 씨는 1200억원 전액을 법인에 무상대여했다. 이 돈으로 강남대로변에 고층건물을 매입했다.

당시 임대소득만 매년 세후 90억원에 이르렀다. 단순히 은행예금을 했을 때보다 50억원을 더 벌 수 있었던 것.

하지만 남 씨가 노린 것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매년 수익 90억원 중 10억원은 대표이사 급여로 처리하고 50억원은 주주 배당으로 처리한 것.

물론 법인세, 근로소득세, 배당소득세 등을 물어야 하지만 자연스럽게 상속·증여세 부담은 덜어지게 된 셈이다.

뿐만 아니다.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배당소득이 넘어가고 보니 자식들 자금출처도 확실해지는 효과를 발휘했다. 여기서 그치치 않는다. 수익 가운데 나머지 30억원은 남 씨가 가져다 쓰고 있다.

법인에 1200억원을 빌려준 남 씨가 매년 30억원씩 상환을 받고 있는 것. 앞으로 40년간 돌려받으면 남 씨와 아이들 법인 간에는 채권·채무관계마저 사라지고 그맘때 1200억원 재산을 모두 돌려받아 쓰게 된다면 상속세는 제로가 된다는 얘기다.
배당소득 자식들 귀속…20년 뒤 분가 계획까지

자식들의 재산다툼도 미리 고려해 놨다. 일단 큰 아들이 배당을 매년 20억씩 받아가게 되면 20년 후에는 400억원이라는 자금이 마련된다. 그때가 되면 아내가 대표로 되어 있는 빌딩법인을 큰아들 명의(대표)로 돌릴 생각이다.

그러면 대표이사 급여(매년 10억원)를 아들이 챙길수 있는 것. 그렇게 5~10년을 더 보내면 매년 20억원의 배당과 10억원의 급여로 재산이 550억~700억원으로 불어난다.

그 돈으로 동생들 지분을 나눠 사들이면 빌딩은 아들 소유가 된다는 복안이다. 지분을 넘겨주며 받은 돈으로 둘째와 셋째도 강남 요지 빌딩을 사들이면 되지 않느냐는 것.

이때쯤이면 세 자식들 재산이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져 갈등의 소지를 줄일 수 있다. 30억원씩 상환받는 돈도 그는 의미 있게 쓰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교육재단 2개를 인수해 뒀고 아프리카 기아단체에도 큰돈을 기부하고 있다.

한 달에 3억원 가까운 돈이 생기니 그로서는 아쉬울 것이 없다. 가진집 도 수채 에다 별장에다 해외에도 집이 있어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이러한 남 씨 계산이 다소간의 수익률 계산상 딱 맞아떨어지지 않을수도 있다. 하지만 어찌됐건 소득위험 분산과 세목을 달리하며 세율 구간을 낮추면서 증여세(50%)를 때려맞는 것보다는 훨씬 큰돈을 유보할 수 있다는 판단인 것.

법인 소유 강남빌딩은 지금 3000억원을 호가하고 있다. 남 씨는 이미 근저당 설정으로 자식들이 마음대로 빌딩을 처분할 수 없도록 해뒀다.

상가 지분 쪼개서 상속·종합소득세 아껴
증여를 나면 수익이 생기는 재산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상가다. 땅은 증여받아도 특별히 임대할 수 없어 수익이 생기기 힘들다. 강남부자들이 상가를 먼저 상속하는 이유가 되는 셈.

게다가 증여 이후 생기는 수익은 전적으로 배우자나 자식들에게 귀속된다. 따라서 상속자(가장)가 안게 될 종합소득세 부담을 배우자나 자식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는 얘기다.

자식들이 벌이가 없다면 더 말이 된다. 시세차익은 물론 매달 나오는 임대수익으로 앞으로 있을 증여나 상속세 자금을 마련할 수도 있고 종잣돈 마련까지 1석3조가 된다.

강남 수백억원대 자산을 가진 박도윤(가명·45) 씨도 최근 상가 지분을 아내와 자식들에게 쪼개줬다.

강남요지 상가지만 도로 이면에 있어 가격은 50억원 정도. 전체 지분 가운데 50%는 본인이, 30%는 아내에게, 20%는 아들에게 나눠줬다.

이를 통해 낸 증여세는 2억원 정도. 하지만 50억원짜리 상가가 훗날 상속 시 오르는 만큼 상속가액이 높아져 세금부담이 커지는 것과 비할바 아니다. 아직 명확히 정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10년 후에는 더 큰 지분을 아들에게 줄 생각이다.

최근 강남부자들은 다주택자 중과세 유예기간(2010년 말)까지 적극 활용하고 있다. 교사 생활을 하다 은퇴한 황창규(가명·65) 씨도 무주택 자녀 두 명에게 87년 취득한 대치동 아파트 한 채를 공동명의로 줬다.

10억원짜리 아파트로 아들들이 낸 증여세는 8100만원씩 정도(5억원 20% 세율). 지금 양도하면 매매차익이 8억원으로 양도세 부담이 크지만 증여를 할 경우 자식들이 3년 보유, 2년 거주 요건을 채워 양도세 자체를 완전히 덜어낼 수 있다는 판단이다.

김성배 기자 sbkim@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