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주말 오전 반 나절만이다. 토요일 오전 6시 위기관리위원회를 소집해 보자. 전사적 패닉을 경험하게 된다. 분명 위기관리 매뉴얼상 많은 절차들이 망각되고 심지어 위기관리위원회 구성이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일단 개선의 기회는 만들어진 셈이다. 빨리 개선하자. 훨씬 더 강해 질 것이다.

 

기업에게 위기가 발생하면 구성원들은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공장에 대형 화재가 났을 때나, 소비자단체에서 우리 제품 관련 치명적 위해성을 지적했을 때나, 정부 규제기관에서 갑자기 회사에 들이닥쳐 압수수색영장을 보여줬을 때 기업 내부에서는 공히 유사한 경험을 하게 된다. 대응 업무를 해야 하는 핵심 인력들끼리 전화통화가 여의치 않고 힘들어지는 것 말이다.

평소 업무를 할 때는 시간적 압박이 없어 별반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 법무부문장과 전화 연락이 잘 안 돼도 다른 법무팀원을 통해 업무 요청을 전달할 수 있다. 몇 번 전화하다 보면  ‘언젠가는 연락이 되겠지’ 하는 마음도 있게 마련이다. 문자를 남겨 전화 답변을 요청하기도 한다. 또 사실 평소에는 대형 미팅을 제안하지 않는 한, 한자리에 모일 필요도 적다. 회의를 제안할 때에는 회의 참석 인원들의 각 스케줄을 모두 확인하고 미리 공지해 참석을 요청하곤 한다. 평소에는 이런 방식이 당연하고 익숙하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위기가 발생하면 전혀 다른 환경이 펼쳐진다. 당장 법무, 대관, 홍보 부문장을 호출해 통화해야 대응 업무가 적시에 진행될 수 있다. 문자를 남겨두고 한 없이 답신을 기다리고만 앉아 있을 수는 없다. 누군가는 전문적 의견을 줘야 하고 의사결정을 해줘야 위기관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위기 시에는 대부분의 휴대전화들이 통화 중이다. 10여명의 핵심 임원들이 상황 파악과 상호의견 교환을 위해 서로 동시에 전화를 해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상호 연결이 불가능하다. 최고경영자(CEO) 휴대전화에 몰리는 임원들의 전화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는 CEO 스스로도 모른다. CEO가 지금 누구와 통화 중인지 모르는 임원들은 의아한 채 다른 임원들에게 또 전화를 돌린다. 상호간 통화 성공률은 계속 떨어지고 위기를 관리해야 하는 사내 위기관리위원회는 초기 일정 시간 동안 대응하지 못하고 패닉 속에 빠져 있는다.  아주 일반적 현상이다.

우리 회사에 위기가 발생하면 실제로 어떤 현상들을 경험하게 될지 궁금하면 주말 아침을 지정해 보자. CEO가 토요일 아침 6시쯤 회사 대회의실에 나와 사내 비상연락망을 가동하는 임무를 지닌 위기관리 담당임원에게 전화나 문자를 해 보는 거다. 위기관리위원회 소집을 명령하는 것이다. 실제 주말 아침은 위기관리 관점에서 가장 취약한 시간대다. 일부는 등산이나 골프 약속으로 지방에 머무르거나 이동 중일 수 있다. 일부는 멀리 여행을 떠났거나, 늦잠을 자며 휴대전화를 접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필 이런 최악의 환경에서 시급하게 대응해야 할 중대한 위기가 발생했다고 가정해 보는 것이다.

일단 비상연락망을 가동하면 위기관리위원회 구성원들을 제한된 정보환경에 처하게 된다. ‘회사에 무슨 일이 발생한 거지?’ ‘혹시 무슨 일인지 아는 게 있어?’ ‘아마 공장 쪽 문제 아니겠어요? 이런 아침에 상황이 벌어졌다면?’ ‘아냐 ○○○기관 조짐이 심상치 않았는데 그건지도 몰라’ ‘대표께서는 이미 나와 계시다는 거야? 누가 보고 드렸지?’ 갖가지 추측들이 떠오르고 상호간 전화통화와 상황 파악 노력들이 진행되면서 일정 시간 패닉에 빠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움직이는 것은 한참 나중이다.

당연히 위기관리 매뉴얼 또는 가이드라인에 명시돼 있는 시간 내에 정확하게 대회의실 위기관리센터(일명 워룸, war room)에 집합하는 위기관리위원회 구성원들은 예상보다 극소수가 된다. 매뉴얼에는 만약 특정부서 임원이 정시 소집이 불가능한 환경이면, 그 차하위 팀장급이 참석하도록 지정돼 있다. 이 규정도 사실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이전에 미처 경험해 보지 않은 혼란만 경험하게 된다.

이런 일련의 혼란의 경험들은 절실한 개선의 동기를 제공한다. 그래야 이후 실제 위기가 발생했을 때 좀 더 원활환 정보 교류와 위기관리위원회의 적시 구성 완료가 가능해 진다. 구성원의 대체 소집 또한 무리 없이 가능해 진다. 이 의미는 전사적으로 신속한 상황 파악과 정확한 의사결정이 가능해진다는 의미다. 더 나아가 위기관리를 책임지는 사내 구성원들에게 살아있는 긴급함과 상호협력 의식을 심어 줄 수 있게 된다.

단, 주말의 갑작스러운 소집은 한번 정도면 족하다. 개선안을 도출하기 위해서 진행하는 시뮬레이션이니 위기관리위원회 소집에 늦거나 연락이 안 되던 임원들을 사후 부정적으로 추궁하거나 패널티를 부여하지는 말자. 위기관리 체계라는 것은 위기에 대한 두려움 이전에 패널티에 대한 두려움이 앞서면 안 된다. 하나의 이벤트로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정확하게 개선하게 만들면 그것으로 족하다.

필자의 경험상 시뮬레이션을 해 본 기업과 해보지 않고 처음으로 낯선 위기를 맞는 기업 간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을 목격했다. 위기에 강한 기업을 만들기 위해 CEO들은 주말 오전 반나절을 투자해 보길 권한다. 헐레벌떡 모인 위기관리위원회 임원들과 점심으로 막걸리를 한잔하며 토론해 보는 것도 좋겠다. 개선에 대한 토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