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에게 약을 투여하면 회복된다. 하지만 빨리 회복하라고 다량의 약을 투여해서는 안 된다. 부작용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려면 적절한 양의 약을 투여하면서 상태를 지켜봐야 한다.

현재 한국 경제의 상황이 이와 같다. 정부는 ‘의사’이며 경제는 ‘환자’이다. 약은 ‘유동성’이며, 현재의 회복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약을 줄이면서 운동을 시켜야 한다. 경제가 움직이려면 ‘투자’가 필요하다.

이미 지표들은 상승세로 돌아섰다. 설비투자 감소세도 둔화로 전환됐으며, 환율도 안정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유동성 공급을 억제하고 투자를 늘려야 경제가 회복세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1970년대 2차 오일쇼크와 같은 더블딥은 없지만 일시적인 조정은 피할 수 없다. 부동산 정책에 대한 규제는 더 이상 완화시키면 안 된다.”
_ 송태정 우리금융지주 경영연구실 수석연구위원

현재 경기가 어느 시점에 있을까요. 바닥론에 대한 의견은.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소 실물경제실장(이하 이부형) ● 지표들의 회복속도가 빠릅니다. 하지만 아직 기업들이 투자에 나서고 있지 않죠.

일반적으로 실물이 뒷받침되지 않은 회복이라고 해서 거품이 다시 꺼질 것이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하지만 경기가 여전히 침체인 것은 맞지만, 거품이 꺼지는 현상은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애당초 거품도 없고, 지금 현재가 바닥이기 때문이죠.

송태정 우리금융지주 수석연구위원(이하 송태정) ● 단기와 장기로 나눠볼 때 단기적인 바닥, 즉 리먼 쇼크로 인한 급하락세는 바닥을 찍었습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또 한 번 위기가 올 수도 있어요. 내년 하반기에 다시 한번 경기가 나빠질 수 있는데, 1970년대의 오일쇼크와 같은 더블딥 현상은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최용식 21세기경제학연구소장(이하 최용식) ● 경기 호전과 경기 상승은 분명 다른 개념입니다. 이걸 분명히 하고 말하면 경기는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경기는 상승하고 있는 게 맞죠. 안정된 경기가 100이라고 하면 지난해 11월 30까지 떨어졌다가 이제 70으로 올라왔습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30이나 남아 있죠. 경기가 호전되지 않은 것을 미뤄보면 여전히 우리는 바닥입니다.

각종 지표를 갖고 경기 낙관론과 비관론이 뒤섞여 있습니다.
송태정 ● 지표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시각이 나옵니다. 글로벌 실물경제의 흐름을 보면 지표들이 상당히 좋게 나오고 있어요.

수출 증가율은 -60%에서 -40% 정도로 감소세가 크게 둔화되고 있습니다. 소매판매 증가율은 한국을 포함한 개도국들은 이미 플러스로 전환됐어요.

산업생산증가율은 한국과 중국이 큰 폭으로 나아져, 중국은 지난 3월부터 플러스로 전환됐고 한국도 조만간 플러스로 돌아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최용식 ● 한국 경제는 V자형 회복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급하게 먹는 밥이 체한다고 하죠. 너무 급하게 상승하다 보니 급하락할 것이라는 비관론이 나오고 있습니다.

경기회복이 꺾이지 않게 막는 것이 현재 정부의 과제입니다. 하지만 더블딥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환율을 현재처럼 방어하고 금리를 점진적으로 인상하면 폭락은 없을 겁니다.

이부형 ● 지표만 볼 때는 좋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착시 효과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 6월 지표를 보면 소비가 늘고, 재고가 줄었습니다. 재고는 건설사들의 미분양 아파트가 줄었기 때문이고,

소비는 자동차 판매대수가 늘어났기 때문이죠. 주식과 부동산가격이 오르니 소비심리지표도 자연스럽게 올랐습니다.

이는 전형적인 경기회복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완전히 회복됐다고 할 수 없습니다. 최악의 시기는 지났지만, 속단할 수 없죠. 그래서 비관론이 생성되는 것입니다.

