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찌는 듯한 찜통 더위가 기승을 부리며 서늘한 바람이 사무치도록 그리워진다. 에어컨이나 선풍기가 만들어내는 인공적인 바람이 아닌 천연의 바람 말이다.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로 이뤄진 우리나라는 이런 천연의 바람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 많다.

산줄기마다 수려한 계곡들이 실핏줄처럼 뻗어 있고 톡 건드리기만 해도 손에 초록물이 묻어날 듯한 숲도 천지다.

울창하게 우거진 숲속 굽이굽이 흐르는 계곡가에 앉아 탁족을 하거나 하늘을 이불 삼고 물소리 자장가 삼아 누우면 신선이 부럽지 않다.

초록숲과 맑은 계곡에서 만들어지는 천연바람을 찾아 무더위도 식히고 마음의 평안까지 찾고 싶다면 지금 바로 떠나보자.

영월 법흥계곡
열목어 사는 1급수에 풍덩
영월 서강의 상류이며 남한강 발원지로 이루어진 수주면의 여러 계곡은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맑은 물에만 서식하고 있는 가재, 도롱뇽, 쉬리, 황쏘가리, 자라 등 희귀 토종 어종과 멸종위기 동물로 보호받고 있는 수달이 서식하고 있을 정도로 자연이 살아 있는 곳이다.

특히 물이 깨끗하다고 소문난 수많은 계곡이 있지만 법흥계곡 상류의 계류는 유난히 맑고 투명하다. 바닥의 바위가 흰색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이곳의 물은 식수로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법흥계곡은 물놀이나 야영을 즐기기에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최상류의 계곡인데도 물살이 느릿느릿하고, 군데군데 깊지 않은 소가 형성돼 있다. 계곡 양쪽의 울창한 소나무 숲은 8월의 따가운 햇볕을 막아주기에 충분하다.

계곡에서 시원함을 만끽했다면 상류에 있는 법흥사로 가보자.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에 자장율사가 중국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창건한 고찰이다.

우리나라에는 부처님 진리사리가 모셔져 있다는 적별보궁이 5곳 있는데, 법흥사가 그 중 하나다.

설악산 봉정암, 오대산 상원사, 영취산 통도사, 태백산 정암사 등 다른 적멸보궁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그 풍광과 정취는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

사찰로 드는 길이 울창한 숲으로 이뤄져 있어 산림욕을 즐기기에 좋다.
주변에는 한우관광명소인 다하누촌이 있고 주천 강변에는 섶다리를 비롯해 요선정, 요선암 등도 볼거리다.

영월군 1577-0545, 033-370-2541

지리산 내원사ㆍ대원사 계곡
내면의 나를 찾는 계곡
5개 시군에 둘러싸여 언제 봐도 넉넉한 어머니 품속 같은 산이 지리산(智異山)이다.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지게 한다’는 지리산은 한라산, 금강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삼신산의 하나로 국내 최초의 국립공원이다.

지리산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계곡들이 산재해 있다. 특히 경상남도 산청쪽 지리산에는 마야계곡, 청개골계곡, 거림계곡, 중산리계곡 등 다른 지역의 이름깨나 났다는 웬만한 계곡들도 이쪽에서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다.

그러나 이 중 사람들이 단연 최고로 꼽는 계곡은 대원사·내원사 계곡이다. 대원사 계곡은 다른 지역의 계곡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너른 암반들로 이뤄진 아기자기한 계곡이 아니라, 집채만 한 바위들이 구르는 힘차고 원시적인 풍모의 계곡이다. 호탕한 소리를 내며 맑은 계곡물이 사시사철 흘러내리고 있다.

천왕봉에서 중봉과 하봉을 거쳐 새재, 왕등재, 밤머리재와 웅석봉으로 이어지면서 산자락 곳곳에서 발원한 계류가 암석을 다듬으며 흘러내린다.

또 계류와 바위가 만나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선녀탕, 세신대, 옥녀탕 등이 늘어서 있고, 비구니 참선도량인 대원사(大源寺)가 터줏대감으로 앉아 있다.

계곡을 끼고 있는 절집 대원사는 신라 진흥왕 때 연기조사가 창건했다는 비구니들의 수행도량. 내력은 깊지만 소실과 중건을 거듭해 지금의 절집 건물은 1959년에 지어진 것이다.

내원사 계곡도 빼놓을 수 없다. 대원사 계곡처럼 웅장하지는 않지만 계곡과 어우려진 산세의 아기자기한 멋은 이쪽이 더 아름답다.

계곡을 따라 늘어선 활엽수의 가지 끝이 초록물이 뚝뚝 떨어질 듯하다. 장당골 계곡과 내원골 계곡이 합류하는 지점에 절집 내원사(內院寺)가 있다.

천년고찰로 반야교(般若橋)가 유명한데 한여름에도 소름이 끼칠 만큼 찬기운이 휘몰아친다. 내원사 입구에는 야영장이 있어 밤하늘을 보며 별을 헤도 좋고, 아이들과 물놀이 하기에도 그만이다.

올여름 조용한 내면의 나를 찾고 싶다면 지리산 계곡으로 떠나보자.

산청군 055-970-6000

내변산 봉래구곡
계곡길 걷노라면…‘山海絶勝’이 내 품에

변산반도는 예로부터 산해절승(山海絶勝)으로서 ‘서해의 진주’라고도 불렸다.
특히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한 내변산은 호남정맥에서 나뉘어 온 산줄기가 서해로 튕겨나온 듯한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산봉우리와 그 사이 폭포, 계곡, 절집 등 승경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계곡길의 시작은 봉래구곡 입구에서 직소폭포까지 이어지는 2km다.
계곡미와 숲 트레킹을 겸할 수 있는 이 길은 산과 물이 어우러진, 훼손되지 않은 자연으로 가는 이들의 발걸음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계곡은 선녀들이 목욕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선녀탕이나 폭포 바로 아래에 있는 특이한 모양의 분옥담 등 하나 같이 독특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평평한 계곡길이 이어지다 약간 가파른 길에 올라서면 왼쪽으로 산과 산 사이로 거대한 저수지가 나온다. 1차 휴식지인 ‘직소보’다.

직소폭포에서 내린 물들이 모여 이루어진 것으로, 나무테크로 만들어진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직소보는 한마디로 장관이다.

저수지를 보고 계곡을 따라 가파르게 산길을 오르면 갑자기 우렁찬 물소리가 귓전을 때리면 직소폭포가 나온다. 30m 높이의 직소폭포는 주변 산세와 잘 어우러져 있어 외변산의 채석강과 함께 변산반도의 양대 명소로 손꼽힌다.

폭포에 내려서면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물줄기 소리는 더 힘차다. 하늘을 가린 숲길은 마치 다른 세계로 연결된 터널 같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물줄기 끝에 서면 여름의 무더위는 부서지는 포말과 함께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만다.

변산을 찾았다면 전나무 숲길이 아름다운 내소사를 비롯해 낙조로 유명한 솔섬, 채석강, 새만금 간척지 등도 빼놓을 수 없다.

부안군 063-580-4191

영월ㆍ산청ㆍ부안=글ㆍ사진 아시아경제신문 조용준 기자 (jun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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