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 판교동, 다양한 개성으로 무장한 단독주택이 가득한 이곳에서도 무이동(無異同)은 쉽게 눈에 띈다. 건축가 조성욱 소장은 철학을 전공한 친구의 제안대로 ‘같지도 다르지도 않은’ 두 집을 하나로 이어 지었다.

무이동은 한 필지를 두 가족이 별도의 생활공간으로 쓸 수 있도록 설계한 듀플렉스, 쉽게 말해 땅콩주택이다. 하지만 겉으로는 일반 단독주택과 다른 점이 없다. 양쪽을 1m 앞뒤로 엇갈리게 배치한 독특한 설계 때문이다. 약간 엇갈린 대칭이 양쪽 집의 독립성을 지켜주면서 동시에 하나의 공동체를 이룬다. 함께 살아가는 기쁨만큼 프라이버시 또한 중요한 덕목이기 때문이다.

건축주이자 설계자이기도 한 건축가 조성욱 소장은 전셋값에 내밀려 무이동을 짓게 됐다. 이전에도 땅콩주택이 유행하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평소에는 이렇다 할 매력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러던 것이 이사를 준비하면서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전셋값을 체감하고 땅콩주택을 떠올렸다.

“재작년, 가족들이 선택한 지역의 82㎡(25여평) 아파트로 전세를 옮기려고 하니 전셋값이 4억 5000에서 5억까지 올랐더군요. 가격도 문제였지만, 자칫하면 층간 소음에 시달려야 하고 구조도 마음에 들지 않는 곳에 그 돈을 주고 들어가기는 싫었습니다. 차라리 어렵더라도 내 집을 짓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판교 주택단지에서 땅을 분양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그러나 땅값만 6억이었다. 전세 보증금 4억이 전부인 그로서는 선뜻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그때 떠오른 사람이 평소 가깝게 왕래하며 지내던 친구였다.

친구와 의기투합해 지은 듀플렉스

항상 ‘내 집을 갖는 것이 꿈’이라고 이야기하던 친구와는 가족끼리도 친했다. 조 소장은 친구와 고심 끝에 듀플렉스를 만들기로 합심하고 설계에 들어갔다. 우선 232㎡ 대지에 나란히 두 집을 올리려니 평면부터 수직 동선 설계와 시공과정까지 어려운 것 투성이였다. 두 집 모두 두 명의 자녀가 있었고 친구는 어머니도 함께 거주하길 원했다. 최소한 각각의 집에 80㎡에서 100㎡의 면적이 필요했다.

조 소장은 지하실을 만들어 부족한 공간을 벌충하고 두 가정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공용 공간을 실내외에 배치에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했다. 지하실은 조 소장이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월 150여만원의 임대비를 절약한다.

지하이지만 밖으로 통하는 천창이 뚫려 있어 늘 밝은 빛을 받는다. 양쪽 집에서 함께 사용하는 공용 계단에는 스크린을 설치해 두 가족의 전용 영화관으로 활용한다. 넓은 계단과 좁은 계단을 함께 조성해 이동을 위한 공간이자 편히 앉는 공간으로 쓰임새를 넓혔다. 2층에 올라서면 각 방을 비롯해 화장실과 드레스룸이 복도를 따라 나란히 늘어서 있다.

 두 집을 나란히 세우면서 위치와 공간을 조금씩 다르게 하고 엇갈리는 구조로 만들어 마당과 주차장을 넣었다. 각 가정에 맞게 최적화하면서도 공간을 놓치지 않도록 면밀하게 구성한 결과다. 기존의 땅콩주택과는 달리 집 사이에 계단과 통로를 두어 벽간 소음을 최소화하고,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내부 구조를 달리했다.