지표 중 고용과 실업률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부형 ● 고용지표는 후행지표입니다. 3개월 정도 늦게 나타나죠. 앞으로의 고용지표를 예상하면 솔직히 호전 기미가 나타날지 의문입니다.

유동성을 풀어놓은 경기부양책 덕분에 악화됐던 고용과 임금지표도 감소세를 둔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것이죠. 앞으로 정부의 고용 정책이 어떨지에 따라 악화 또는 개선될 여지가 있습니다.

송태정 ● 전형적인 회복 국면을 나타내고 있지만, 후행지표인 고용과 임금지표가 걸립니다. 내년 상반기 고용 대란이 일어날 경우 경기회복은 매우 더딜 것입니다.

단기적으로 더블딥이 올 가능성은 없지만, 고용 사정이 나아지지 않을 경우 중장기적으로는 더블딥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현재 증시는 거품이 아니라 외국자본이 유입되서 나온 결과이다. 3, 4분기에는 더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이미 금융업계에서는 출구전략을 시도, 유동성을 흡수한 상황이다.”
_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소 실물경제실장

지표 상승세가 착시 현상이고 고용 상황이 불안하다면 이는 거품이라는 방증 아닐까요.
최용식 ● 그렇지 않습니다. 지표가 극과 극으로 갈리는 상황은 분명 불안하지만, 거품이 낀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증시의 경우에는 외국인 자금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상승세를 그리는 것이죠.

외국인 자금이 들어오는 이유는 뻔합니다. 연초 당시 기업들이 저평가돼 있고, 원화가치는 달러 대비 큰 폭으로 낮아졌죠.

달러를 들고 와서 원화로 바꿔 저평가된 우량기업들에게 투자하면 당연히 시세차익을 보겠죠. 거기다 환차익까지도 누릴 수 있습니다.

송태정 ● 아무리 외국인 자금이 유입됐다고 해도 현재 주가는 오버슈팅입니다. 증시는 조정을 상당히 받을 것입니다.

기업 실적이 좋다고 하지만 실물경기가 전혀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 실적만으로 오르는 증시는 문제가 많습니다.

이부형 ● 하지만 연말까지 증시는 더 올라갈 가능성이 큽니다. 내년 상반기에 이를 유지할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이지만, 단기적으로 본다면 올해 하반기에 증시가 큰 폭으로 하락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자금이 한꺼번에 나가지 않도록 정부는 경기변동을 줄이고 기업은 실적을 유지해야겠죠. 하반기 정책과 기업전략이 내년 상반기의 더블딥을 막을 것입니다. 신중해야 합니다.

정부 정책이 관건이란 말이군요. 그렇다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출구전략의 시기는 언제쯤으로 보는지.
이부형 ● 이미 금융기관들은 출구전략을 활용해 유동성을 회수했습니다. 기업들 중 신용도가 낮은 기업에 대해 대출을 회수하고, 개인과 기업 대출을 줄이고 금리도 올렸어요.

시중에 풀린 자금들은 이미 은행을 통해 흡수했습니다. 800조원의 부동자금은 풀린 유동성이 아닌, 기업들이 수출입 이익을 MMF의 형태로 묶어둔 자금입니다.

이 부동자금이 설비투자로 이어져야 하는데, 현재 그렇게 되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라는 거죠.

최용식 ● 출구전략은 2분기 당시에 이미 시행했어야 합니다. 제로금리에서 계속 자금을 풀어주면 그 유동성을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약물을 과다투여하면 부작용이 일어납니다.

가계부채는 어느 정도 이자 부담이 늘어날 수 있지만, 과다한 유동성 탓에 혼란을 겪는 것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변 선진국과 비교하면 국내 가계부채는 가장 양호합니다.

송태정 ● 출구전략은 시기상조 아닐까요. 더블딥, 또 한 번의 디플레이션 우려가 있는 만큼 긴축정책으로 자금을 빨아들일 경우에 파급 효과가 크지 않을까 합니다.

