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채 KT 회장(왼쪽) 정만원 SKT 사장(오른쪽)


KT의 ‘올레(olleh)’ 경영에도 불구하고 SK텔레콤이 변함없는 순항을 거듭하고 있다. 이석채와 정만원으로 대표되는 통신업계가 합병이슈로 KT에게 힘이 쏠리는 듯 했으나 상반기 실적발표를 살펴보면 SK텔레콤의 무난한 승리로 돌아갔다.

KT는 자타가 인정하는 국내 최고·최대의 통신회사였다. 하지만 주력 사업인 유선전화사업의 부침, 경쟁사에 비해 월등히 많은 인력, 공기업 마인드 등에서 한계를 보이면서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비대한 공룡 취급을 받아왔다.

경쟁사인 SK텔레콤은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좋은 이동전화사업을 바탕으로 수익성은 이미 추월했고 덩치 면에서도 KT의 턱밑까지 쫓아왔다. 이런 상황은 최근 발표된 2분기 실적발표에서도 확연히 나타났다.

SK텔레콤은 2분기 매출이 지난해 동기 대비 5% 증가한 3조679억원, 영업이익은 4% 증가한 5534억원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당기순이익도 5% 증가한 3116억원이었다. 이 같은 성적표는 이통사 간 가입자 확보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마케팅 비용이 사상 최대인 9486억원까지 급증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상대적으로 좋은 실적으로 분석되고 있다. 시장점유율도 50.5%를 기록해 KT와 LG텔레콤을 가볍게 따돌렸다.

이에 비해 KT는 이 기간 매출은 4조8725억원, 영업이익은 4834억원, 당기순이익은5042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7% 감소한 반면, 영업이익은 49.9% 증가했다.

당기순이익은 환율 안정에 따른 효과일 뿐 외화환산손실 감소로 무려 245%가 향상됐다. 이 기간 동안 실적만 보면 일단 상반기에는 이석채, 석호익 등 스타군단으로 포진한 KT보다 특급 소방수를 기용한 SK텔레콤이 승리를 거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른바 ‘이석채 효과’가 공염불에 그쳤다는 것이다.
국내 유무선을 대표하는 두 사람은 비슷한 시기 새로 KT와 SKT 수장에 올랐다. 그러나 두 사람의 행보는 엇갈리고 있다.

경영혁신 추구 vs 성장문화와 비전 구축
이석채 회장이 합병 KT의 내실화를 통한 경영혁신을 추구했다면 정만원 사장은 성장문화와 비전을 만드는 데 주력해 왔다.

이 회장이 KT호의 선장을 맡은 행보를 보면 올 1월 취임과 동시에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본사 인력 3000명을 현장으로 내려 보냈다.

취임 6일 만에 KTF와의 합병을 결정, 4개월여 만에 통합KT를 출범시키는 등 추진력을 발휘했다. KT가 2002년 민영화 이후 겪은 7년간의 변화를 능가한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내부 비리와의 전쟁에도 나섰다.

검사를 지낸 정성복 윤리경영실장을 영입, 협력업체로부터 금품수수 혐의가 있는 임직원을 검찰에 고발했다.

공기업 잔재로 여겨져온 연공서열 인사제도와 호봉제를 없애고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 숨 가쁘게 진행된 변화의 속도에 임직원들은 혀를 내둘러야 했다.

그는 “KT가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묻지 말고 여러분이 KT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자. 이것이 ‘All New KT’를 만드는 출발점이다”라며 임직원들에게 주인의식과 효율, 그리고 혁신을 주문했다.

정 사장도 취임 이후 성장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 아이디어 평가 단계부터 사업화 결정까지 직접 참여하는 등 최일선 지휘봉을 잡고 달려왔다.

정 사장이 공식적인 조직 차원의 성장영역 발굴과는 별도로 구성원의 아이디어 발굴과 사업화를 위해 직접 나선 것은 구성원 모두를 혁신적인 사업모델 발굴에 자발적으로 참여시키기 위해서다.

정 사장은 살아 숨쉬는 유기체적인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문화·비전·실력’이 있어야 한다는 지론을 강조했다.

올 상반기에는 성장문화와 비전을 만드는 데 주력했고 하반기에는 이를 구체적으로 추진할 ‘실력’을 신속히 갖춰 나가야 한다고 전 임직원들에게 주문했다.

정 사장은 “올 상반기에만 부문별 임원들이 참석하는 성장전략회의를 28차례나 열어 SK텔레콤의 성장 영역을 재검토하고 골격을 정해왔다”면서 “하반기부터는 영역별로 실행방안이 마련돼 구체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SK텔레콤은 4세대(4G) 등 네트워크 진화 과정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앞선 정보통신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확보해야 한다”면서 “이를 기반으로 정보통신기술(ICT) 외 타 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서 새로운 사업모델을 윈윈(Win-Win) 방식으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격 경쟁은 하반기에…
하반기 통신시장은 더욱 경쟁이 심화될 전망이다. 합병으로 체력을 비축한 KT가 이슈를 마무리하고 보다 공격적인 경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수치상으로는 KT가 통합 후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비춰지지만 전반적인 사업 성과에서는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 상황이다.

이는 통합 2개월 만에 나온 성과라는 점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시장 잠식이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김연학 KT CFO 전무는 “상반기에는 합병 과정에서의 조직개편과 이동통신시장 과열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원가절감과 비용 합리화를 통해 이익증대에 힘써왔다”며 “하반기에는 수익성 증대와 매출성장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합병 원년인 올해 KT가 제시한 경영목표는 매출 19조원, 영업이익 1조8000억원이었다. 규모 면에선 지난해 11조6750억원을 기록한 SK텔레콤을 따돌릴 수 있지만 영업이익에서는 오히려 뒤지는 목표다.

SK텔레콤은 무선사업에서만 연간 2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거둘 전망이기 때문이다. SK텔레콤 역시 현시점에서 2분기 실적이 KT보다 우월하더라도 아직 통합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본다면 4분기나 내년 1분기쯤 본격적인 윤곽이 나타날 것이라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SK텔레콤 CFO 장동현 전략조정실장은 “아직 KT와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우리도 KT 합병 이전에 기업 사업단 신설 등 조직개편과 SK브로드밴드, 나텔링크 등 관계사와 본격적인 경쟁체제를 마련해 대비책을 세웠다”고 앞으로 KT와의 본격적인 경쟁을 시사했다.

증권사들은 하반기 통신시장에서 SK텔레콤의 우세를 점치고 있다. 마케팅 전쟁으로 각 통신사들의 수익성이 악화되더라도 하반기 수익성은 점차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변승재 대우증권 연구원은 “통신시장의 경쟁 격화는 3분기 내 마무리될 것”이라며 “회사 마케팅비용에 대한 우려는 3분기부터 점차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NH투자증권 김홍식 연구원도 “SK텔레콤의 경우 향후 기업가치를 훼손시킬 수 있는 M&A 성사 가능성이 희박하고 마케팅비용이 감소될 것으로 예상돼 향후 실적 전망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유진투자증권 김동준 연구원도 “분기 사상 최대의 마케팅 비용 지출에도 불구하고 이번 실적에서 안정성과 강한 체력을 보여줬다”고 분석했다.

조윤성 기자 cool@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