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따라

빙글빙글 원을 그리다

장독 위에 사뿐히 내려앉은

고추잠자리.

너, 우리 고추장 먹었지?

아니기는?

꼬리까지 빨갛게 물들었는걸.

- 박제천 <고추잠자리〉

햄버거 침대.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서 활동 중인 디자이너 ‘케이라 크로머(Kayla Kromer)’가 디자인한 햄버거 침대를 가지면 햄버거를 먹는 게 아니라 햄버거에 들어간 고기를 젖히고 대신 사람이 들어가 잘 수 있다.

햄패티의 침대 커버와 치즈 모양의 보조 매트리스, 양상추 홑이불, 토마토와 피클 모양의 다양한 쿠션, 두꺼운 빵 이불로 구성된 이 침대 속으로 들어갔을 때 자신이 하나의 고깃 덩어리가 된 느낌이 들지 않을까.

네이버에서 깡통 블로그를 운영하는 닉네임 ‘꼴통후니’ 블로그에 있는 내용이다. 어떤가. 이런 가구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궁금하지 않은가. 동심의 세계로 가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창조와 동심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동심이 상상력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예 어른의 세계를 잃어버리고 아이들의 세계로 가라는 말이 아니다.

키드(kid, 아이)와 어덜트(adult, 어른)의 합성어인 키덜트(Kidult)라는 말도 있듯 어렸을 때의 분위기와 감성을 간직하라는 말이다.

키덜트들은 일터도 놀이터나 집처럼 편안하게 꾸민다. 의자 대신 그네를 만들기고 하고, 사무실을 자기 집의 방처럼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람과 동물 모양의 인형으로 채워놓기도 한다. 일하다가 이런 인형들을 보고 동심으로 돌아가 어떤 영감이나 에너지를 얻기 위함이다.

왜 어른의 몸에 동심을 간직하고 있으면 창조성이 발휘될 수 있는 것일까. 동심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의 소산이기에 그렇다. 이성은 논리적이지만 감성은 논리의 감옥에 갇혀 있지 않다. 그래서 생각이 자유롭다. 세상 어디든 마구 뛰어다닌다. 상상의 힘이 그만큼 큰 것이다.

박제천 시인의 동시 <고추잠자리>를 보자. 이 동시가 동심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려준다. 고추잠자리는 꼬리가 빨갛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왜 빨간가? 느닷없이 물어보면 대답하기 곤란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쉽게 답한다. ‘우리집 고추장 훔쳐 먹어서’다

고추잠자리의 꼬리가 빨간 이유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면 논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논리가 필요 없다. 논리는 상상을 죽인다. 논리는 상상을 기술적으로 실현시킬 때 쓰인다. 그러니 상상이 이뤄지려면 논리 역시 필요하다.

하지만 ‘논리가 먼저냐, 상상이 먼저냐’ 물으면 당연히 상상이 먼저다. 무엇인가 창조하고자 할 때 먼저 생각한 후 움직여야 한다. 생각이 상상의 근원이라면 논리는 실행하는 행동의 원천이다.

아이들은 논리는 없어도 상상은 풍부하다. 어른들은 간혹 아이들의 상상을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고 윽박지르곤 한다.

쓸데없는 생각이라면서. 그래서는 안 된다. 아무리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라 해도, 현재 기술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 해도 아이들의 상상을 북돋워줘야 한다.

상상이 필요한 이유는 발견 때문이다. 동심의 세계는 발견의 세계다. 아이들은 무엇을 보든지 어른들이 아는 상식 밖으로 나아가려 한다.

어른들이 낯선 것을 보면 익숙한 경험이나 지식으로 해석하려고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이 매우 익숙해 있는 사실을 낯설게 만든다. 이것이 발견이고 상상이며 창조의 기초다. 어찌 동심을 향해 나아가지 않을 수 있을까.

황인원 시인·문학경영연구원 대표