1999년 일본은 성급하게 출구전략을 활용한 탓에 장기침체에 빠져버렸잖아요.
금융위기가 없었다고 가정할 때의 GDP 성장 추세를 보면 위기 이전 GDP 규모로 회복하려면 7분기가 소요된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2010년까지는 충격에서 벗어나고, 2011년부터 진정한 성장이 오는 거죠. 무리하게 출구전략을 활용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정부의 정책 기조가 유지돼야 한다고 보시는 건가요?
송태정 ● 출구전략에 한해서만 그렇다는 겁니다. 사실 부동산 정책은 너무 일찍 규제완화에 들어간 것 아닌가 싶습니다.

참여정부는 부동산가격의 속도조절에 실패했지만 방향성은 맞았습니다. 실용정부도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기보다 세금과 LTV·DTI 규제를 적절한 시기에 맞게 써야 합니다. 무작정 규제를 풀어줄 경우 부동산이 정말 시한폭탄이 될 수 있습니다.

최용식 ● 환율방어가 가장 걱정됩니다. 환율을 방어한 덕분에 경상수지가 흑자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물건을 수출하면 달러로 받은 수출 이익을 은행에서 원화로 바꾸죠. 은행은 받은 달러를 한국은행에서 원화로 바꿉니다.

한국은행은 그 달러로 외환보유고를 채우죠. 외환보유고가 경상수지와 같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한국은행에서 은행들의 달러를 사주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겁니다. 상반기는 그럭저럭 버텨냈다고 하지만, 앞으로 하반기를 어떻게 버틸 것인지 관건이죠. 환율이 또 한 번 출렁거릴 경우에는 ‘제2의 2008년 11월’이 올 테니까요.

“현재 V자형 회복이 맞다. 이 회복세를 지켜가기 위해서는 환율 방어가 최우선이다. 점진적인 출구전략과 환율방어가 하반기에 가장 중요하게 작용될 것이다.”
_ 최용식 21세기경제학연구소장

현재 남아 있는 재정 상태도 문제 아니겠습니까.
송태정 ● 그래서 하반기에는 회복속도가 상반기보다는 둔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국 경제에 유리했던 환경들이 약화되면서 세계 경기 흐름을 따라갈 전망이니까요.

하반기에 활용할 수 있는 재정이 112조원입니다. 1분기 0.1% 성장에 정부지출의 기여도가 1% 이상이었지만, 재정이 줄어든 하반기에는 전기 대비 정부의 성장 기여도가 마이너스로 추락하겠죠. 경기가 본격적으로 회복하는 시점은 내년 이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부형 ● 상반기 한국 경제가 버틸 수 있었던 내부 환경요인은 ‘국가의 재정’이었습니다. 재정의 65%를 소진한 지금, 사실 정부가 하반기 정책을 밀고 갈 수단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추경을 할 수도 없고 이제는 내년 예산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민간투자를 강조해야 합니다. 민간 투자를 늘려 고용률을 높이고 경기회복의 기반을 다져야 합니다.

내부 환경조건만이 아니라 외부도 살펴야 하지 않을까요
이부형 ● 외부 환경이라면 국제 경제를 말하는 것 같은데, 그 변수들은 이미 예상된 악재들입니다. 미국 20대 은행 중 하나인 CIT그룹이 파산할 우려가 큼에도 불구하고 증시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은 게 그 방증입니다.

이미 예상된 악재들은 경기에 그다지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동유럽발 디플레이션이 우려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물론 이 또한 커다란 악재입니다. 하지만 이미 예상된 악재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비도 해놨습니다.

최용식 ● 한국 경제는 외부 환경에 크게 영향받지 않을 정도로 튼튼합니다. 지난해 리먼 브러더스 파산 당시에도 환율만 제대로 방어했으면 크게 나빠질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기업들이 키코 등 환율 파생상품에 가입한 탓에 환율에 흔들린 것 아닙니까. 기업 자체는 다들 우량기업들이었습니다. 앞서 강조했듯이 환율을 어떻게 방어하느냐에 따라 내년 상반기 전망이 명암을 달리할 겁니다.

김현희 기자 wooang13@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