반면 2층에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길에 ‘옥탑방’이라는 공동 공간을 두고 하나의 옥상을 함께 공유하는 방식으로 공간을 확보하면서 두 집이 정서적 유대를 유지하도록 안배했다. 프라이버시도 중요하지만, 바로 붙은 두 집이 서로 불편하지 않게 지내기 위해선 무엇보다 정서적인 유대를 잃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놀이와 학습을 동시에 노린 아이들 공간

조 소장이 집을 지으면서 가장 신경을 많이 쓴 곳이 바로 아이들이 쓸 공간이다. 두 아이의 방이 복층에서 이어지게 만들어 학습과 놀이, 2가지 요소를 갖출 수 있게 했다. 아이들 방 위에 마련한 복층 공간은 마음껏 어지르고 놀 수 있는 보금자리다. 높낮이를 달리하는 구조에서 오르내리고 숨고 뛰어내리는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벽면에는 아예 클라이밍 도구를 설치했다. 거실과 주방이 혼재한 1층 거실부는 들어 올려 툇마루처럼 만들었다. 아이들이 놀다가 편히 누울 수도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단지 사는 곳만 달라졌을 뿐인데 아이들은 저절로 바뀌었다. 시시때때로 엄마 아빠에게 매달리고, 마트에 가자거나 놀이공원에 가자고 졸라대던 아이들이 이곳에 오고 나서는 옆집 언니들과 뛰노느라 바빠졌다. 함께 피아노도 치고, 두 집을 오가며 숨바꼭질도 한다. 신체활동이 늘어서인지 식생활도 달라졌다. 이전에는 입맛에 맞는 인스턴트 음식만 찾았지만, 이제는 여러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기능적인 부분도 놓치지 않았다. 옥상정원에는 잔디와 흙 사이 한 층, 그리고 골조면이 닿는 한 층의 두 층으로 방수층을 두어 배수에 신경 썼다. 거실과 주방 사이에는 중문이 있어 손님이 온 날에는 게스트룸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또한, 인테리어나 치장에 비용을 절약하는 대신 폐열회수 환기장치를 설치해 쾌적한 공기의 질을 유지하면서 냉난방비를 아끼는 방식을 택했다. 장비 구입 비용 외에도 덕트의 설계 및 시공을 합해 1200만원의 비용이 들었지만, 덕분에 앞으로 냉방비, 난방비를 지속적으로 아끼게 될 것이다.

 

‘조성욱 건축사 사무소’ 조성욱 소장

불편함은 오히려 단독주택의 매력

조성욱 소장 역시 단독주택을 선택하기까지 많은 고심을 했다. 아파트에서 단독주택으로 주거의 형태를 바꾸는 것은 물론 이른바 삶의 패턴이 달라지는 것에 대해 두려움도 있었다.

“라이프 스타일이 달라지는 것인데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어요. 하지만 나와 우리 가족 인생에 있어서 어떤 것이 효율적인지 살펴보고 이것이 최선책일 수 있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우선 아이들을 위한 공간 설계에 공을 들인 만큼 아이들과의 관계가 좋아졌다.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커지면서 아이가 집을 더 좋아하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도 늘었다. 단독주택으로 온 이후에는 아이와 함께 인스턴트 위주의 식습관도 고쳤다.

물론 처음 시작된 단독주택 생활에 불편한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것저것 손이 가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불편함이 오히려 매력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단독주택은 아파트와 달리해야 할 일이 많은 편입니다. 하지만 불편함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생활이 달라집니다. 아파트에서는 아침에 일어나는 것조차도 힘들었지만, 이제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버릇이 생겼어요. 마음이 편안해지고 더 여유를 갖게 됐죠. 결국, 불편함이야말로 단독주택 최고의 매력인 것 같아요.”

하기야 그렇기도 한 것이 단지 조금 더 바빠진 것에 비해 조 소장의 삶에 생긴 긍정적인 변화가 훨씬 크다. 삶의 패턴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불편함은 문자 그대로의 불편함이 아닌 셈이다.

무이동(無異同)

주소: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

면적: 대지 232.00, 건물 115.32

건축비용: 6억원

특징: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면서도 집의 유대를 강화하는, 아이들을 위한 듀플렉스

건축가: 조성욱

건축사무소: 조성욱 건축사사무소(www.johsungw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